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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미디어아티스트 양아치 발견하는 사람, 발견하는 예술
양아치는 대중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예술가이자 대중에게 깊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가다.
개인전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가 열리고 있는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그를 만난 후엔 추가로 ‘발견하는 자’라 부르고 싶어졌다. 그는 발견하기 위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움직인다. 그의 예술은 사고의 영역에 멈추지 않고 물성을 갖고 세상에 발붙이고 있다.

현재를 꿰뚫어 미래를 보는 눈

양아치 작가의 작업은 2000년대 초에 시작됐다. 양아치란 이름은 그가 ‘PC통신’ 때부터 쓰던 많은 아이디 중 하나였을 뿐이다. 다양한 정체성으로 다채로운 작업을 해오던 그는 점점 미디어아트 작가 양아치로서의 활동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양아치라는 이름의 예술가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웹 기반으로 작업했기에 웹 아티스트로 불린 적도 있다. 당시는 ‘웹’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그가 웹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술가 양아치는 늘 현재의 첨단을 본다. 또 그를 통해 미래를 예상한다. 시인 이원은, “예술가는 예언의 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양아치 작가 또한 그 말에 부합하는 점이 많다.
인터뷰의 첫 화두는 자연스럽게 팬데믹에 관한 것들이었다. ‘언택트 시대’라 일컬어지는 현재, 우리가 관계 맺는 방법은 아직 단순한 것 같다는 질문에 양아치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앞으로의 관계 맺기는 아예 달라질 겁니다. 지금은 디지털 기술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앞으론 디지털 기술보다, 이 시기에 생각이 자리 잡혀가는 아이들이 관계 맺기를 주도할 거예요.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죠.”
그는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에게서 관계 맺기의 단초를 찾았다. 우리가 비대면이라고 말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지금 아이들에겐 일상일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관이 어른·기성세대에게 배움을 주는 시기가 오리라는 것이 양아치 작가가 팬데믹 시기를 바라보며 갖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양아치 작가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팬데믹이 주는 불편한 사항은 많지만 대신 성찰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생활인이 됐든 창작인이 됐든, 나의 해석과 번역이 과연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바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이야기입니다. 알파고가 해석과 번역을 일종의 데이터로 받아들이고 최고의 수를 뽑아낼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우리 같은 창작하는 사람들의 해석과 번역이 어떤 위치에 가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 본연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가 그것과 멀어졌다면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는가. 그가 작업하면서, 또 생활하면서 항상 고민하는 주제다. 그는 알파고와 팬데믹이 주는 신호가 우리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사회체계에서 살았는지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그동안 인간은 기계를 대신해서 노동가치로, 교환가치로서 이 사회에 참여해 왔지만, 다음 사회를 일구는 데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가 재미있었던 점은, 바로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터뷰 종종 질문을 던졌는데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그는 “손을 주로 일할 때만 쓰지 않나요?”라고 질문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손은 끊임없이 일에 복무하고 있다.
“각자가 지나온 여러 시간이 손에 담겨 있어요. 그런데 기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적어요. 원래 인류는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 데 썼어요. 기도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팬데믹 이후의 우리가 생각해 볼 일일 것 같습니다. 그곳이 인간이 원래 있던 자리 아닐까요.”

