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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8월호

근현대사를 재해석한 영화들 ‘국뽕’으로부터의 자유
<박열>, <군함도>, <택시운전사> 등 근현대사를 재해석한 영화들이 연달아 개봉, 혹은 개봉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연평해전>이나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가 잇따라 흥행한 반면, 최근에는 국가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모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이다.

이것은 ‘국뽕 영화’가 아니다

“극단적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감성팔이’나 ‘국뽕 영화’가 아니다. 전쟁영화가 아닌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에 지진이 났을 때 한국이 생수도 보내고 하지 않았나. 한일을 떠나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감정을 그린 작품이다.”(류승완 감독) “소위 ‘국뽕 영화’라고 한다면 스펙터클한 버라이어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박열>에는 그런 것이 없다. 박열은 실존 인물이기 때문이다.”(이준익 감독)
요약하자면 ‘이것은 국뽕 영화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일제 강제징용을 고발하는 영화 <군함도>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과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박열의 삶을 다룬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 둘 다 자신의 영화가 ‘국뽕’으로 읽힐까 두려워했다. ‘국뽕’은 국가와 뽕(마약)의 합성어다. 왜 이들은 자신의 영화가 국가라는 마약을 주입하는 애국신파물이 아니라고 항변할까? 이런 ‘국뽕포비아’ 현상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국가주의 경향이 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건전가요’가 박근혜 시대에 ‘건전영화’로 바뀌었다고 할까. 국가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연평해전>이나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가 연거푸 개봉하고 흥행했다. 안중근 의사를 그린 뮤지컬 <영웅> 같은 작품도 이런 계열로 볼 수 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사선에서>는 아직 개봉 전인데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받기도 했다.
국가주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문화콘텐츠는 국가의 통치행위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왜 국가에 반대하고 비판하느냐, 이런 문제의식에서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이런 잘못된 문화예술관은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고 국민의 의무만 강조했던 잘못된 법치주의와도 궤를 같이한다. 법치주의는 원래 법에 의한 지배로 통치권력을 규제하는 것을 말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보여주듯 그들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뒤에서 사익을 추구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발심은 그들의 문화정책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 그들을 편드는 ‘종북 사냥’이 있었다면 그 반대편에는 ‘국뽕 사냥’이 있었다. 그 와중에 <명량>이나 <국제시장>과 같은 영화는 과도하게 공격받기도 했다. <명량>에서 이순신이 “충은 임금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라고 명확히 밝히는데도 불구하고, <국제시장>은 시대에 대한 합리화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산 인물에 대한 합리화인데 ‘국뽕 영화’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고재열의 썰 관련 이미지1 <택시운전사>
2 <박열>
3 <군함도>

국가주의 영화에서 국가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사실 영화제작자들에게 ‘국뽕’은 치명적 유혹이다. 국가주의 영화를 제작하면 국방부 협조를 얻어내기 쉬운데 그럴 경우 제작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애국신파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뽕’은 블록버스터 코드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동안 블록버스터가 남북관계 영화에서 많이 나왔는데 그 중심에 반공코드가 있었다. 대작영화를 만들려면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한국영화는 변화하고 있다.(정확히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 영화로 봐야겠지만.) <박열>, <택시운전사>, <군함도> 등 근현대사를 재해석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영화들은 국가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그 차이를 비교한다면, 국가주의 영화에서 ‘국가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해야 할바를 주장하지 않고, ‘국가란 무엇인가’ 또는 ‘국가는 어떠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택시운전사>에서 김만섭(송강호 분)이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거듭 말하는 장면은 국가를 대신해 사과하는 장면으로 읽힌다.
영화는 적대적인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콘텐츠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동안의 국가주의 영화들은 선악구도로 가르고 적을 일차원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단순히 선악구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들의 시선으로 상황을 들여다볼 때 그 깊이가 나온다. <박열>에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에 박열을 돕는 일본인들이 나온다. <박열>은 또 일본 국민과 일본 제국주의를 분리하고, 제국주의자들의 책임을 물으면서 그들이 앞에 내세우는 ‘문명국 이데올로기’를 논박한다.(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와 같은 맥락이다.)
<군함도>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이나 <베를린> 등에서 ‘위기 상황에 처한 인간’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오느냐를 다뤘다. <군함도>에서는 집단이 함께 한계 상황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적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다. <베를린>에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상황을 피할 수도 있는데 굳이 위험한 일을 자처하는 국정원 직원 정진수(한석규 분)에게 이유를 묻자, “왜가 어디 있어? 직업이니까 하는 거지”라고 싱겁게 답한다. 그냥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뽕’이라는 영화계의 MSG를 넣지 않은, 이런 근현대사 재해석 영화들이 흥행한다면(<박열>은 이미 관객수 200만 명을 넘어섰다.) 비로소 우리 영화계가 ‘국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국뽕’에 의지해서도 안 되지만 의식해서도 안 될 것이다.

글 고재열_ 시사IN 편집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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