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과 메타버스에 대한 좌담 (가상)극장을 둘러싼 관객의 경험
우리는 무엇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갈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변화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극장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됐다. 이에 웹진 [춤in]은 관객 입장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리고 현재 온라인과 메타버스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상)극장에 대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는 좌담을 열었다. 그 내용의 일부를 공개한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진, 김나영, 김다엘, 서민석
저는 이 메타버스와 온라인 공연을 긍정적으로 보는데 지금 우리의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본의 아니게 정말 많은 이별을 겪었어요. 너무 많은 사람, 불특정 다수가 사라졌어요. 거기서 우리가 느낀 것은 공허함과 상실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본명 임성훈)이 있어요. 터틀맨의 가족과 팬을 모아 Mnet TV 프로그램에서 공연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재현한 적이 있는데요. 공연을 보던 분들이 정말 펑펑 울더라고요. 메타버스와 온라인 공연은 그런 공허함과 상실감을 치유할 어떤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추억을 회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것이 메타버스의 역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날것의 현장 공연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메타버스와 온라인 공연은 어느 정도 아쉬움이 있어요. 영상을 촬영해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것은 분명 제약이 있어요.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예술 작품을 두고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 그것을 유통하는 자본과 기술의 문제를 분리해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기술에 의해 작품의 예술성이 훼손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추후 기술이 발전해 100년 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제약을 모두 극복할 수단이 생긴다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술은 결국 어떤 사람의 표현물이잖아요. 기술이 예술의 표현성을 새롭게 증폭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것들은 기술을 기반으로 더 유효해질 수 있지만 어떤 것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유효해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예술, 특히 공연 분야 예술은 이것을 만드는 사람도 수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도 불편을 감수해야 그 가치가 높아지지 않나 싶어요. 저는 공연이란 숲을 보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영상에서는 그 숲을 볼 수가 없어요. 누군가는 카메라 앵글을 잘 잡아 찍으면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은 시각에 대한 오해예요. 천만의 말씀이죠. 서울무용센터가 해도 좋고요, 어떤 기관 내지 관계자들이 공연을 메타버스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야 유효한지 연구해 봤으면 좋겠어요.
공연이라는 것이 결국 향유하는 관객이 있어야 성립할 수 있잖아요. MZ세대는 디지털 문화에 굉장히 익숙하니까 이 세대가 10년, 20년 후에 성장하고 나면 그들이 생각하는 공연의 개념과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공연의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감상하는 순수예술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훼손하고 그것을 대체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다만 선택지가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디지털이라는 카테고리가 하나 더 추가될 수 있겠죠. 제가 본 메타버스 공연은 무대를 가상공간에 만들었지만 우리가 온라인에서 영상 공연을 관람하는 정도였어요. 제 생각에 이것이 메타버스는 아닌 듯하거든요. 아직은 매우 초보적 단계라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은 이렇게 상상해 나가는 단계가 아닐까 싶어요.
모더레이터 김다엘
좌담 참여자 김나영(논술교사), 박진(소설가), 서민석(경영 컨설턴트)
글 조형빈_웹진 [춤in] 편집위원 | 사진 제공 이생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춤: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