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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작가 조영주의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조영주는 설치·사진·영상·퍼포먼스·무용 등 한 가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한 작가는 2012년부터는 서울로 돌아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다. 2020년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금천예술공장에 입주, 2022년에는 재단이 진행하는 제1회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Unfold X’에 참여했으며, 지난 4월까지는 제20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을 기념한 개인전 《카덴짜》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올 하반기에는 부산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미술관 밖 프로젝트#1-6 열 개의 눈》(10월 20일까지 동아대학교 석당미술관)과 강원국제트리엔날레 2024(10월 27일까지) 등 전국 곳곳에서 조영주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적 관심사와 경험에서 찾은 작업의 실마리

작가는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 사이 관계를 파고들고,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탐구한다. 나아가 여성 혹은 여성 예술가의 실질적 고민을 사회문화적 틀 안에서 풀어낸다. 주제의 다양성만큼이나 다루는 매체에도 제한이 없다. “작업을 먼저 구상한 다음 표현에 적합한 매체를 찾다보니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아요. 또 학창 시절부터 여러 매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공연예술을 좋아했죠. 연극이나 발레 등도 자주 접하고, 마당극과 사물놀이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어요. 미대생 시절에는 오히려 전공보다 연극반 활동을 더 열심히 할 정도로요.”

사실 조영주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퍼포먼스나 비디오아트가 학생에게 익숙한 매체는 아니었다. “단지 개인적 관심사였던 연극이나 공연을 작품 재료로 사용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파리에서 막 공부를 마치고 온 강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연극반 활동이 작품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그때부터 퍼포먼스나 비디오를 매체로 삼은 거죠. 그러다 파리 유학길에 올랐는데, 프랑스에서는 현대무용이 미술의 영역에 포함되고 시각예술 페스티벌에 댄스 비디오가 항상 등장하더군요. 공연예술의 힘이 굉장히 강한 나라잖아요. 학교에서 무용·비디오·사운드·영화 등 다양한 강의를 접하면서 체득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제 작품에 등장했어요.”

개인적 경험이 매체에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연극 동아리에서 경험한 은은한 남녀 차별, 프랑스·독일 등 고국과 타지를 오가며 겪은 사회 속 차별과 고정관념 등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가 됐다. 작가가 직접 보고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질문을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결국 모든 작품의 출발점은 항상 조영주 자신이었다. 그동안 이방인, 다문화, 차별, 인종, 계급, 환경, 난민, 여성,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와 이슈를 다뤘지만, 작품을 단순히 특정 주제만으로 카테고리화할 수 없는 이유다. “스스로에게 관심이 많아요. 제 이야기지만 곧 어떤 사회와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을 의미하죠. 제가 태어나 죽는 시점까지, 그 안에서 깊게 경험하면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잖아요. 간접적 지식보다는 제가 직접 영향을 받은 지점이 곧 제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고요. 그런 모든 관심이 저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한 다리 건너 존재하는 얘기는 잘 못해요. 사실 개인적 경험이 모든 작품의 동기가 될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일상에서 조금 이상함이나 의아함을 느끼는 지점이 있을 거예요. 평범하고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미묘한 지점을 경험하고, 파고들어 탐구하고, 관람객과 공유할 방법을 고민해요. 그 지점을 제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찾는 것 또한 제가 매체를 제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해요.”

이렇게 개인적 경험에서 근거한 작업이지만 대부분 사회 부조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품으로서 무언가를 발언하고 표현하게 하는 동기가 있어요. 행복하고 만족할 때 발언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대로 살아가면서 이상함과 부조리함을 느낄 때면 타인의 생각이 궁금해져요. 제 작품이 화두를 던지고 발언하는 동기가 되는 거죠.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저뿐인지, 개인 혹은 사회의 문제인지, 성별이나 세대가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궁금증이 솟아나거든요. 제 작품을 수단이자 매개체로 삼아 이런 질문의 동기 부여를 계속하는 거예요.”

