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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함께하는 배우 우미화의 온도

여러 작품에서 만난 배우 우미화는 좀 차가웠다. 냉기가 흘러서가 아니라, 그의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아서였다. 스스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영화 <목화솜 피는 날>2024의 신경수 감독이 딸을 잃고 기억을 외면한 인물에 우미화를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은 온전히 숨겨지지 않고 기어이 삐져나와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힘겹게 침을 삼키는 영화 속 수현의 모습처럼. 그래서 우미화에게 물었다. 논픽션과 픽션, 인간과 배우의 경계에 대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을 함께하셨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시나요?
연극 <뺑뺑뺑>2014을 연습하고 있었어요. 고통과 치욕, 반성하지 않은 역사가 반복되는 이야기라서, 세월호 참사 소식에 더 놀랐던 것도 같아요. 그 후로 이연주 연출의 <삼풍백화점>2016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작품 몇 편을 했지만, 직접적인 행동을 많이 한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인지 ‘10주기’라는 말에 미안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세월호 10주기를 극영화로 기록하는 작업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고 싶던 건 그간의 미안함과 죄책감, 반성의 마음 때문이었어요.

<목화솜 피는 날>이 오래되지 않은 참사를 소재로 한 ‘극영화’라서, 배우로서 여러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10주기라는 사실만으로도 꼭 해야 했지만, 배우로서 작품에 접근하는 건 다른 문제였어요. 제가 맡은 수현이 세월호 참사를 밖에서 바라본 인물이 아니라 유가족이라는 점에서 더 고민이 있었죠. 작품을 준비하면서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의 『금요일엔 돌아오렴』2015과 여러 자료를 살펴봤어요. 작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준비였지만, 유가족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제가 어떻게 전부 담을 수 있겠어요. 다행히 대본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저 역시 순간의 고통을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다가갔던 것 같아요. 영화는 둘째 딸 경은을 잃은 병호와 수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병호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반면 수현은 기억을 차단하고 집에만 머물러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무기력한 상태라서, 수현은 눈물이 나도 끝까지 참아요. 영화가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고통을 이겨내는 여러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도 작품에 개인 우미화의 시선이 담기면 안 될 것 같아서 눈물을 경계했고요.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던 수현이 기억을 잃은 병호를 찾아 집을 나서게 됩니다. 담담하지만 큰 용기로 보였어요.
수현이 집을 나가는 행동이 저에게는 이렇게 느껴져요. 아이의 죽음 이후 죽음 같은 삶을 살던 수현이 자신에게 손 내미는 다른 이들과 함께 마음껏 울고 또 다른 삶을 찾아가겠구나.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영화는 당연히 슬프고 아파요. 하지만 수현의 가족 외에도 활동가, 안산 시민, 진도 주민 등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한 사람들도 다양하게 담았어요. 그들이 있었기에 병호와 수현이 세상으로 더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목화솜 피는 날>이 ‘희망’의 이야기라고 말해요.

슬픔의 기억을 안고 다른 삶을 찾는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고통에만 머무를 수 없으니까요. <목화솜 피는 날>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어요. 그때 유가족들이 오셨는데, 저는 그분들을 첫 관객으로 생각했어요. ‘위로’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 유가족들이 ‘영화를 좋아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10년의 세월이 어떻게 영화에 다 담기겠어요. 이분들의 마음을 내가 좀 더 잘 담아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아쉬움도 있었고요. 그런데 다행히 영화를 아주 좋아해주셨어요. 그동안 유가족과 활동가들이 아프고 힘겹게 싸워온 시간이 많이 담겼다고. 저에게는 그 리뷰가 가장 소중했어요. 사실 작품 속 인물에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조금씩 녹아 있어요. 동수 아버님도 실제 2~3년간 세월호 참사와 동수의 기억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기억을 잃으셨대요. 동수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기억은 우리의 삶이고 앞으로 살아갈 힘이다.” 그렇기에 구호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생명 안전 사회로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비슷한 일이 더 발생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 ‘기억’이라는 단어가 모두 다르게 자리매김하겠지만, 이분들에게는 더 넓고 깊구나. 그래서 ‘기억’이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닿았던 것 같아요.

