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봉합된 이야기의 통증
남편을 잃고 어린 두 딸을 홀로 키우게 된 엄마 현숙(김희애)은 동네 마트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지만 씩씩하면서도 다정하다. 착하기만 한 막내딸 천지(김향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가족의 비극이 시작된다. 남겨진 언니 만지(고아성)와 엄마는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또 각자의 삶 속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만지는 천지의 죽음에 또 다른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없이 사랑스럽고 착한 천지의 죽음은 아픈 통증이어야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의 무덤덤한 죽음과 너그러운 내용을 담은 5장의 유언처럼 한결같이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슬픔과 분노를 묻는다. 비극적인 일상 속에서도 웃을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듯, 주변 인물들을 통해 뜬금없는 웃음을 선보이면서 관객들이 비통에 빠질 겨를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감춰진 슬픔은 끝내 오열 없이 교묘하게 영화의 결을 잔잔하면서도 소란스럽지않은 동화처럼 만들어주는 데 기여한다.
이한 감독은 천지의 죽음에 깊이 관련된 왕따 문제 역시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계속 억누르면서 암묵적 가해자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그들의 행동을 차근차근 변명해준다. 물론 <우아한 거짓말>이 이야기하려는 바가 왕따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삶을 관조하고 아픔을 다독이면서 살아내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또 천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되짚고, 그 열쇠를찾는 데 도움을 주는 옆집 총각은 미스터리한 이야기 속에서 가족들이 전혀 모르는 천지의 또 다른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뚜렷한 해답이 없듯이, 누군가의 죽음에도 단선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의 층위 속에서 모두들 가슴 깊이 끌어안은 자기만의 이야기에 동감해야 한다면, 관객들이 끌어안아야 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량함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
김려령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2011년 <완득이>에 이어 동명 소설 <우아한 거짓말>로 다시 김려령 작가와 만난 이한 감독은 기대한 대로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해낸다.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상처받은 인물들 사이로 오가는 희로애락을 제법 매끈하게 재현해냈던 이한 감독의 재능은 <우아한 거짓말>에서도 빛난다.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덤덤하게 풀어내는 재능도, 자칫 영화의 결을 헤칠 수있는 코믹한 에피소드를 무리 없이 봉합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천지의 죽음에 묻어 있던 비밀을 하나씩드러내는 이야기의 구조 역시 원작을 그대로 재현해내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아쉽게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민감한 주제를 툭 던지고, 피 흘리는 어린 새가 홀로 감당해낸 슬픔을 가족들이 다시 고스란히 받아서 묵묵히 감당해내는 잔잔한 마무리는 <우아한 거짓말>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한 감독이 계속 괜찮다고 주술을 거는동안, 계속 괜찮다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용서와 화해로 봉합되는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기 어려운 관객들도 분명 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에서 가장 공감되는 순간은 현숙이 굳이 이사를 와야 했던 이유, 그리고 그를 통해 용서가 아닌, 묵직한 정서적 복수를 이야기했던 순간임은 분명하다. 때론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두고 괜찮다, 괜찮다 하는 거짓말이 우악스러운 통증으로 남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