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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3월호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봄처럼 사랑스러운 오페라
봄이 되면 늘 떠오르는 오페라가 있다. 평생 70편이라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쓴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다.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오페라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사랑의 묘약>이 떠오르는 이유는 마치 봄바람처럼 살랑거리고 마음을 설레게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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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코믹 아리아

농촌을 배경으로 한 <사랑의 묘약>은 예부터 이탈리아에서 내려오는 전원극의 얼개를 띠고 있다. 즉 사랑하는 두 청춘 남녀(여기서는 신분이 낮은 농촌 총각 ‘네모리노’가 지주계급의 아가씨 ‘아디나’를 짝사랑한다.)가 주인공이고 여기에 이웃마을에서 제복을 입은 멋진 군인 ‘벨코레’(늠름한 육체미를 갖춘 그의 이름이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것도 재미있다.)가 등장해 네모리노의 사랑을 방해한다.
음악은 싱그러움과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 네모리노의 첫 번째 아리아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Quanto e bella, quanto e cara)에서부터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디나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부르는 노래다.네모리노도 글을 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한숨만 쉬며 방법을 찾지 못하던 네모리노 앞에 강력한 방해자가 나타난다.바로 부대를 이끌고 온 늠름한 벨코레 상사인데, 그는 아디나에게 꽃을 바치면서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아디나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바로 이때, 마을에 ‘둘카마라’ 박사가 요란하게 등장한다. 옛날 우리 장터에도 자주 나타나던 엉터리 약장수다.둘카마라 박사는 두통, 치통, 요통, 당뇨병, 부인병을 고쳐주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름살도 펴준다는 만병통치약을 판다. 이 장면에서 둘카마라가 부르는 노래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적 오페라)의 바소 부포(basso buffo: 희극적 오페라의 베이스 역) 중에서도 ‘역대급’ 코믹 아리아다.보통 베이스는 진지한 오페라에서는 매우 진중한 역할, 즉 왕이나 성직자, 근엄한 아버지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오페라 부파에서는 느릿느릿한 베이스도 재빠르고 경쾌하게, 속사포처럼(마치 요즘의 랩처럼) 노래를 불러 청중들을 즐겁게 해주고 폭소를 터트리게 한다. 바로 그런 재미를 주는 역할이 둘카마라 박사다.이 모습을 본 네모리노는 둘카마라에게 아디나가 읽어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내가 마시면 상대방이 날 사랑하게 되는 묘약’이 있냐고 묻는다. 둘카마라는 “바로 내가 발명한 약”이라면서 네모리노에게 약을 팔고 네모리노는 이 묘약을 마신 후 바로 기분이 좋아진다.사실 그 약은 보르도 레드와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부르는 둘카마라 박사와 네모리노의 2중창은 빠르고 리드미컬하며 대사도 재미있어서 전반부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속사포처럼 또르르 구르는 이탈리아어의 특징이 뚜렷이 나타나 무척이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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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제티의 새로운 시도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후반부에 나온다. 도니제티는 이 오페라에서 놀라운 실험을 한다.코믹 오페라 속에 구슬픈 테너의 아리아를 집어넣은 것이다. 초연을 준비하며 도니제티가 이 곡을 썼을 때, 극장장과 대본 작가 등 주위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니제티는 이 곡을 넣어야만 오페라가 성공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밀어붙였고 결국 이 곡은 역대 테너 아리아 중 가장 개성 있고 독특한 곡으로 손꼽히게 되었다.바로 <남 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다. 둘카마라박사에게서 산 사랑의 묘약을 마셨는데도 아디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자 네모리노는 양이 적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연적인 벨코레의 부대에 입대한다. 그리고 입대해 받은 돈으로 또 묘약을 사서 마신다.
네모리노가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군대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디나는 네모리노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린다.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본 네모리노도 드디어 아디나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숙연해한다.정말로 원하던 것을 얻으면 뛸 듯이 기쁘기도 하지만 이렇게 네모리노처럼 숙연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곡은 <라 보엠>의 <그대의 찬 손>이나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저음에서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터트리는 일반적인 테너 아리아들과는 달리, 고음에서 저음으로 내려오는 하강음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우울한 바순 사운드와 테너의 목소리가 함께하는데 슬픈 곡이 아니라 기쁜 곡이라니! 결국 이 곡은 언제나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로 앙코르를 요청하는 명작이 되었다.도니제티의 역설적이면서도 시대를 앞선 시도가 <사랑의 묘약>을 대성공으로 이끈 셈이다. 이 봄,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권한다.

글 장일범 음악평론가. 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과 MBC 를 진 행하고 있다
그림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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