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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1월호

살아남은 사람에게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가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조해진의 「내일의 송이에게」라는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송이는 아파트 단지 아래쪽에 자리한 중소 규모 마트에서 넉 달째 일하고 있다. 송이는 하루에 한 번, 애초에 산길이었을 아파트 사이의 가파른 길을 뛰듯이 걸어 올라간다. 편의점에서 산 김밥 한 줄과 오백 밀리리터짜리 생수, 그리고 사료와 육포를 넣은 천 가방을 어깨에 멘 채, 텅 빈 레일을 혼자 뛰는 고독한 달리기 선수를 상상하며 달려간다. 미륵이라고 이름붙인 떠돌이 개의 식사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급하게 김밥을 먹고는 미륵이에게 식사를 챙겨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다. 얼른 도망간 미륵이처럼 몸을 피하려는데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알은체를 해오는 것이었다.

“십이 년 만이었다.” 조해진은 그렇게 쓰고는 송이와 장훈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이 가는 사회복지관 별관의 공부방에서 만났다. 그곳을 다니는 아이들의 구성은 자주 달라졌다. 송이는 작별 인사 없이 속내도 밝히지 않고 공부방에서 멀어졌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보육시설에 입소하게 되어서,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은둔하거나 이런저런 범죄로 소년원에 송치되면서, 아니면 그저 인터넷 게임에 미쳐 있거나 방에서 걸어 나올 수조차 없을 만큼 무기력에 빠져서” 그곳을 떠난 아이들이 많았다. 장훈은 미륵사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체육관 공사 현장에 묵고 있다고 했다. 장훈은 공부방에 같이 다녔던 형석이와 수희를 언급하는데, 송이는 기억나지 않는 척하지만 사실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애는 그녀보다 수희나 형석과 더 가까웠다.”

「내일의 송이에게」는 두 겹으로 된 이야기다. 한 겹은 청년 빈곤을 다룬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자주 들춰본 책으로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2023와 유가영의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2024를 언급하기도 했다. 송이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을 보면 부모가 떠올랐다. “미안한 마음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분해되지 않는 결정으로 가슴 밑바닥을 향해 끝없이 추락해가는 것, 그녀에게는 그 영원한 추락의 상태가 죄책감이었다.” 송이는 열여섯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며 부모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송이는 조금씩 부모에게, 그들의 울분과 슬픔에 지쳐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엄마 집에서 나온 송이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임대료가 싼 방에서 일이 년씩 머물렀다. 장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내일의 송이에게」를 둘러싼 또 한 겹의 이야기는 노란색 조명을 밝힌 조각배와 관련 있다. “4월이 지나면 창고에 방치”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배. 고백은 갑작스럽게 이어진다. “친구였거나 친구의 친구였거나, 사귀는 중이거나 사귀다 헤어진 관계였거나, 아니면 고백한 적 있거나 고백조차 못 한 채 혼자 특별한 마음만 품어본 대상이었거나, 학교는 달라도 어떻게든 연결하면 결국 연결되는 이들이 차가워진 몸으로, 때로는 툭 치면 깨어날 것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또 어떤 때는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멍든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들이 있었다. 언제나 울 준비가 되어 있던 학교 아이들, 한 명이 울기 시작하면 이내 여러 겹의 훌쩍임으로 출렁이던 교실”의 풍경을 떠올리는 송이를 따라 우리는 송이가 이름을 부르지 않는 “그애”가 ‘그 배’에 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조해진의 작가 노트에는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2023도 언급되어 있으니까.

오카 마리의 책 『기억·서사』2024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나누어 갖기 위해 ‘사건’은 먼저 이야기되어야만 한다. 전달되어야만 한다.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공유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진정으로 나누어 갖는 형태로 ‘사건’의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와 같은 서사는 과연 가능한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리얼리즘이 보여주는 정교함의 문제인 것일까. 하지만 리얼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수많은 물음이 생겨난다.”

<너와 나>와 「내일의 송이에게」는 기억의 문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룬다. 시대의 아픔으로 남은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너와 나>는 단짝인 세미와 하은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얼마 전 자전거에 치이는 바람에 수학여행을 갈 수 없게 된 하은을 보는 세미의 마음은 불안하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세미는 하은이 죽어 누워 있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수학여행을 가자고 하는 세미와 어쩔 수 없다는 하은은 다투게 되고, 세미는 혼자 수학여행을 떠나는 배에 오른다.

조해진은 <너와 나>가 좋았던 이유가 “구체적이어서”라고 말한다. 영화에 그려진 아이들이 구체적이어서 그렇게나 좋았다고. 추모관이나 추모공원의 사진 속 이미지가 아니라, 삼백사 명의 희생자 중 한 명이 아니라,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을 주문한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고, 화랑공원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버스에서 친구와 수다떨며 정신없이 웃다가도 해지는 걸 보며 감동받을 때도 있으며, 팥빙수 속 떡을 더 많이 먹은 친구와 싸우기도 하는 아이(들)가 그 영화 속에 있”기 때문이었다고. 「내일의 송이에게」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 속 “그애”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티커 모으는 걸 좋아했다. 단짝은 아니었지만, 그애의 죽음으로 인한 상흔이 송이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가?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 송이의 마음속을 떠돈다. 어쩌면 그 질문은, 자신을 끌어내리기만 하는 부모를 떠나온 자신의 처지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표류하는 나날 속에서 송이가 장훈과 마주치면서, 기억 속 장훈이 자신을 바라보던 얼굴을 떠올리면서, 꿈을 꾸는 것 같은 상상을 하고 또 이내 현실로 천천히 내려앉는다. 슬픈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먼저 떠난 사람을 어떤 기억 속에 장례 지내고 애도하고 있는가. 차마 묻지 못하는 마음을 고이 접어 쓴 소설은, 살아남은 송이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부서지거나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을 세상을 향해서. 소설을 읽은 다음에 “주인공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제발 죽지 않았으면,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면” 하고 기도하는 일이 있다. 「내일의 송이에게」도 그런 소설이다.

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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