물론 조영주는 그런 부조리함을 작품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덕분에 우리는 사회의 불합리한 지점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다. “제 작업으로 부조리함을 해소하려는 의도는 없어요. 예술가는 절대 액티비스트가 될 수 없고, 예술이 직접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한 이슈를 수면 위로 올려놓으려는 노력의 일종이에요. 그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 작가로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

그런 조영주의 작품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성 서사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겪는 불합리함을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2010년대 중반에 제작한 <꽃가라 로맨스>2014, <그랜드 큐티>2015, <디바들의 외출>2015 같은 작품에서 중년 여성의 삶을 주목했고, 2021년부터 2023년에 걸쳐 여성 예술가가 겪는 고민, 육아 경험과 돌봄 노동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언폴드엑스’에서 선보인 <이산 신체 재회>2022와 송은 개인전에서 소개한 연작 격의 작품 <이산 신체 해후>2024에서는 현대에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여성 신체 이미지를 꺼내 들었다. 최신작 <솔리스트들>2024에서는 이주여성으로 구성된 행복메아리합창단의 목소리를 담아 여성으로서 느낀 사회적 불평등을 합창 퍼포먼스로 구현하면서 개인적 이슈뿐 아니라 이주여성 문제로도 관심을 확장해나갔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현시점에서 이렇게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여성 작가의 존재는 큰 의미를 지닌다.

“저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만일 내가 백인 남자였다면 무슨 질문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계속 품고 있어요. 저는 아시아 여성이니까 여성으로서 제게 주어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제 작품이 여성 이슈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곤 하지만, 그걸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라고만 단언할 수는 없으니까요. 수많은 여성이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 있어요. 저는 단지 제가 처한 문화적 배경, 국적, 상황 등에서 경험한 제 얘기를 그대로 할 뿐이에요.”

특히 출산과 육아를 겪은 후 작가의 역할과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을 아우르는 현실적 고민이 배가됐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1970~80년대부터 급진적 작품 활동을 해온 오를랑ORLAN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어요. 마침 2016년 성곡미술관 개인전으로 방한했을 때, 학교 출신들이 다 같이 모였죠. 약 10년 만에 선생님을 다시 뵌 자리였는데 그때 제가 만삭이었거든요. 저를 보더니 대뜸 ‘너 작업을 어떻게 하려고 애를 가졌니?’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저 스스로 이미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저는 임신 전에도 한국 여성의 삶을 다뤘지만, 결국 제가 이 사회 현실에서 임신한 여자 작가가 된 거죠. 신체적 제약 때문에 커뮤니티아트나 야외 프로젝트 기회가 줄어들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서 학교나 미술관에 최대한 임신 사실을 숨겼어요. 그런 상태에서 선생님이자 선배 작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서운했죠. 하지만 실은 그게 현실이에요. 제가 출산 전에 했던 여성 이야기와 출산을 겪고 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 모두 제 이야기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더 처절했어요. 현실을 직면하면서 이야기가 더욱 확장된 거죠.”

조영주는 얼마 전,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 광주비엔날레 30주년 특별기념전 《오를랑 하이브리드: Artistic Intelligence》의 토크 패널로 오를랑과 8년 만에 재회했다. “그 얘기를 다시 꺼냈어요. 유럽 여성은 아시아 여성에 비해 특권을 가진 사람들인데 아시아 여성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 물었더니, 오를랑은 ‘절대로 프로페셔널한 아티스트와 좋은 엄마가 동시에 될 수 없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생물학·사회적으로 이미 에러error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인간 한 명이 태어나면 얼마나 환경을 파괴하는지 아느냐’ 같은 말을 하더군요. 물론 기분이 안 좋았죠. 하지만 오를랑의 답변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성 작가로서 치열하게 싸우고 버틴 삶의 반증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이번에는 그 이상의 깨달음이 있었어요. 제가 이 지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더 생각하면 좋을지 건설적 질문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이산 신체 재회>, 2022, 이원생중계 라이브 퍼포먼스, 2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0분
안무&공동연출: 임은정
퍼포머: 김기영, 명지혜, 박소희, 박지현, 송영선

Discrete bodies reunite, 2022, live satellite performance, twochannel video, color, sound, 20min
Choreography & Co-direction : Eunjoung Im
Performer : Giyoung Kim, Ji Hye Myeong, Sohee Park, Ji Hyeon Park, Young-sun Song