<목화솜 피는 날>을 포함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작품에 많이 참여하셨습니다. <말들의 무덤>2013이 양민 학살을, <하나코>2017가 일본군 위안부를 향한 사회의 시선을 다뤘죠. <썬샤인의 전사들>2016은 김은성 작가가 세월호 참사 이후 3년간 느낀 감정을 근현대사의 사건을 통해 전달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작업에 함께한 계기가 있을까요?
시대의 영향도 컸지만, 시작은 고인이 되신 김동현 선배였어요. 동현 선배와는 극단은 달라도 대학로에서 만나면 ‘언제 한번 작업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꾸준히 했어요. <말들의 무덤>이 2013년에 공연됐는데, 워크숍을 2011년부터 함께했거든요. 제주 4.3 사건부터 시작해 6.25 전쟁 전후 자행된 양민 학살을 다룬 작품이라 스터디도 하고, 여러 지역으로 답사도 다녔어요. 당시 ‘배우 우미화가 어떻게 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많았는데, 이 작업으로 ‘나’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해야한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공연 연습 때는 재현이 아닌 재연을 요구하셨어요. 녹음과 영상에 담긴 학살 목격자들의 말과 행동, 억양, 제스처까지 그대로 따라 하는 방식으로요. 전달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될 때 주제가 객석에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궁금해하셨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실제로 비극을 경험한 이들의 삶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화할 수 있겠어요. <목화솜 피는 날>의 수현도 그래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고요. 일종의 연기하지 말라는 이야기였겠죠. 하지만 대개의 역할은 배우 개인의 해석과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들어가기 마련이에요.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저니까요. ‘나’를 배제하는 작업이 어려웠고, 그래서 많이 혼났어요.(웃음) 다행히도 그 과정을 치열하게 거쳐 가는 모습을 좋아해주셨고요. 그때 배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배우로서의 고민이 많던 때였나요?
스물다섯에 연극을 시작했어요. 항상 현실의 벽이 느껴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긴 하는데 원하는 만큼 안 되니까 자질이 있나 싶고…. 배우는 선택받고 보이는 직업이기 때문에 사실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때 긴 도보 여행이 하고 싶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갔고, 걸으면서 예기치 않게 저를 정리하고 있더라고요. 앞으로의 시간에 불안해하기보다는 ‘계속 이렇게 가면 되지 뭐’ 생각하게 됐죠. 그동안은 더딘 느낌이었는데, 15년 정도 되니까 어느 순간 기회도 주어졌어요. 그때, 내가 좋아하는 게 내가 할 수 있고 조금은 잘하는 일이 됐구나 싶었어요.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는 선배들이 “10년만 버티면 돼”라는 말을 참 많이 하셨어요. 스물다섯에 시작해서 서른다섯이 됐는데도 버티고 있고, 선배들도 그렇고.(웃음)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든 것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과정이 좋았어요. 그게 좋아서 연극을 시작한 거니까 그만둘 이유가 사실 없었던 거죠. 배우의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찾아서 배우기도 하고, 사람들과 뭔가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 안 되면 울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하루하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가 컸어요.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해내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의 대부분은 보통 기다림의 시간이라서 일정 부분은 그 시간이 당연하기도 하거든요. 사실 지난 일을 돌아보고 밖에서 바라보게 되니까 ‘버틴다’는 사색의 단어를 쓰지만, 실제의 삶이 꼭 그렇지만도 않잖아요. 기쁘고 슬프고 유쾌한 시간이 쌓여서 세월이 돼요. ‘삶이 꼭 버텨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좀 씁쓸한 것 같아요.

‘혼자’보다는 ‘함께’를 선호하는 편인 것 같아요.
연극으로 시작해서 오랫동안 연극배우로 살았잖아요. 무대에서 상대 배우에게 ‘네가 있어서 내가 여기 지금 있을 수 있다’고 늘 말하거든요. 그런 작업을 주로 해온 사람이라 혼자 뭔가를 하려고 하면 여전히 부끄러운 게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나로부터 시작해 나로서 무언가를 계속 만나고 던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보니 본래의 기질과 역할 사이에서의 싸움은 계속 있죠. 2018년부터 영상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결과물을 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게 아니라 내가 준비해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여전히 적응 중이기도 하고요. 연극 20년 했다고 해서 무대가 쉽지 않은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오래 연기하신 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배우들은 계속 자기와 싸움하는 거예요.

‘함께한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김동현 연출가가 배우 우미화에게 공동 창작을 제안한 건 아닐까 싶네요.
저는 동현 선배가 너무 그리워요. 작업자로서도 정말 훌륭하시지만, 인간으로서도 그러셨어요. 잘한다고는 한 번도 안 하셨지만, “미화야 너는 좋은 배우야”라고 하셨어요. 그게 응원이지 뭐. ‘좋은 배우’라는 말 안에 선배님이 생각하는 많은 것이 있었겠죠. 이제는 물어볼 수 없지만, 그 말이 참 좋고 힘이 됐어요. 제가 이미 좋은 배우여서가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졌어요. ‘좋은 배우라는 건 뭘까’를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지내왔어요.

‘좋다’는 건 어떤 걸까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 안에 ‘잘한다/못한다’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좋은 배우’라는 말 안에는 ‘좋은 사람’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저도 화가 나고 감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 말에서 세상을 잘 바라보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나요. 저는 사실 배우로서의 삶을 쫓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한 사람으로서 잘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고 있으면 작품에 좋은 배우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제가 건강히 잘 생각하는 사람이어야겠다 싶어요. 몸과 마음 모두. ‘좋다’는 말에 함몰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무엇이 ‘좋다’고 여겨지는지도 계속 찾으면서요.

최근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게 있을까요?
몇 달 좀 쉬었어요. 두려움도 많지만, 호기심도 많아서 다양하게 배우고 있어요. ‘땅고’도 하고, 스페인어도 배우고, 재교육 프로그램처럼 연기 테크닉 수업도 받았어요. 물론 나중에 배우로서 쓸 기회가 있어도 좋겠지만, 그냥 지금 제가 느끼는 대로 느끼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하루하루가 되게 즐거우면 좋겠어요. 저는 배우로서의 역량과 자질 같은 걸 생각하면 배우 오래 못할 것 같아요.(웃음) 그러니까 개인 우미화로 건강하게 즐겁게 살고 있어야 배우로서 주어지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 공연 칼럼니스트 장경진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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