양아치 작가와 그의 작품 <사물 자체의 풍요로운/기분 나쁜 포텐셜>

근원과 새로움을 생각하는 작업, <갤럭시 익스프레스>
양아치 작가는 사람의 손이 가장 근사해지는 시간이 바로 기도하는 순간이라 말했다. 그 이미지는 그의 전시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2020년 10월 15일부터 12월 13일까지 개최되는 양아치 작가의 개인전에는 불상의 손 형상을 딴 <10개의 수인, 연결된, 사물>(2020)이란 작품이 전시돼 있다. <파티마 성모 마리아, 1,000개의 눈, 사물>(2020)과 <은혜 성모 마리아, 1,000개의 눈, 사물>(2020) 등의 작품에선 성모상에 여러 차원을 볼 수 있는 가상의 눈을 상징하는 광물을 부착했다. 새로운 시대의 사물로서 제작된 이 작품들에는 사람을 위로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상의 눈, 혹은 새로운 눈이라는 건 기도하는 손과 더불어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관통하는 중요한 이미지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당신의 새로운 눈이>란 제목의 크리스털 작품이 우리를 기다린다. 마치 요술봉 처럼 생긴 도구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장면을 바라본다. 양아치 작가는 체험 이상의 것이 없다고 말한다. 사물을 보는 방법은 천 개도, 만 개도 될 수 있다. 관객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방식을 직접 체험한다. 서구에서 온 근대의 시각 체계, 즉 3차원, 원근법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눈을 갖길 원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에서 또 하나 눈에 띈 점은 자연에서 온 오브제가 많다는 점이다. 진주, 버섯, 뿔, 광물 등이 그러하다.
양아치 작가가 초반 10년 정도 해오던 미디어 작업은 그 바탕이 전자와 전기, 즉 로직(logic)에 있었다. 로직의 세계엔 실패가 없고 실수가 없다. 그러나 예술이란 것은 해방돼야 한다는 점에서 그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는 ‘전자와 전기를 배제한 미디어아트’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자, 전기를 배제해도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아주 오래전 인류가 돌을 깎고 흙을 빚어 커뮤니케이션을 해온 것처럼 우리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터넷 케이블도 잘라보면 황동 등의 물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사실 우리는 지구에서 나오는 것들을 이용해 연결돼 있다. 양아치 작가가 광물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그것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에는 황동 등의 광물 재료가 많이 활용됐다.
이전 작업에서 양아치 작가는 전기·전자를 배제하기 위해 최면이나 빙의 등의 방식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에게 접속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될 거라고 양아치 작가는 기대한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에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은혜 성모 마리아, 1,000개의 눈, 사물>(2020)

발견의 순간, 예술
예술가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양아치 작가의 생활이 궁금했다. 거침없는 작업을 해온 양아치 작가에게도 피하고 싶고 불편해하는 것이 있을까. 그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바로 ‘후진 것’이라고.
“예술이 기술과 다른 점이 이런 것 아닐까요. 예술가들의 역할은 후진 것을 어떻게든 박살 내는 것이에요.”
예술가의 역할이 그러하다면, 그는 관객이 예술을 어떻게 대했으면 좋겠다 생각할까?
“인간이 동경하고 위로를 얻는 대상이 예술일 겁니다. 과잉인 노동 시간이 줄어서 모두 예술, 그리고 미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에게 예술은 고리타분함을 박살 내는 것이자, 위로를 주는 것이다. 또 멀지 않은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평소 인왕산에 오르는 걸 좋아한다는 그에겐 등산도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인왕산에 기도터가 많아서 그걸 찾아다닙니다. 기도터를 보며 해석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거죠.”
기도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발견’의 순간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준비하며, 그는 단순한 발상이나 영감을 뛰어넘은, ‘체화된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 본연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걸맞은 이미지를 찾기 위해 직접 몸을 쓰며 그는 자신의 예술에 구체성을 부여했다. 그를 위해 막연하게 산을 헤매며 기도터를 찾기도 했던 것이다.
양아치 작가와의 인터뷰 또한 새로운 화두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어떤 대화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건네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감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일이다. 일상에 대해 묻고 답하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요새 몰두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기초적인 커뮤니케이션이며 접속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양아치 작가는 다음 작업을 절, 성당, 교회 어디든 상관없이 종교시설에서 전시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특별한 전시장에서, 까치발을 들고 조심조심, 그가 전하는 말을 열심히 읽어내는 관객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주 근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꿈꾸며.
글 권민경_시인,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저자
사진 공간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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