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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조영남 작품 대작(代作) 논란 화투 그림이 개념미술이라고요?
지난 5월 불거진 ‘조영남 대작 논란’은 미술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대작을 일반적인 관행으로 보는 입장과 그의 작품이 개념미술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고 비판하는 입장이 맞섰고, 이는 현대미술을 둘러싸고 미세하게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존재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작가 조영남으로서 그가 간과한 것은 무엇이며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현대미술에 대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조영남 씨 대작(代作) 논쟁은 애초에 길을 크게 잘못 들어섰다. ‘콘셉트를 제공했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사달의 시초였다. 조 씨의 작업이 개념미술의 범주에 속한다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개념이 미술품의 핵심인 것이 곧 개념미술이기 때문이다. 개념미술이나 개념주의 미술에선 창작 노동, 개념의 물리적 구현, 기법의 완성으로서 스타일, 질료의 이해 등은 거의 또는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그런데 조 씨의 화투 그림류를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나? 만일 화투가 개념이라면, 송기창 씨처럼 통상의 수준을 능가하는 재능과 연륜을 지닌 대작화가가 동원될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택시기사보다 많은 인건비까지 지불하면서 말이다.
조 씨의 화투 그림은 조금도 개념적이지 않다. 화투를 ‘소재’라면 모를까, ‘개념’이라 할 수야 없다. 화투 그림 자체가 이미 구체적인 회화적 실현 과정의 산물이다. 조 씨거나 조 씨 아닌 누군가의 손과 노동과 감각이 개입한 흔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이 세계는 붓 터치 하나를 인식과 근육의 변증적 삼투, 질료와 사유의 상호 침투로 읽는 세계다. 색의 내밀하거나 거친 농담은 예술적 쟁점이 되고도 남는다. 터치는 가볍고 경쾌한가? 거칠거나 불규칙한가? 톤은 차분한가 아니면 긴장되어 있나…. 결코 타자에게 위임되어선 안 될 주체가, 의식의 섬세한 변주가 이 세계에선 그렇게 궐기한다. 자명하게도 조 씨의 화투 그림류는 이 같은 비옥한 참조들을 불러들일 만한 수준과는 한참 격세지감이다. 다만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 조금 더 논해보자. 작가의 수공성이 결여된 회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슈&토픽 화제 관련 이미지1 화투를 모티브로 한 조영남의 작품 <극동에서 온 꽃>.

작가의 수공성이 결여된 회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는 이 회화적 실현 과정을 ‘지속적 역동성’이라 했다. 마그리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마음은 자주 바뀌고 나는 그 변화를 좋아합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는 그 부단한 역동성의 추적이 더는 견디기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지난함을, 이 피할 수 없음을 어떻게 타인에게 위임하는가? 게다가 문자메시지 전송 시스템을 통해, 디지털 신호에 실어서 말이다. 대경실색할 노릇이다. 사진을 찍어 보냈으니 문제 될 게 없다는 것도 해명으로선 무지하기가 이를 데 없다. 중요한 건 회화를 사진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진을 회화화하는 과정이다. 전자는 기록에 근사한 반면, 후자는 예민한 해석적 과정, 곧 주체적, 거의 전적인 소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전례 없이 경박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고는 하나, 고작 앤디 워홀의 팩토리나 데미언 허스트의 허접한 상업주의 미학에 분별력을 남김없이 저당잡히는 비극만큼은 피해보도록 애쓰자!
조 씨의 화투 그림을 변호하느라 몇몇 식자(識者)는 참 멀리까지 나아가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그렇더라도 마르셀 뒤샹까지여야 했을지는 의문이다. 이들의 주장은 개략 이러한 듯하다. 어차피 마술 부리듯 명칭만 부여하면 ‘변기’도 예술인 판에, 굳이 ‘그리기’를 기준으로 삼는 시대착오에 기댈 일은 아니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뒤샹을 이런 식으로 인용하는 것은 무엇보다 뒤샹에 대한 모독일 개연성이 크다. 알다시피 뒤샹의 <레디 메이드(ready-made)>는 2000년 서구 패러다임, 이데아와 형상의 이분법이라는 플라톤의 망령과 맞서 싸운 보상이었다. 기성품 미학이야말로 ‘그리기’에 대해 서구가 일관해온 케케묵은 편견과 버거운 사투를 벌인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그것을 그리기에 대한 플라톤적 폄하를 변호하는 데 다시 끌어다 쓰다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플라톤주의의 현대적 현현을 옹호하기 위해 반 평생을 플라톤의 악몽에 시달렸던 사내를 불러들인 셈이다.
아마도 신사실주의 비평가인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까지만 나갔더라도 우정을 확인하는 데는 충분했으리라. 레스타니는 미술의 미래가 ‘오만한 수공적 경향’을 버리고, 상대적 객관성을 향해 나아갈 거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견이 전적으로 틀리지는 않아, 오늘날 창작 노동의 비중이 현저하게 삭감되긴 했다. 하지만 수공적 방식을 등지는 조 씨의 방식은 재고의 여지없이 협잡(挾雜)하기만 하다. 조 씨의 화투 그림은 뒤샹이 내동댕이쳤던 것을 오히려 집착적으로 꿍치고, 레스타니가 예견한 ‘수공성으로부터의 후퇴’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이슈&토픽 화제 관련 이미지2 프랑스의 다니엘 뷔랑은 미술의 상업화에 반기를 들었던 작가로, 공간의 특질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방식의 작업을 선보였다.
3 2012년 그랑 팔레에서 열린 다니엘 뷔랑의 전시 <모뉴멘타>.

미술의 상업성을 배격한 개념미술가들

개념미술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짚도록 하자. 1970년대 개념미술은 대전 이후 속수무책으로 자본화, 상업화되어가던 미술계에 대한 반대의 높은 기치로서 역사에 등장했다. 개념주의자들에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서구적 물신(物神)의 앙상한 선동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왜 미술관인가?’ ‘왜 미술품은 인생보다 더 밝은 조명 아래서 더 오래 보존되어야 하는가?’… 해서 개념미술가들은 재산목록화가 어려운 미술, 유가증권화가 불가능한 것, 매매나 소유의 원천적 불가능성으로서의 개념에 다가섰다. 프랑스의 다니엘 뷔랑(Daniel Buren)은 자신의 이미지가 거래 품목으로 정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들을 파리 시내로 흐트러뜨리곤 했다. 회화가 특권을 누려야 할 어떤 이유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은, 뉴욕 브롱스 출신의 개념미술가 로렌스 와이너(Lawrens Weiner)도 같은 이유에서 어떤 ‘타블로(tableau)’도 그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지금 조 씨의 화투 그림은 대작된 신체에 운신을 의탁하고 있다. 신체치고도 참으로 구차한 신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안에서 자본의 세례와 상업주의가 내린 영성체의 흔적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문화+서울

글 심상용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회화와 서양화를 전공했다.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으로 석사와 D.E.A.를,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학으로 박사학위(1994)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예술, 상처를 말하다>(시공사, 2011), <시장미술의 탄생>(아트북스, 2010), <속도의 예술>(한길사, 2008), <천재는 죽었다>(아트북스, 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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