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자 최초의 근대식 호텔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10월 10일 문을 연 이 호텔은 올해로 개관 104주년을 맞습니다. 독일 건축회사 게오텔란트가 설계하고, 조선철도국이 설립한 이곳은 서울 중심부에 북유럽 양식의 4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광복 후 미군이 이 호텔을 운영하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교통부가 인수해 정부 직영으로 운영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집무실로 사용되기도 했고요. 6·25전쟁 중에는 문을 닫았으며 1951년 4월 다시 미군이 1군단 중앙정양처로 사용하다가 이듬해부터는 미8군 고급장교의 숙소가 됐다고 합니다.
웅장한 응접실을 비롯해 다이닝룸, 귀빈 접대실, 콘서트홀 등을 갖춘 이 호텔에 처음으로 프랑스식 레스토랑이 들어섰고, 뷔페도 처음 소개됐습니다. 1953년에는 마릴린 먼로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이 호텔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화재 이후 빠르게 발전한 호텔
1958년 이 호텔에 화재가 났습니다. <사진>은 그해 8월 31일 호텔 4층에서 난 불을 소방관들이 끄는 장면입니다. 당시 신문기사에는 경유 난로 연통 과열이 화재 원인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화재를 계기로 교통부가 미군에 이 호텔을 다시 명도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는 미군에 징발당한 이 호텔을 여러 차례 돌려달라고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61년에 미군 측으로부터 돌려받았습니다. 당시 교통부는 이 호텔을 총리 관저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하고, 관광호텔로 유지했다고 하네요.
‘집에 불이 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 이 호텔도 화재 후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1964년 태평양아시아지역관광협회(PATA) 총회 워크숍을 유치했고, 1967년에는 호레이쇼 험프리 미국 부통령이 머물기도 했습니다. 1970년 현재 모습인 20층의 현대식 건물로 개축했습니다. 1979년 미국 웨스틴호텔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어 ‘웨스틴조선호텔’로 새로 태어났고, 1995년에는 신세계그룹이 웨스틴 지분을 100% 인수했습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하얀 테두리로 둘러싸인 201호가 VIP룸이었습니다. 이 방에 처음 묵은 한국인은 이승만 대통령이었으며, 임시정부 주석인 김구 선생도 이 방에 묵었습니다. 이 대통령 다음으로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가 이 방의 주인이 됐고, 험프리 부통령도 이 방에 투숙했습니다.
<사진> 1958년 호텔 화재 모습.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
조선호텔 터는 조선 태종이 둘째 딸인 경정공주를 평양부원군 조대림에게 강가(降嫁, 왕족의 딸이 신하의 집으로 시집가는 것)시킨 후
그들의 보금자리를 지어준 곳입니다. 이 저택을 ‘소공주택’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소공동이라는 지명이 됐습니다.
호텔 자리에는 대한제국 때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이 있었습니다. 일제가 민족 혼을 끊기 위해 1913년 환구단을 허물고, 이 호텔의 전신인 조선철도호텔을 지었습니다. 또 환구단 정문과 전각 등을 곳곳에 흩어놓았다고 합니다. 2007년 우이동의 한 호텔에서 환구단 정문이 발견돼 원위치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복원됐습니다. 현재
환구단 부속건물인 황궁우(신위를 모신 곳)가 남아 있습니다. 황궁우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제를 상징하는 용 그림이 있습니다. 서울 중구청은 2013년 황궁우 앞에 있던 일본식 석등과 나무, 잔디정원 등을 걷어내고 전통형으로 복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환구단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 사진 김천길_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 글 김구철_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