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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소설가 조선희 세 여성 혁명가와 공명하다
조선희 작가가 1920년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여성 트로이카를 조명한 <세 여자>(1·2권, 한겨레출판)를 출간했다. <열정과 불안>(2002) 이후 1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이자, 단편집 <햇빛 찬란한 나날>(2006)을 더하면 세 번째 소설책이다. “방대한 지식과 높은 통찰력,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기 어렵다”는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말마따나 세 여성의 굴곡진 삶과 한국 역사가 함께 펼쳐지는 <세 여자>는 방대하고 치밀하며 눈물겹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세 여자는 훗날 북한 최고위직에 오르는 허정숙(1902~1991), 먼 이국땅으로 유형을 떠나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주세죽(1901~1953), 친일 전향과 운동가로의 전향을 반복하며 사그라든 고명자(1904~?)이다. 소설은 1920년대 경성의 봄날 시절, 공산주의 여성운동가로 같이 출발했지만 도착한 곳은 너무나 달랐던 세 여자의 삶을 따라가면서도 이들과 함께 역사 속에 뛰어든 주세죽의 첫 남편 박헌영(1900~1955), 고명자·주세죽과 차례로 결혼한 김단야(1900~1938),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1900~1963), 최창익(1896~1957)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공산운동가들의 삶을 담아낸다. 특히 실패한 공산주의 운동가이자 최고의 이론가였던 박헌영은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만큼 단단하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세 여자의 모습. (출처_ 역사비평사)

역사를 배반하지 않는 소설

기자 출신인 조선희 작가는 씨네21 창간 편집장(1995~2000)으로 5년간 일했고, 그 뒤 한국영상자료원장(2006~2009), 서울문화재단 대표(2012~2016)를 차례로 역임했다. 작가에게 글쓰기 이외의 이력, 그것도 공직 이력이라면 독자들로부터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의심받기 받기 쉬운데 이런 선입견은 <세 여자>의 도입부 몇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깨지게 된다.
소설은 방대하고, 치밀하며, 눈물겹다. 식민지, 해방 정국, 한국전쟁과 그 후로 이어지고 남·북한, 상해, 연안,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와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뻗어나가며 풀어내는 역사적 지식과 사실들은 방대하기만 하다. 이 팩트들은 그저 사건과 사실로 나열되지 않고 주인공의 삶과 서로서로 스며들며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치밀하게 전개된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당대 풍경과 풍속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다.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여러 번 울었다고 했다. 허정숙에 울고, 주세죽에 울고, 고명자에 공명해 울었단다. 독자들도 이상을 좇았지만 남편 잃고, 자식 잃고, 이상마저 희미해져 자신이 누운 방이 관이었으면 좋겠다고 읊조리는 주인공의 독백 같은 대목에 이르면 울컥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상한 지 12년 만에 <세 여자>를 완성한 조선희 작가를 지난 7월 5일 서울 동작구 ‘갤러리 카페 오누이’에서 만났다. 소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부터 물었다.

<세 여자>는 어떻게 시작됐나.
“냉전이 끝난 뒤 1990년대와 2000년대 역사 연구나 여성 인물 연구에서 새로운 자료들이 굉장히 많이 쏟아졌다. 가려졌던 반쪽의 역사인 사회주의 계열의 역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허정숙을 알게 됐다. 우리 세대에게 신여성이라고 하면 나혜석뿐이었는데 허정숙이라는 이름을 처음 봤다. 결혼을 5번 했다거나 성이 다른 아이 넷을 낳았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중국에 항일 무장 투쟁을 하러 갔고, 나중에 평양에 가서 오래 살며 고위직도 했다는 인물 자체가 신기해 관련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주변에 두 여자(주세죽, 고명자)가 나오고, 남자들이 나오고. 흥미로운 인물이 너무 많았다.”
그러던 즈음 작가는 소설 표지에 나오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게 됐다. 1920년대 어느 날, 단발머리인 세 여자가 개울에 발을 담그고 노닥거리는 사진이었다. 시대의 암울함과는 다르게 예쁘고 구김살 없는 분위기가 신선해 잊히지 않던 중에 사진의 주인공들이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세 여자를 소설의 프레임으로 결정했다. 사진은 주세죽이 박헌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비비안나 박이 1991년 한국을 방문할 때 들고 온 어머니의 유품 중 하나였다.