<솔리스트들>, 2024, 라이브 퍼포먼스,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5분
합창단: 행복메아리
합창단원: 김발렌티나, 마니바자르 암가마, 손순남, 아베 미츠코, 어트건바야르 아즈자르갈, 안은경, 아니셴코 옥사나, 왕금봉, 왕진홍, 이선이, 전경진, 구도 사치코, 하세가와 아키미

Soloists, 2024, live performance,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5min
Choir : Echo of Happiness
Choir Member : Valentina Kim, Amgaamaa Manibazar, Soon Nam Son, Mitsuko Abe, Azjargal Otgonbayar, Eungyeong An, Oksana Anishchenko, Geumbong Wang, Jinhong Wang, Seon Yi Lee, Kyungjin Jun, Sachiko Kudo, Akimi Hasegawa

20여 년에 걸쳐 치열하게 담아낸 진심

오를랑만큼이나 조영주 또한 어쩌면 유럽보다 여성 작가에게 더 열악한 환경인 이곳 한국에서 20여 년에 걸쳐 여성 작가로서 더욱 치열하게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단 한 번도 작업에 허투루 임한 적이 없다.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무엇도 소홀히 하면 안 돼요. 소재와 주제는 물론이고, 전시 형식으로 갈지 매체적으로 구현할지도 고민해요. 전시 장소에 따라서도 작품을 보여주는 포맷이 다르거든요.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꼼꼼히 준비해요.”

그뿐만 아니라 한번 작품 구상을 시작하면, 리서치 과정에서도 전력을 다한다. 관련 서적이나 논문도 찾아보지만, 대부분 직접 발로 뛰며 실제 인물을 만난다.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단체를 직접 찾아가고 주로 직접 목소리를 듣는 편이에요. 지난해 런던 델피나재단Delfina Foundation 레지던시에 입주했을 때도 유럽의 많은 단체에 방문했어요. 파독 간호사 중심의 연극과 무용 동아리, 아시아의 젊은 젠지Gen-Z 커뮤니티,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아시아 여성의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커뮤니티 등을 내년에도 찾아갈 계획이에요. 인터뷰하면서 그분들의 신체와 제스처 등을 옆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많이 배울 수 있거든요.”

개인 작업뿐 아니라 다양한 컬래버레이션과 콜렉티브 활동, 전시 및 프로젝트 기획 등을 겸했다. 워낙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만큼 전문성이 필요한 지점에서는 많은 협업자를 초대했다. 드라마터그·안무가·카메라감독은 물론이고, 작품에 따라서는 요가 강사·정신분석가·재활치료사와도 함께했다. 그만큼 크레디트에도 많이 신경을 쓴다고. “일본 작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작품 마지막 크레디트에 자신의 역할로 케이터링·청소까지 다 쓰더군요. 저도 그래요. 기금 조달 등 많은 역할을 해요. 하지만 저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힘을 보태서 완성한 작업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그분들의 노력과 수고를 제대로 관객에게 드러내고, 모두 함께 인정받으면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고민해요. 많은 시행착오와 다툼을 겪었고 부당함에 맞선 적도 있어요. 제 작품에는 조영주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해요. 늘 제 생각은 그분들의 노력에 모자라요.”

개인 활동만큼이나 10년에 걸쳐 매진한 ‘글로벌 에일리언Global Alien’ 콜렉티브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마무리했다. “콜렉티브로 많은 걸 배우고 경험했죠. 정말 뜻깊은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이제는 개인 작업에 더욱 몰두할 생각이에요. 제 프로젝트 안에서는 제가 모든 책임을 감수할 수 있으니까요. 그 시작점으로, 내년 상반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선보일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 일 년 동안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에 있는 얀 판 에이크 아카데미Jan van Eyck Academie 레지던시에 입주할 계획이에요. 그동안 숨 쉴 틈 없이 달려왔거든요. 아무래도 레지던시에서는 시간 여유가 있을 테니까 제 작업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정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지점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환기가 필요해요. 유럽 현지에서 한국과 아시아 여성의 이주에 관해 리서치할 생각이에요. 이주여성에게는 해외 입양, 노동, 결혼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다양하게 파고들어 공부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쉼 없이 작품에 매달리면서도 작품의 공을 다른 이에게 돌리는 조영주에게 남은 한 해를 비롯한 앞으로의 시간이 의미 깊은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백아영 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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