도심에서 만나는
거짓말 같은 시간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다. 붉은색과 노란색의 향연을 보노라면, 점점 차가워지는 공기를 맞을 준비라도 하는지 어느새 가슴이 데워진다. 이 무렵 단풍 명소로 불리는 곳에 인파가 넘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문득 품에 머금은 온기가 북적이는 사람들의 체온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가을엔 해마다 진행하는 의식에 변화를 줘봐야겠다. 빤하지 않게 계절을 넘어서는 것도 허우룩해질 일상을 채우는 양식이 되지 않을까. 가을의 정취를 흠뻑 자아내는 도심 속 거짓말 같은 미술 세계를 소개한다.
회현동에 자리 잡은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소풍 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하지만 최근의 화려한 휴식보다는 되레 20세기 초중반의 고즈넉한 분위기로 그득하다. 주인공은 일본 사진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우에다 쇼지Shoji Ueda다. 이름은 생경할지라도, 그의 사진은 어디서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테다. 돗토리현의 사구(모래 언덕)에서 몽환적으로 찍은 흑백 사진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은 오늘날에도 자주 오마주되는 작품인 까닭.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오라aura는 해외에서 그의 이름을 따와 ‘우에다조Ueda-Cho’라 부를 정도로 유명하다. 10대에 카메라를 든 우에다 쇼지는 7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대도시에 진출하는 대신 평생 고향에 머무르며 가족, 어린이,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소박하게 담아냈다. 늘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일 뿐”이라고 겸손의 말을 했는데,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 건 셔터를 누르는 열정이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우에다 쇼지의 사진에서 주목할 점은 평범한 장면이 연극 무대처럼 연출됐다는 사실. 피사체를 매우 정교하게 배치한 방식은 당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스타일과는 대조적이나,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 3월 2일까지 개최되는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은 우에다조의 정수를 체감할 수 있는 오리지널 프린트 180여 점으로 구성된다. 유년 시절의 습작, 어린이들의 초상, 정물과 후기 컬러 사진을 테마별로 감상할 수 있으며, 전시장을 돗토리 사구가 빚어낸 유려한 곡선을 닮은 구조로 디자인해 실제 촬영 현장을 거니는 효과를 낸다. 한국에서 쉬이 만날 수 없는 작가인 만큼, 예술을 통한 고요하고 차분한 쉼을 원한다면 놓치지 말 것.
한편, 회현동에서 대중교통으로 15분 거리의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는 거대한 수영장이 들어서 있다. 유럽에서 볼 법한 약 45평 규모의 단독주택, 레스토랑 등도 지어졌다.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세운 작업 <프라다 마파Prada Marfa>2005와 전시실을 공항·기차역·병동 등으로 전환해 공간에 대한 독창적 시각을 제시해 온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의 전시 《Spaces》(2025년 2월 23일까지)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관객이 미술관을 다르게 바라보기를 바랐어요.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기 전 사진부터 찍는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을 거예요. 처음엔 작품이 불연속적인 소셜미디어 피드로 다가올 것입니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정해진 이야기는 없어요.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구축하면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 감상을 위해 약간의 정보를 전달하자면, 먼저 수영장은 이들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다. 눈에 띄는 점은 수영장을 무대로 등장한 백색 조각들은 상호 교류 없이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다는 것. 이는 현대의 남성성과 고립 및 성장이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식당 테이블에 앉아 영상통화를 하는 사람을 표현한 작업에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마주하게 된다. 작업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감정·정신적으로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존재와 부재의 동시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이들을 종합하는 (개인적으로 발견한) 독특한 연결고리도 있다. 수영장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안전요원, 단독주택 거실 안에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소년, 2개의 세면대와 거울을 연결하는 배수관 조각은 너와 내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을지라도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던지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호암미술관에선 ‘파스텔의 마법사’라 불리는 니컬러스 파티Nicolas Party의 개인전 《더스트》가 내년 1월 19일까지 열린다. 호암미술관에 방문하면 울긋불긋 색동옷을 입은 미술관 절경과 작가가 창조한 우아한 색채가 어우러져 가을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니컬러스 파티의 캔버스는 그야말로 미술사의 보고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유행한 파스텔화를 소환하는 것은 물론, 르네 마그리트·앙리 루소·조르조 모란디 등 거장의 화풍을 작업에 녹여내왔기 때문.
《더스트》도 비슷하다. 작가는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을 참조하고, 나아가 고미술품을 작품과 병치했다. 어쩌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는 요소의 조합은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대화를 일으켜 흥미롭다. 대표적 예로,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는 ‘동굴’을 그린 벽화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조선 시대 ‘백자 태호’를 앞뒤로 설치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동굴은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뜻하는 미지의 공간이에요. 예수님은 동굴과 유사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돌아가신 후에는 동굴에서 부활했죠. 부처님은 동굴 안에서 수행했고요. 한편, 조선 시대에는 아기의 태반과 탯줄을 항아리에 넣어 보관했어요. 특히, 왕손의 태胎는 백자 항아리에 넣어 풍수지리가 좋은 땅에 묻고,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빌었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생과 사, 불멸의 연관성이 신비롭게 다가오지 않나요?”
이와 더불어 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작가가 미술관 벽에 직접 그린 파스텔 벽화가 전시 종료 후에 지워진다는 것. 연약하고 일시적인 재료인 파스텔이 생로병사와 이어지는 모양새다. 흡사 전시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는데, ‘일시성’이라는 개념이 보는 이를 전시에 더욱 몰입하게 하니, 벽화가 사라지기 전에 눈으로 꼭 확인해보길 바란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아름다움은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가을 단풍처럼 니컬러스 파티의 파스텔 역시 영원이라는 마법을 당신에게 부릴 것이다.
글 박이현 럭셔리 매거진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