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운 작 연장근무
* <10분 희곡 릴레이>는 젊은 작가 혹은 지망생들의 재기발랄한 10분 단막극입니다.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人에 가시면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webzine.e-st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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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남자 알바 20대 후반 | 공무원 시험 수험생
여자 알바 20대 초반 | 대학생
무대 한적한 동네에 자리한 편의점. 입구 옆에 파란색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수고해’라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입구에서 나오는 남자 알바. 잠시 머뭇거리다가 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잠시 스마트폰을 꺼내 이리저리 만진다. 잠시 후, 여자 알바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와서는 기지개를 켠다.
- 여자 알바
- 에휴, 오늘도 이 긴긴 밤을 어찌 보내나?
여자 알바, 잠시 비질을 하다가 남자 알바를 발견한다.
- 여자 알바
- (놀라며) 어, 안 가셨어요?
- 남자 알바
-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됐어.
- 여자 알바
- 시험이 낼모레라면서요. 얼른 들어가 책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봐야죠.
- 남자 알바
- 그게… 지금 집에 들어가기가 곤란해.
- 여자 알바
- (옆에 앉으며) 뭔 일 있어요?
- 남자 알바
- 동생이 결혼할 사람 데리고 온대.
- 여자 알바
- 우와, 그럼 얼른 들어가서 제수씨 될 사람 구경해야죠. 예쁘려나?
- 남자 알바
- 창피해서….
- 여자 알바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창피요?
- 남자 알바
- 요 모양 요 꼴이라….
- 여자 알바
- (잠시 남자 알바의 옷차림을 훑어본 뒤) 제수씨 오기 전에 좀 씻고 옷 갈아입으면 될 것 같은데. 아, 얼굴에 화장품도 좀 발라야겠어요. 왼쪽 볼에 여드름 너~무 흉해.
- 남자 알바
-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머뭇거리다가) 백수잖아.
- 여자 알바
- (이제야 상황 파악했다는 표정) 아아… 그래도 백수는아닌데. 일주일에 3일은 여기로 출근하잖아요.
- 남자 알바
- 직장은 아니지.
- 여자 알바
- 직장이죠. 월급이 좀 적고 4대보험이 없다는 거 빼면….
- 남자 알바
- 그렇다고 제수씨한데 저 세븐일레븐에서 퇴근하고 오는 길입니다. 이럴 순 없잖아.
두 사람 잠시 침묵
- 여자 알바
- 그래도 얼굴은 비치셔야죠. 평생 안 볼 사람도 아니고.
- 남자 알바
- 그래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방금 전에 연락왔네. 저녁 늦~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 여자 알바
- 누가요?
- 남자 알바
- 동생이랑… 아버지도… 엄마도 그러는 게 낫다고 하고….
- 여자 알바
- 이제 해 떨어지는데 어디 가서 뭐하실 거예요?
- 남자 알바
- 그러게. 간만에 친구들이나 불러내서 술이나 한잔 할까?
- 여자 알바
- 불러낼 친구들은 있어요?
- 남자 알바
- 글쎄….
남자 알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 남자 알바
- 얘는 회사가 부산이라 안 되고… 얘는 지금 한창 장사하고 있을 테고… 얘는 지금 애 보고 있으려나? 얘는… 그래 얘는 지금 퇴근했겠다.
남자 알바, 신나는 표정으로 전화를 건다.
잠시 신호음이 간다. 이윽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 남자 알바
- 창수냐? 나야 경호. 오랜만이다. 나? 나야 뭐 계속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지. … 어, 맞아. 이번에도 경쟁률 장난 아니야. 뭐, 어쩌겠어. 이 나이에 어디 신입으로 받아주는 회사도 없고… 이걸로 끝장 봐야지. 웬일로 전화했냐고? 아니, 간만에 네 생각나서 퇴근 중이면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어? 오늘 너네 부서 회식이라고? 그럼 안 되겠네. 아냐 아냐, 불쑥 전화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전화할게. 그래 들어가.
남자 알바, 실망한 표정으로 바뀐다.
- 남자 알바
- 아무도 없네. 나랑 같이 술 마셔줄 사람이.
- 여자 알바
- 연락처 백 개 중에 하나도 없어요?
- 남자 알바
-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 여자 알바
- (난감한 표정) 어, 그럼 요 앞에 새로 생긴 공원에 가보실래요? 거기 분수가 장관이라던데, 밤에 조명도 막 쏴주고. 아님 사거리 백화점의 극장도 시간 때우기엔 괜찮아요. 저녁 늦게 가면 할인도 해줘요.
- 남자 알바
- 그럴까?
이때,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여자 알바가 편의점 유니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받는다.
- 여자 알바
- 여보세요, 응, 철민아. 나? 뭐하긴 지금 알바중이지. 뭐라고? (놀라는 표정) 아, 맞다. 오늘 너랑 거기 가기로 했었지. 아나 깜빡했어. 어쩌지?
이때 여자 알바랑 남자 알바 서로 시선이 마주친다.
- 여자 알바
- 잠깐만… (남자 알바를 향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저기… 저….
- 남자 알바
- 땜빵해줄까?
- 여자 알바
- (환해진 표정) 그래줄래요? 죄송해요. 제가 그만 데이트 약속을 깜빡하고….
- 남자 알바
- 괜찮아, 어차피 갈 데도 없었는데 뭘.
여자 알바, 잽싸게 유니폼을 벗어 남자 알바에게 건네준 뒤 무대 오른편으로 퇴장한다.
남자 알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 남자 알바
- 어, 엄마! 제수씨 왔어? 나 오늘 연장근무야. 잘됐지 뭐. 낼 새벽에나 들어갈 거야. 그러니까 제수씨한테는 야근한다고 그러고.
통화를 마치고 여자 알바가 내팽개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기는 남자 알바
- 남자 알바
- 이 긴긴 밤을 어찌 보내나?
입구로 들어가면서 암전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