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연극> 공연 모습
<SPACE: 연극>은 우주를 소재로 연극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대 중앙에 있는 장치는 우주선 같기도, 망원경 같기도, 카메라 같기도, 조명 같기도 한데, 공연은 이 장치를 활용하면서 전개된다. 모든 내용은 곧 ‘연극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로 모인다. 코로나19 시대에 연극의 현실에 관해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 배우의 직접적인 발화를 통해, 알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 이상으로 연극하는 이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게 되었고, 제도 안에서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던 그들이 건네는 호소가 몹시 절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배우가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이 와닿아서 이때 새삼스레 관객으로 자리하던 나 역시 이 장르를 꽤 아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배우의 눈물과 벅찬 감정에서 오는 에너지가 전해져서 내가 왜 연극을 보러 다니는지 자연스레 되묻게 되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자 실제인물인 ‘대진’은 알베르 카뮈의 연설을 통해 진심 어린 호소를 할 뿐만 아니라,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라며 누군가를 여러 번 부른다. 예술가들은 여기 존재하는데, 관객들도 그곳에 있느냐고 계속 물으며 확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응답은 없다. 배우는 계속해서 외로운 줄타기를 이어갈 뿐이다. 배우들이 퇴장하고 무대 위에 관객만이 남아서 <연극이 끝난 후>를 듣고 있으면 관객으로 함께 이 사안을 고민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기분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는 관객참여형 공연이라는 점이다. 배우가 다가와 손가락 인사를 건네면 그것에 응하게 되고, 손을 잡고 함께 무대로 올라가 자리에 앉게 된다. 배우는 관객이 앉은 의자를 무대 위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등받이를 침대처럼 젖히기도 한다. 이렇듯 단 일곱 명의 사람이 배우와 차례로 교감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겪고, 함께 조명을 받으며 호흡하는 건 일반적인 연극 관람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당시에는 선뜻 배우가 하자고 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순간을 정말로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관객이 단 일곱 명인 공연인 만큼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진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난 이들과 우주선이라는 다소 위험(?)한 공간에 함께 탑승하니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공연을 관람한 직후에 작품의 제목인 <SPACE: 연극>에서 ‘Space’가 곧 연극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광활한, 미지의 우주를 향해 도전하려는 것에 빗대어 이 집단이 연극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도입부로 돌아가 보면 이 공연의 첫 대사는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상력은 우리를 가보지 못한 곳으로 이끌 수 있고, 우리는 상상력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상상력은 곧 연극 내지는 예술을 의미하고 우리는 연극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말하는 듯했다. 연극을 통해 나아가게 되는 곳이 ‘Space’든, 설령 그게 아니라 어느 곳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상상력’을 함께하자며 관객과 배우의 구분을 허물고 무대라는 공간에서 함께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의 꽤 많은 사람이 일 년에 한 번도 공연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언젠가 한 공연장 관계자는 미세먼지가 심해진 세상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해야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을지 함께 고민해 달라고도 했다. 공공 극장들은 문을 닫고 ‘랜선 연극’을 송출하는 것이 일상이 돼버린 ‘언택트’ 시대에, ‘라이브’를 추구하는 공연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이미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에도 존재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SPACE: 연극>은 이 ‘시국’에도 연극을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한다. 작중 아나운서는 개기일식으로 달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 그때서야 비로소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층인 코로나를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개기일식 절정의 순간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연출의 말대로 ‘이 시국에 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답은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도 계속해서 함께 질문하고 생각할 때, 연극이 지닌 힘이 더 확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고민은 창작자만이 아닌 관객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극장 규모가 작고 오퍼레이터가 객석 가까이 있는 탓에 큐를 재생하는 클릭 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이때 문득 긴밀하게 공연이 이루어지는 이 순간과, 배우와 관객, 스태프가 자리하고 있는 이 공간 자체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코로나19 이후의 연극 관람과 연결 지어 본다면 우리가 이 시국에 연극을 보는 이유는 나와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 글 임다영_성신여자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며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을 폭넓게 공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