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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안성수의 춤이 짓는 필연의 묘

안무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인 안성수와 제대로 처음 대면한 건 2014년 11월 캐나다 몬트리올이었다. 영화 10도까지 쉽게 떨어지는 날씨 속에서도 정작 안성수와 한국 무용수들은 뜨거웠다. 세계적인 공연예술마켓인 제16회 시나르CINARS의 공식 쇼케이스 작품으로 선정된 안성수픽업그룹의 <장미Rose (The Rite of Spring)> 공연이 호평받았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음악적 구성을 몸을 통해 엇박자 구조로 풀어낸 <장미>는 ‘장면마다 구체적’이라는 감상평을 들으며 세계 공연 관계자들을 설득해냈다. 당시 안성수는 “저도 그렇지만, 예술가들은 취향이 세죠. 그럼에도 시나르에 모이신 분들은 우선 열려 있더라고요. 그런 점이 인상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안성수의 행보는 자신의 확고한 기질에 다른 성질을 가진 이들을 납득시키는 과정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 선보인 개성 강한 모든 작품이 흥행한 것이 그 증거다. 진심을 부러 강조하는 진부함의 우를 피하는 대신, 필연성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즐거움을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묘. 온화함 속에 숨겨둔 안성수의 비수다.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펼쳐지는 서울시발레단 창단 사전 공연 <봄의 제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 <장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여줄 안성수를 최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왜 좋은지에 대한 근거를 장면마다 만들어내고 있었다.

서울시발레단 창단 사전 공연 <봄의 제전>의 일환인 <ROSE>도 그렇고, 같은 달 국립정동극장 기획공연 <봄날의 춤>에서 선보일 <스윙어게인>도 그렇고 ‘안성수의 작품들’이 점차 우리 현대무용계 클래식이 돼가고 있습니다.

행복하죠. 제가 동료 무용수들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바탕으로 <장미>2009를 만든 지 약 15년이 됐어요. 그걸 기초로 해서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봄의 제전>2018을 만들었고, 또 그걸 베이스로 해서 지금은 발레 무용수들과 <ROSE> 작업을 하고 있죠. 새로운 게 계속 떠올라요. 물론 좋은 부분은 계속 남겠지만, 새로운 느낌의 움직임과 구성이 나와서 즐겁습니다. 이번 <ROSE>는 조금 더 화려해졌다 할까요?

어떤 부분이 더 화려해진 걸까요?

조금 더 발레 움직임을 많이 썼어요. 예전에 김보람 씨가 선보인 힙합 움직임이 아직 작품에 좀 남아 있지만, 이번에는 발레 움직임이 조금 더 많아요.

공공의 지원을 받아 발레단이 새롭게 창단하는 건 무용계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이죠. 게다가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인데요. 이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맡아 예술단체의 공공성 역할을 잘 보여주시기도 했고요.

좋은 일이죠. 우리나라에 좋은 무용수들이 많아요. 물론 그들이 외국에 진출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국내 무용계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큰 의미죠. 요즘 유럽이나 미국도 컨템퍼러리 발레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요. 그걸 서울시에서 한다는 게 큰 의미인데, 다른 시로도 퍼지면 좋겠어요.

국립현대무용단에 재직할 당시 무용단의 정체성을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해요. 국악을 적극 사용하기도 하셨죠.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일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관객이 많아진 게 가장 뿌듯했죠. 무용수뿐만 아니라 사무국 직원분들도 너무 열심히 해준 덕분이에요.

현대무용도 흥행이 된다는 근거를 마련해주신 건데, 매번 근사하고 세련된 작품을 선보여서 젊은 관객의 호응도 컸습니다. 그런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잖아요. 그런데 가르치는 것보다 그들에게 배우는 것들이 많아요. 요새 학생들은 어떤 걸 선호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계속 접할 기회가 있죠. 확실히 옛날 학생들보다는 주체성이 강해요. 자기만의 생각이 분명하죠. 그래서 대화하기가 훨씬 좋아요. 또 취향이 넓어 무용 외에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요.

2023년 5월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쿼드초이스’로 선보인 안성수 안무 <차피타씨>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학부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무용에 입문하셨잖아요.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신 만큼 지금의 학생들하고도 잘 통할 거 같아요. 말 나온 김에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다니실 때 유명한 학교 밴드인 ‘킨젝스’에 몸담기도 하셨다고요.

저희 때는 통기타가 유행했잖아요. 웬만한 중고등학생은 기타를 쳐보려고 했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대학에 들어가서 밴드 오디션을 본 거예요. 제가 킨젝스 7기인데, 5기가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유명했죠.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들어갔어요.

상당히 주체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고, 생계도 직접 해결하셨다고요.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그러다 무용엔 어떻게 빠져들게 된 건가요.

잃을 게 없으니까요. 먹기만 하면 사니까 이것저것 다 해온 거죠. 사진도 해 봤고, 해양생물학도 해 봤고요. 영화과에 있었으니까 어느 날 애니메이션 속 움직임을 보고 ‘저건 내가 잘할 수 있는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무용과 인연을 맺게 된 시작점이죠.

그 애니메이션이 1983년 제5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탱고Tango>(감독 즈비그니에프 립친스키Zbigniew Rybczyn′ski)인 거죠? 작품에서 받은 인상은 무엇이었습니까?

