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발가락 연주
필자는 지난 8월 8일 저녁 7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탐라홀에서 열린 제23회 제주국제관악제의 개막 공연에 사회자로 참가했다. 개막 공연답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화려하게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공연은 프랭크 티켈리의 <제주를 품은 한국 민요>로 문을 활짝 열었다. 뒤이어 작곡가 톰 다보렌의 <유포니움과 관악단을 위한 의례>가 톰 다보렌의 지휘와 제주국제관악제의 예술감독인 스티븐 미드의 협연으로 세계 초연됐다. <유포니움과 관악단을 위한 의례>는 제주 민요와 웨일즈 민요를 섞어 새롭게 창조한 곡이다. 흥미롭게 두 곡을 감상한 후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할 아티스트 펠릭스 클리저를 소개하고 무대 뒤로 들어가다가, 대기하고 있던 그를 만났다. 깜짝 놀랐다.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양팔이 없었다. 처음에는 연주 전 손을 아끼느라 팔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봐도 양팔이 없었다. 의아해하는 나를 뒤로한 채 그는 무대로 나갔고 특별해 보이는 호른 받침대가 그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무대 세팅이 끝난 후 그가 의자에 앉았다.
그는 구두를 신었지만 양말을 신지 않았다. 구두를 벗은 그는 고정대 위에 누워 있는 호른의 피스톤에 왼발을 가져다 댔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연한 영화 <나의 왼발>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이동호와 제주연합윈드오케스트라(제주도립서귀포관악단과 제주윈드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그는 수월하게 연주를 해나갔다. 청중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후 걱정하고 슬퍼하며 동정하는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그가 매우 훌륭하게 연주를 이어가자 이내 객석은 감동으로 가득 찼다. 놀라움과 감격스러움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3악장 피날레까지 자유자재로 연주했다. 그의 발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에 청중들은 빠져들었다. 곡이 끝나자마자 환호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독일의 호른 주자 펠릭스 클리저는 이에 화답하여 드뷔시의 <사냥꾼들의 랑데뷔>를 연주했다. 탄성은 더욱 커졌다. 다음날 제주문예회관에서 열린 <마에스트로 콘서트>에 출연한 클리저는 피아니스트 야마모토의 반주로 베토벤의 호른 소나타 F장조 Op.17을 연주했다. 그를 받아들이는 청중의 모습은 개막 공연 때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팔이 없는 그의 모습에 놀라고 연주를 시작할 때는 걱정과 동정심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가 그의 빼어난 연주를 듣고는 경이로움과 환희 속에서 열광했다. 청중들은 그의 인간승리에 격려와 갈채를 보냈다
장애를 극복한 세기의 음악가들
이틀간 클리저의 훌륭한 연주를 감상한 후, 서양음악사 속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음악가들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가까운 예로 ‘눈 먼 천사’라는 별명의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먼저 생각났다. 보첼리는 어린 시절 심한 약시였는데,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를 보다가 공을 맞아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하지만 그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열심히 공부해 법대에서 변호사 자격증까지 땄다. 이탈리아 전통의 산레모 가요제에 나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오늘날의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이자 셀러브러티로 승승장구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보첼리는 시각장애는 장애도 아니라는 듯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자전거도 타고 승마도 한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처럼 빠른 스피드로 말이다. 스카이다이빙까지 할 정도로 인생에 대해 긍정적이다. 이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마인드는 보첼리를 큰 성공으로 이끌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손을 잃었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작곡가 라벨은 비트겐슈타인이 좌절하거나 은퇴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완성했다. 이 곡은 빈에서 라벨의 지휘와 비트겐슈타인의 왼손 연주로 초연됐다. 비트겐슈타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계기였다.
음악사에서 역경을 극복한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베토벤이다. 청력을 잃는다는 건 작곡가로서 천형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까지 쓰기도 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극복하고 인류의 대화합을 꿈꾸는 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했다. 만약 그가 인생을 포기했다면 인류는 이 ‘위대한 유산’을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펠릭스 클리저의 역경을 뛰어넘은 연주를 보면서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 글 장일범 음악평론가. 팟캐스트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 그림 정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