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라는 그늘
우리는 선뜻 아버지를 말하지 못하는 시절을 겪었다. 아버지는 부재중이거나 등을 돌리고 ‘가족’이란 이름에 길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터지면 골치 아프지만 뚝 떼어버려도 별 상관없고,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그냥 달고 살아도 좋은 맹장 같은 존재가 되어 가족과 사회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05년 부모 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도 모른다> 이후 2011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이혼한 부모의 재결합을 바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심정을 말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중심으로 가족을 이야기하던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아버지를 말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젊은 아버지 료타(후쿠아먀 마사하루)는 어느 날 시골 병원에서 연락을 받는다. 6년간 키워온 아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뒤바뀐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흔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히로카즈 감독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오열과 드잡이 대신, 이 완벽해 보이는 남자 료타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리고 아버지라 불렸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 없던 남자가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보려 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그 어조는 속삭임처럼 낮고 조용해 더 선명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부모라는 죄의식을 벗고
일본 최고의 가수이자 남녀 모두의 사랑을 받는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일본인들에게는 완벽한 남자의 전형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의 캐스팅 자체가 영화의 절반 이상의 의미를 차지한다. 가장 아버지 같지 않은 사람, 완벽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조차도 정해진 틀에서 원칙을 내세우는 사람, 아들이 바뀐 사실을 알고도 냉정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절대 밉게 보여서는 안 되는 그 사람이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그리는 아버지 료타이기 때문이다.
반면 뒤바뀐 아이의 또 다른 아버지 유다이(릴리 프랭키)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시골의 낡은 전기상회의 주인인 그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무능력한 아비의 전형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친구처럼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도쿄 타워>를 쓴 소설가이자, 삽화작가이기도 한 릴리 프랭키는 속물적이지만 밉지 않은, 늙고 초라하지만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은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료타 부부와 유다이 부부는 함께 어울려 놀고, 주말 동안 아이들을 바꿔 재우다가 결국 수개월 만에 아이를 맞바꾸기로 결정한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역할을 배워본 적이 없는 료타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아이들의 마음 따윈 읽지 못한 채 키워온 아이를 훌쩍 떠나보내고, 자신의 생물학적 친자 류세이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강요한다.
키워준 아버지 유다이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믿는 류세이는 “왜?”라고 묻는다. 이것은 조용하지만 힘 있는, 이 영화의 질문이다. 당신이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이든, 키워준 아버지이든 상관없이 왜 내가 당신을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가, 라는 아들들의 질문에 이제 아버지들이 답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봄 햇살에 조금씩 녹아내리는 강물처럼 여전히 차갑지만 희망적이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단 한 번도 가슴으로 아버지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료타가 비로소 가슴으로 아버지가 되어가는 성장담은 그렇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신파적인 울림도 없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덜 자란 아버지를 채근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시선에 있다.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 시대에 부모는 있었으나 고아나 다름없이 살았던 젊은 부모들은 ‘아이의 잘못이 내 탓’이라는 아주 무거운 죄의식을 짊어지게 된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근원적 죄의식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토닥토닥 위로받은 느낌이다.
-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