작가의 말에 역사 기록에 반하는 상상력은 자제했고,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했다. 역사와 픽션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소설의 주인공은 세 여자이지만 역사 그 자체가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존 인물 셋을 가지고 재미있는 픽션 하나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전혀 아니었다. 세 사람을 주제로, 세 여성을 매개로 한국 현대사의 한 시기를 복원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묻혀 있고, 잊힌 부분을 복원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었기에 역사 기록 자체가 중요했다.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 몇 년 몇 월 몇 일로 나오는 일들은 100% 기록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소설에 이름 석 자로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모두 실존인물이다. 판사 댁 고명딸 고명자의 몸종으로, 이후에 고명자가 잠깐 도움을 받는 삼월이가 유일한 예외 인물이라고 했다.
그렇다 해도 역사책이 아니고 소설인 만큼 작가는 기록된 팩트 사이사이에 자리한 빈칸을 소설적 상상력, 역사적 상상력으로 메워가야 했다. 세 인물만 두고 보자면 허정숙은 자료가 많았고, 주세죽은 약간 있었고, 고명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자료의 빈자리만큼 고명자 이야기는 소설적으로 많이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나중에 써놓고 보니 고명자 부분을 볼 때 가장 재미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밝힌 이유는 “‘구라’ 푼 것이니까,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하고 추리하는 것, 그것이 소설의 역할이고 재미”였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2 허정숙.
3 고명자.
4 주세죽의 가족사진.

세 여자와 함께한 12년의 시간

자료 작업이 엄청났을 것 같다. 어떤 작업을, 어떻게 했나.
“우리 세대가 기본적으로 역사 공부를 한 세대이고 운동권 주변에서 식민시대 공부를 했다. 그 시대를 소설로 쓰고 싶었다. 아마 낯설었으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자료는 2004~2005년부터 보기 시작했다. 책, 논문, 단행본들을 봤다. 그런데 막 집필에 들어가려던 2006년, 공직(한국영상자료원장)을 맡게 됐다. 자료를 라면 박스 2개에 넣고 봉했다. 3년 뒤 박스를 열어보니 3년 전 읽었던 20~30권쯤 되는 책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인터넷 검색 기능이 놀랄 만큼 진화해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책들을 샀지만 인터넷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는 큰 도움이 됐다. 그전에는 신문기사들을 보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 국회도서관에서 복사를 해야 했는데 뉴스 라이브러리 서비스로 집에 앉아서 찾을 수 있게 됐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다.”

초고를 썼지만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가면서 다시 4년 반이 미뤄졌다. 완성까지 12년이 걸렸는데 그 12년은 어땠나.
“영상자료원, 문화재단 일 때문에 집필 작업이 한없이 늘어졌지만 결과적으로 행운의 시간이었다. 기록을 보고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서 시대와 사람이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간 없이 쓰고 발표했다면 역사 기록만 빽빽했을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데 문화재단에 있는 동안 머릿속에 항상 세 사람이 있었다. 재단 일을 하면서 책을 읽고, 거리 퍼포먼스도 보고, 연극도 많이 봤다. 그럴 때마다 세 여자를 다시 생각했다. 앙상한 기록에 호흡을 불어넣었다.”
그는 이 시간에 대해 “세 여자의 인생이 내 머리와 가슴에 사과처럼 익어갔다”고 표현했다. 4년 반 동안 이렇게 머리와 가슴에 품었으니, 재단 일을 마치고 초고를 꺼내 읽었을 때 그전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했던 소설이 엉성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초고는 사실들의 짜깁기에서 많이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다”는 그는 결국 그 뒤 6개월 동안 소설을 다시 다듬어야 했다. 원주 토지문화관에 2달 간 머물기도 했다. 인물들은 생생해졌다. 그는 “40대에서 50대가 되었고 세 여자의 말년을 다룰 때 예전에 비해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고도 했다.
작가는 퇴고 작업을 하면서 초고의 딱 10% 분량을 쳐냈다고 한다. 글쓰기에 관한한 작가가 최고의 책으로 꼽는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이 “무조건 10%를 자르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너무 쳐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덜어냈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빈틈없는 문장은 퇴고 작업의 강도를 말해주는 듯하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세 여자의 운명을 넘어 시대의 비극으로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중에서 누구에게 가장 많이 감정 이입이 됐나.
“허정숙은 대체로 주체적으로 구김살 없이 자기 인생을 잘 개척한 인물이다. 당시 사회 환경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자기 주관적으로 살았다. 주세죽은 남자 때문에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살게 되고 남편 때문에 카자흐스탄에 혈혈단신으로 유형을 갔다. 굉장히 비극적이다. 고명자도 결국 남자에 대한 그리움의 그늘에서 일생을 외롭게 살다갔다. 허정숙과 주세죽, 고명자의 차이라면 간택한 사람과 간택당한 사람의 차이랄까, 주체적으로 산 여자와 가부장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자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더 애정이 많이 가느냐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나는 허정숙 때문에 울었고, 주세죽 때문에 울었고, 고명자 때문에 울었다. 세 사람에게 깊이 공명했다고 할 수 있다. 세 사람 모두에게 빙의해서 소설을 썼다.”
하지만 작가는 해방을 기점으로 세 여성의 출렁이는 운명을 넘어, 분단이라는 민족 비극의 씨앗이 된 역사와 시대에 정면 승부를 건다.