방에 등장인물이 하나씩 들어와요. 나중에 방이 사람들로 꽉 차게 되는데, 또 하나씩 빠져나가죠. 그러니까 편집의 기술인 거예요. ‘편집으로 저렇게 재밌게 만들 수 있다니, 나도 무용을 저렇게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도 그런 마음가짐만으로 줄리아드 학교에 무용 전공으로 입학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도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데, 운이겠죠. 줄리아드에서 20년을 가르친 선생님이 예술대학을 만드셨는데, 제가 1기로 들어가서 장학금을 받았어요. 그 선생님이 줄리아드 오디션에 도전해보라고 제안해주셨고, 통과해서 입학하게 됐죠. 저는 일단 좋은 학생이긴 했어요. 열심히 하라는 거 열심히 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했거든요. 하하.

그렇게 3년 만에 줄리아드를 조기 졸업하셨습니다. 겉보기엔 차분하고 신사적인데 그런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사람마다 특별한 점이 하나씩 있잖아요.
저는 무용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보니 열심히 했죠. 전 무용 외에 하는 일이 없어요. 친구도 없고,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일, 집, 일, 집 그것뿐이죠. 그것이 저를 더 단순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그런 미니멀함이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거네요. 또 줄리아드 재학 당시에 개인 무용단인 안성수픽업그룹도 만드셨습니다.

안성수픽업그룹엔 무용수가 별로 없어요. 왜냐면 저랑 맞는 무용수들만 만나서 작업하기 때문이에요. 제 방법을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고, 서로에 대한 정보를 교류해야 하니까 오랫동안 알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하는 거죠. 저기서 (연습실 한편을 가리키며) 연습 중인 이은경 씨도 저랑 함께한 지 20년이 넘었고, 이주희 씨도 거의 30년 가까이 됐죠. 서로 상대의 예술에 대한 존중이 있어요.

한참 후배나 제자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제전악-장미의 잔상>을 비롯해 자주 협업한 라예송 작곡가와의 관계도 그렇죠. 다른 예술가의 세계를 진심으로 진중하게 대하는 게 항상 느껴집니다.

라 선생님에겐 배울 게 많아요. 한예종 예술전문사 과정(대학원)에 선생님과 함께 진행하는 공동 클래스가 있어요. 라 선생님과 제가 창작하는 방법이 거의 비슷하거든요. 고전에 대한 답습을 토대로 새로운 걸 만드는 부분이요. 라 선생님은 한국 전통악기만 가지고 만들고, 저는 제가 배운 클래식 발레로 작품을 만들죠. 미니멀한 점도 저와 상당히 잘 맞기 때문에 학생들을 같이 가르쳐보자고 얘기가 됐고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도 유명하죠. 라벨 ‘볼레로’를 풀어낸 <쓰리 볼레로>,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안무로 재해석한 <쓰리 스트라빈스키> 같은 ‘쓰리’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안성수의 안무에는 “음이 보인다”며 공감각적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이번 서울시발레단 창단 사전 공연도 마찬가지지만, 제가 들려주고 싶은 부분을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거죠.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2019 연출도 맡으셨습니다. 정말 모던한 작품이었어요.

바일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제가 한다고 그랬지, 그렇지 않았으면 연출을 안 맡았을 거예요. 제가 스웨덴에서 무용수들과 한 달간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바일(의 음악)을 매일 들었어요.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은 스토리가 익숙하니, 시대를 다르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임했죠.

이렇게 다양한 음악과 내적으로 친밀한 안무가는 못 봤습니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음악 장르가 있습니까? K-팝도 들으시나요?

요즘에는 MTV가 생기던 시절에 나온 음악들을 다시 찾아 듣고 있어요. 그런 음악이 <스윙어게인>에 많이 들어갔죠. K-팝은 (여자)아이들을 좋아해요. 하하.

역시 빤하지 않은, 개성 강한 팀을 좋아하시네요. MTV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모든 문화가 예전 것에 존중을 표하며 그것을 다시 돌아보는 흐름이 생긴 거 같아요.

지금 대중음악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고전에서 만들어진 리듬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아까 연습실에 들어오는데 몸을 풀고 있는 모습과 동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전히 본인의 ‘몸의 감각’을 계속 느끼시는 게 중요한 거죠?

안무를 만드는 건 저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실행해주는 건 이주희 씨예요. 하지만 제 몸이 항상 준비돼 있지 않으면 동작을 만들다 다치더라고요. 여전히 유연한 게 중요하죠. 요새는 많이 걷는 편이에요.

일터와 집만 오간다고 하셨지만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저는 사실 요리할 때가 즐거워요. 파스타를 제일 자주 해 먹어요. 하하. 맛있는 거 만들어서 함께 나눠 먹는 게 재밌어요.

‘안성수’ 역시 현대무용계에 믿음 가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더 생겼을 거 같아요.

재주 많은 학생들을 위해서, 또 관객들을 위해서 체계적이면서 변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무엇’을 만들고 싶어요. 일단 극장에 가면 즐겁다는 생각이 들게끔요. 그렇게 되면 힘든 세상에서 예술가나 관객 모두에게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재훈 뉴시스 기자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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