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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0월호

괄호 열고, 괄호 닫고 (    )

괄호 열고, 괄호 닫고.
대체로 커튼콜은 괄호를 닫는 일이다. 무대의 시간은 대체로 그렇게 커튼콜로 닫힌다.

극장의 시간

한 번쯤은 공연의 커튼콜만 모은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커튼콜에 선 배우의 표정을 살피는 일에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역할에서 비로소 벗어난 배우가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오늘을 곱씹고 객석 어딘가 앉았을 지인을 찾기도 한다. 때때로 기쁨, 환희, 혹은 어떤 보람, 고마움, 더러는 아쉬움 같은 것이 커튼콜의 표정 가운데 어려 있다. 많은 표정이 커튼콜에 들어 있다. 연출한 공연의 커튼콜이라면 ‘오늘 공연도 무사히 끝났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곤 했고, 때로 이런저런 마음이 뒤섞인 일종의 멜랑콜리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허전함 같은 것일까?’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어쨌든 나 역시 공연의 끝을 그렇게 커튼콜로 맞이하곤 했다.
어느새 연출만 하던 시간보다 극장장 노릇을 함께 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 무대보다 극장에 머물기 시작했다. 대체 로는 관객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사이. 이를테면 ‘극장의 시간’이다. 극장 건물 1층 주차장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냈고, 재작년 어느 날부터는 극장 계단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1 문이 열리고, 문이 닫힌다. 무엇이 시작되고, 무엇이 끝을 맞이하는가. 주차장에서라면 가끔 1층까지 들려오는 박수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계단의 등이 내려오는 관객에 의해 층층이 점멸할 때에라야 ‘끝’임을 알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그사이의 시간은 자주 텅 비어 있었다. 그에 비해 계단참에서 보내는 시간은 조금 다르다. 계단참에서는 공연을 듣는다! 가만히 들으며 장면을 지나 보내고 나면 이윽고 들려오는 박수 소리. 계단참에서 보내는 시간은 공연의 시작과 끝에 가깝고 또 가득 차 있는 셈이다. 다시 문을 열고 계단의 불을 켠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올라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 위 커튼콜의 장면은 이미 지나고 난 뒤다.

신촌극장에서 공연한 〈그리고 흰공책 가득 그것들이 씌어지는 밤이 왔다〉(2018)

무대의 시간

공연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나는가. 한 회 한 회의 커튼콜을 지나 마지막 회의 커튼콜. 연출만 하던 시간 동안 쉽게 단정했던 시작과 끝, 어쩌면 커튼콜이 야기한 착각은 아니었을까. 하긴 일상의 시간에는 이렇게 잦은 커튼콜이 없다. 다시 어떤 시간을 생각한다. 괄호 열고, 괄호 닫고. 그사이 단어나 문장을 넣어두고 때로 그것을 기억이라 불렀다. 괄호 안에 제멋대로 구겨 넣은 단어를 통해 그 순간을 정리하고 또 떠올렸다. 때로 그것은 공연이다. 괄호 열고, 다시 괄호 닫고. 그사이의 것은 단순한 제목 이상의 공연 자체가 되기도 한다. 괄호를 열고, 괄호를 닫기까지 그사이의 시간을 생각한다. 그것을 ‘무대의 시간’이라고 불러본다. 대체로 커튼콜로 그 괄호가 닫힌다. 무대의 시간은 대체로 그렇게 닫히는 듯했다. 그러나 괄호를 닫는다고 해서 극장의 시간이나 연극의 시간이 끝나지는 않는다.
하긴 나에게 제일 궁금한 연극의 시간은 커튼콜 이후의 시간이다.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가는가. 또 어떤 일상을 보내다 드문드문 떠올릴까. 나에게 시간이란 어차피 그저 기분이고 기억은 모래와 같은 것이라서 무엇이 얼마나 빠르게 밖으로 새어 나가고 있을까. 무엇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를 생각하는 일은 정말이지 부질없다는 결론에 이를 따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이다. 연극의 시간은 어떻게 끝을 맞이하는가, 또 어떻게 사라지는가. 그러고 보면 어떤 날의 커튼콜 박수는 연극의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까를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힘차거나 혹은 조용하거나. 그것만으로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연출자인 나는 실낱같이 얇고 가벼운 무언가가 반드시 남을 것이라고 애써 믿으며 그 ‘끝’을 자꾸 부정해 보는 것이다.

시간이 쌓이고, 또 이어진다.
괄호 안의 것들은, 대체로 괄호 밖을 향해 있다.

1 신촌극장 초기 매표 공간은 건물 1층의 주차장 셔터 안쪽이었다. 3년여 시간이 흐른 뒤부터는 옥탑의 극장 반 계단 바로 아래 계단참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글·사진 제공 전진모_연출가이자 신촌극장 극장장. 2017년 6월 개관한 신촌극장은 물리적 한계와 제약이 가득한, 아주 작은 옥탑 공간이다.
다만 장르 불문의 공연예술이 함의하는 다채롭고 진취적 자기표현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표하며 매해 작가(창작자) 중심으로 꾸린 라인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됐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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