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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7월호

동백 화가 강종열의
동백나무 숲

꽃은 절기와 관계없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개나리·진달래·벚꽃·목련 등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알리는 꽃은 겨우내 움츠린 사람의 마음에 활기를 돋게 한다. 많지는 않지만 겨울에 피는 꽃들도 있다. 동백꽃·매화·복수초 등이다. 절기상 겨울꽃은 봄꽃과 달리 강인함과 희망, 절개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동백꽃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겨울에 피는 꽃이다. 한겨울 추위와 눈보라를 견뎌내고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해 1월부터 4월까지 꽃망울을 터뜨린다. 벌들이 꿀을 빨면서 수분受粉하는 봄꽃과 달리 동백은 겨울에도 활동하는 동박새의 도움으로 수분한다. 동백꽃은 부산 동백섬·여수 오동도 등 중부 이남의 해안 지역에서 많이 자생한다. 내륙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이 인기 있다.

6월 초 서울 세종대학교 세종뮤지엄갤러리에서 동백꽃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찾았다. 여름을 앞둔 계절에 겨울꽃을 소재로 한 전시회라니, 어떤 작가의 작품일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일었다. 전남 여수에서 동백을 화폭에 담는 강종열(1951년생) 화백의 기획 초대전이었다.

세종대학교 대양AI센터 지하 2층 전시실은 마치 ‘원시림’에 들어선 듯 동백나무로 가득했다.

동백 시리즈는 동백꽃을 세밀하게 그린 작품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동백나무 숲이 원시림처럼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꺼운 붓질로 표현한 수십 개의 붉은 꽃잎과 나무 형체 외에는 짙은 청록색 물감으로 뒤덮어 작가의 눈에 들어온 오브제를 단순하게 묘사하는 인상주의 화풍이 느껴진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는 그의 작품에 대해 주로 동백나무 숲을 그리는데, 보이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평가한다. 60여 점의 동백 작품은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입체적인 감상도 가능하다.

이밖에 ‘모든 예술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선의 미학을 주제로 한 스케치 작품도 있었다. 작가가 동티모르에 체류하며 그린 자유, 평화의 소중함을 담은 작품도 있다.

갤러리 입구에 있는 프란체스코 교황 명의의 기증 증서도 눈길을 끈다. 작가가 2014년 6월 바티칸 성당 인근 화랑에서 개인전을 하면서 30호짜리 <탄생>이라는 그림을 교황청에 기증했는데 교황이 마음에 들어 했고, 2016년 2월에 작가에게 감사하다며 이 증서를 보내왔다고 한다. 탄생은 풀밭에서 흑인 어머니가 새·나비·토끼 등의 축복 속에 백색 피부의 갓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교황이 강조하는 전쟁과 인종 차별 없는 세상, 평등 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바티칸 교황청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들어간 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작가가 여수에서 그림을 그릴 때 화실 옆집에 살던 조 씨 영감 부부의 일상을 담은 작품 7점도 눈길을 끈다. 강 작가는 “자식을 대신해 손자를 키워야 하는 불행한 가정사 때문인지 늘 화가 많던 조 영감의 모습에서 1980년대 고단한 어촌의 삶은 물론 당시 고속 성장 속에서도 힘든 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고향이 여수인 그에게 동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브제다. 1996년부터 가꾼 화실이 있는 돌산읍의 동백 정원에는 동백나무가 가득하다. 그는 틈만 나면 동백나무를 돌본다. 하지만 그는 동백꽃 자체보다 동백에 담긴 정신에 더 심취해 있다. 꽃 자체로도 좋지만, 서민의 아픔, 고통 등 한국적 정서와 맥이 닿은 동백꽃의 의미를 화폭에 담으려 한다.

붉은 동백꽃의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절조’라는 의미도 있다. 이 꽃말은 여수 오동도에 살던 젊은 부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담은 설화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어부인 남편이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간 사이 섬으로 낯선 남자가 들어와 부인을 해치려 했고, 부인은 남편이 있는 바닷가를 향해 도망치다 절벽에서 떨어지며 숨졌다. 뒤늦게 이를 안 남편은 섬에 부인을 묻고 부인을 잃은 섬에 더 이상 살 수 없어 섬을 떠난다. 하지만 떠나보낸 부인이 너무 보고 싶어 섬에 돌아왔다가 부인 무덤가에 붉은 꽃을 피운 나무를 보게 된다. 마치 그 꽃이 자신에게 ‘난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당신만을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는 듯했다고 한다.

작가는 여수미술협회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을 역임했고, 해외에서도 여러 차례 전시회를 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제주현대미술관·바티칸 성당·동티모르 대통령궁·필리핀 대통령궁 등 국내외 많은 기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의 동백나무 숲은 원시림을 보는 듯 전체적으로 묵직한 느낌을 자아낸다. 짙은 음영으로 처리된 숲에서 작지만 붉은색의 동백꽃은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가 주목한 동백은 아름다워 감상하려는 꽃이라기보다 ‘아픔과 연민의 동백’이자 이를 극복하려는 동백으로 느껴진다.

그는 동백꽃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겨울을 참고 견디는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동백을 동경하며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담금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동백꽃 같은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생명력 강한 ‘붉은 동백꽃’을 마음속으로나마 키우고 싶다.

글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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