소설에서 “분할점령이 영구 분단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분단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들이 주어졌지만 불발의 역사에 그치고 만 것은 남북을 통틀어 그것을 현실화시킬 능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반도가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됐다는 것은 피해자 코스프레라고도 했는데.
“역사의 아이러니들, 무수한 거짓말들, 우리가 잘못 배웠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스크바 3상 회의와 반탁 이슈만 해도 우리가 잘못 배웠다. 미국과 소련이 38선 임시 분할을 끝내는 방안도 내놓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한국의 정치가였다. 분단을 완성한 것은 정치인들의 어리석음, 아집과 독선이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이 시기의 연장선상에 있고 한국사회의 갈등, 이념적인 문제들, 분단의 문제는 모두 이 시대에 시작됐다.”
이런 시선으로 작가는 인물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시도한다. “김구, 이승만, 여운형에 대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선입관들을 갖고 있지만 실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김구라는 인물만 봐도 독립운동에서 자기희생을 치르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해방공간에서 한국역사에 끼친 공과를 따진다면 아집, 잘못된 판단 때문에 그 업적을 까먹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김구는 “오른손으로 정치를 하고, 왼손으로 테러를 했고 그것으로 항일 투쟁의 별이 되었지만 해방 후에도 동족, 자신의 정적을 상대로 두 손을 동시에 썼다”고 평가된다. 반면, 분단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여운형을 꼽고, 미군정이 여운형을 파트너로 삼기로 결정할 즈음 테러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아쉬워했다. 작가는 여운형과 함께 박헌영, 김일성도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했다.

어떤 점에서 흥미롭나.
“우리가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은 보통 한 줄의 역사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관계는 어떠했는지 인간으로서 이해하거나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 하지만 소설은 역사적 인물들을 인간적으로 접근하기에 다르다.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자료를 살피다 보면 인물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내용도 많다.”
소설에서 스스로 현실주의자가 돼가는 허정숙은 박헌영과 김일성을 이렇게 비교한다. “스탈린이 시골 청년 하나를 발탁해 국가 권력을 안겨놓았더니 이 젊은이가 기고만장한 나머지 전쟁을 벌여 파국을 자초했다. 수상이 마흔만 넘었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헌영이 예민한 지식인 혁명가의 전형이라면 무관 특유의 무데뽀 스타일에다 허풍기도 있고 실없는 소리도 하면서 사람을 어르고 뺨치는 김일성은 타고난 정치인이다.”

결과적으로 소설 작업은 즐거운가.
“소설 쓰기는 재미있다. 여러 종류의 글이 있지만 기사 쓰는 것보다 소설이 더 재미있다. 자기 멋대로 쓰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글이 너무 ‘징’하다. 앞으로 역사 자료를 읽고 기록을 읽는 작업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작가는 당분간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까 싶지만 프란츠 베르펠의 <옅푸른색 잉크로 쓴 여자 글씨>같이 똑 떨어지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도 말했다. 여기에 더해 고양이 세 마리와 살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고양이를 주제로 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글 최현미_ 문화일보 기자
사진 서울문화재단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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