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문화+서울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SOUL OF SEOUL

11월호

무용수를 지우고
춤만 평가할 수 있을까

검은 안대를 두른 백종원이 떡갈비를 한 입 먹고 말합니다. “그 치즈, 냄새 많이 나는 거. 근데 쿰쿰한 게 하나 더 들어갔는데. 젓갈도 있는데?” 초조하게 심사위원의 안색을 살피던 참가자가 깜짝 놀랍니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사용한 소스와 갈치속젓이 들어간 떡갈비였거든요.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입니다. 화려한 스킬로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 대결 프로그램은 언제 봐도 재미있지만 <흑백요리사>는 특히 두 심사위원이 안대를 두르고 음식을 평가하는 에피소드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명세를 구축한 백수저 요리사와 덜 알려진 흑수저 요리사의 일대일 경연인 만큼 명성에 영향받지 않고 최대한 공정하게 심사하려는 의도겠지요. 물론 음식의 색감이나 플레이팅 역시 요리의 일부라고 보는 입장에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직 맛으로 평가하겠다는 의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술이나 음악에선 블라인드 심사가 일반적입니다. 작품이 작가로부터 분리된 미술에선 쉬운 일입니다. 입시 철이 되면 넓은 체육관 바닥에 그림을 늘어놓고 심사하는 사진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음악에서도 가림막을 세우고 연주하여 소리로만 판단하는 블라인드 심사가 흔합니다. 물론 어떻게라도 꼼수를 부리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영화 <타르>에서는 오케스트라 오디션 장면이 나옵니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참가자에게 매력을 느낀 주인공 지휘자는 발걸음 소리로, 그리고 가림막 아래로 슬쩍 비친 신발 모양으로 알아채고 점수를 조작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각을 배제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에 꽤 효과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춤에선 좀처럼 블라인드 심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예 포기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시 철이면 학교의 무용 스튜디오, 심지어는 건물 전체의 창문을 종이로 꼼꼼히 가리지만 정작 오디션 장에선 온몸과 얼굴을 드러낸 채 춤춥니다. 춤은 몸에서 좀처럼 분리하기 어려운 데다 팔다리뿐 아니라 얼굴까지 춤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흑백요리사>의 잣대로 보면 춤 심사 방식은 공정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여기엔 외모나 체격 대신 오로지 실력을 평가해야 공정하다는 생각, 그리고 실력이란 선천적이고 가시적인 요소가 아니라 후천적이고 비가시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둘을 구별해야겠죠. 이게 가능할까요?

춤에는 춤추는 주체dancer, 춤 작품dance, 그리고 춤추는 행위dancing가 한데 얽혀 있습니다. 이를 무용 철학자들은 ‘춤의 삼위일체’라 표현했습니다. 오디션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부분은 비가시적이고 후천적인 춤 행위일 것입니다. 주체로부터 작품과 행위를 떼어낼 수 있을까요? 유명한 시인 예이츠는 이렇게 노래했지요. “어찌 춤에서 춤추는 이를 구별할 수 있으리How can we know the dancer from dance?” 주체와 작품, 행위는 쉽게 분리할 수 없기에 춤은 어느 영역보다도 본질적이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춤에서 주체, 작품, 그리고 행위는 오래전부터 조금씩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대표적인 계기가 무보舞譜, dance notation의 발달입니다. 무보는 마치 악보처럼 춤에서 작품을 분리해 기록하는 매체입니다. 종이에 그려진 무보가 산 넘고 강 넘어 전달되면서 춤이 퍼져갔습니다. 꼭 춤꾼이 이동하지 않아도 춤이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춤의 주체와 행위 역시 분리되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발전한 기술 덕분입니다. 예를 들어 초기 애니메이션 기술이었던 로토스코프Rotoscope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영상 매체로 촬영한 후 프레임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그려 넣는 방식입니다. 당대 유명한 춤꾼의 영상이 토끼나 생쥐 같은 만화 캐릭터의 춤으로 변환되면서 춤꾼의 존재가 지워졌습니다.

로토스코프가 주체로부터 행위를 분리시키는 아날로그 방식이라면, 대표적인 디지털 방식은 모션캡처motion capture입니다. 이름 그대로 움직임을 잡아내는 기술이라 할 수 있죠. 무용수의 몸 각 부위에 센서를 부착하여 3차원적 위치를 데이터화하면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춤에서 무용수를 지운 허깨비 같은 행위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원심분리기를 돌리듯 춤에서 주체와 작품, 행위를 분리했으니 이제 우리는 무용수를 보지 않고도 그 행위만을 볼 수 있습니다. 눈 뜨고도 블라인드 심사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아직까지 춤계에선 시각성을 완전히 배제한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각성 너머의 평가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으니, 바로 댄스 비디오 게임입니다. 댄스 게임은 발판과 자이로 센서·카메라 등을 통해 플레이어의 모션을 인식하고, 화면에서 제시된 움직임 지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평가합니다. 여기엔 플레이어의 외모나 체형, 정체성 등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더없이 공정한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댄스 비디오 게임이 e-스포츠로 확장되면서 플레이어들은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는 대신 군중 앞이나 무대 위에서 춤추게 되었습니다. <저스트 댄스>와 같은 게임에선 화면 속 ‘코치’ 혹은 플레이어의 행위를 반영한 아바타가 플레이어와 함께 춤춥니다. 이때 플레이어의 외모가 전형적인 댄서나 화려한 아바타의 외모에서 멀수록 쾌감을 선사합니다. 심사위원이 플레이어를 직접 보면서 평가한다면 아마도 편견이 작용했겠지만, 센서로 인식하고 아바타로 재현한 춤 데이터를 기계가 평가하니 편견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눈의 평가와 데이터의 평가가 차이 날수록 재미있죠. 이러한 방식은 기존 춤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댄스 비디오 게임이 발전하다보면 언젠가 플레이어는 무대 뒤로 숨고 아바타만 나타나 경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춤에서 무용수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수행의 수월성만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대로 눈을 가린 백종원의 심사처럼 더없이 공정한 심사가 되겠지요. 인간미가 없다고요? 글쎄, 우린 이미 버추얼 아이돌에게 열광하고 AI가 생성한 스파게티 국수의 춤을 흥미롭게 보는 시대에 살고 있는걸요.

글 정옥희 무용평론가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