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큰 나라다. 큰 나라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자신이 본 일면만으로 중국을 단정하는 것은 성격의 경솔함, 혹은 경험의 일천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중국을 함부로 낮추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격을 낮추는 일이 될 수 있다. 어제의 중국과 오늘의 중국이 다르고 34개의 성·자치구·직할시·특별행정구마다 특징이 다른데 이들을 함부로 뭉뚱그리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중국에 대해 말하기가 거울이 되는 것은 중국을 비난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랫동안 홍콩에서 문화연구를 했던 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은 홍콩인들의 중국 비난에서 이런 현상을 보았다. 홍콩인들은 우산혁명 이후 자신들이 반대한 것이 중국인지, 중화인지, 중국공산당인지, 중국 본토인(대륙인)인지 헷갈린다고 한다. 이런 것을 반대하면서, 반대편에 자신들만의 홍콩이, 홍콩 정신이, 홍콩 민주주의가, 홍콩인이 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큰 거울을 통해 홍콩을 들여다본 셈이다.
하나의 나라가 아닌 하나의 대륙
눈앞에 보이는 중국이 중국의 전부가 아니다. 중국을 볼 때는 중후장대한 중국이, 격조 있는 중국인이, 고급스러운 중국 제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좀 더 차분하게 지켜봐야 한다. 중국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중국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려운 나라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기자협회 중국단기연수로 방문한 베이징에서 그 말을 실감했다.2010년에도 한국기자협회와 중국기자협회의 교류 협력 프로그램으로 중국을 찾은 적이 있는데 많은 변화가 읽혔다. 그때와 지금 한국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당시에는 한국을 ‘배울 것이 있는 나라’로 본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한 수 아래의 나라’로 보는 시선이 역력했다. 한국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10년에는 중국기자협회 측의 대접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융숭했다. 사드 갈등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보다 태도가 확연히 냉담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 대기업 법인장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중국과의 격차가 온몸으로 느껴진다며 “사드 때는 핑계 댈 것이라도 있었지만 사드 한한령이 풀리고 있는 지금은 핑계거리도 없어졌다. 우리의 진짜 성적표를 받아보고 있는데 초라하기 그지없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기업의 패착으로 ‘하나의 중국’을 상정한 것을 꼽았다. 중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34개의 나라가 모인 ‘하나의 대륙’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렇다’고 쉽게 규정을 내리고 마케팅 전략을 폈는데 판판이 깨졌다고 한다.
1, 3 만리장성 금산령 구역과 자금성.
2 중국단기연수 때 방문한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동닷컴 본사.
4 베이징 거리의 노점.
멍 때리기에서 벗어날 때
중국단기연수 중 이욱연 서강대 중국연구소 소장은 우리와 비슷한 여정으로 베이징(연경)과 승덕(열하)을 여행하고 <열하일기>를 남긴 연암 박지원 선생이 “중국의 장관은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에 있다”라고 말한 것을 예로 들며 중국인의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신을 설명했다. <열하일기>를 들고 베이징과 승덕을 여행하며 지금 중국의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을 찾았다.
연수 기간 동안 발견한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은 차로 분리대와 공중화장실이었다. 베이징의 간선도로에는 중앙 분리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선별로 차로 분리대가 있었다. 그래서 혼잡한 구간에서 정해진 차로로만 차들이 빠져나가게 해 병목 현상을 방지했다. 중국의 시민의식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도를 통해 이를 거의 완벽하게 방지했다.
다른 하나는 대로에 일정한 간격(1~2km)으로 설치된 공중화장실이었다. 늦은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고 문을 열어놓아 행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노상방뇨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화장실은 깔끔했다.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보았지만 이 정도로 공중화장실이 잘된 곳은 보지 못했다. 차로 분리대와 공중화장실은 베이징만의 특수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중국의 문명 개조는 인상적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2기에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전면에 내세웠다. 문득 중국이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멍 때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은 중국만 보면서 말이다. 서울에서 보는 중국 관광객의 모습이 중국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들의 시민의식을 지적하며 정신승리를 하는 동안 중국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중국‘멍’에서 깨어날 때다.
- 글·사진 고재열 시사IN 편집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