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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재래시장에서 만나는 <시장에 간 서커스> 삶의 온도에 섭씨 1도를 더하다
‘시장에 가면 배추도 있고~ 시장에 가면 가자미도 있고~ 시장에 가면 호떡도 있고~’로 이어지는 노래를 기억하는가. 좋아하는 먹거리 이름을 멋대로 갖다 붙이면 그만인 이 노래는 소풍 가는 버스에서 꼭 등장하는 단골 게임 테마송이었다. 소풍가기 좋은 5·6월, 서울 아이들에겐 이 노래에 덧붙일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그건 바로 서커스! 어라, 그런데 요즘 아이들 시장을 마트로 바꿔 부르는 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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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한 소쿠리에 0원입니다

재래시장을 찾은 이들의 손에는 철제 쇼핑 카트 대신 인정 넘치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바코드 대신 구수한 말 한마디에 가격이 내리고 콩나물 한 움큼이 더해졌다. 그 기억이 무색하게도, 시장은 어느새 쉽고 편한 대형 마트에 밀려 골방 늙은이 신세로 잊혀가는 듯하다. 이제 주말 오후의 재래시장에는 파리 쫓는 회전 총채만이 바삐 돌아간다.
지난 5월 14일(토) 늦은 오후, 강북수유재래시장의 작은 공터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커스가 열린다는 소문이 시장 가득 퍼진 모양이다. 공연 시작 10분 전, 핫도그와 어묵꼬치를 손에 든 꼬마 남매가 가운데 앞자리를 선점했다. 공연 준비를 하던 마린보이는 가방에서 신문지 한 장을 꺼내 남매에게 깔아준다.
공연이 시작되자 이 상냥한 마린보이가 초등학생이 겨우 들어갈 만한 빨간 자동차에 올라탄다. 그렇게 공터를 한 바퀴 돌고는 차 문을 열고 레드카펫을 펼친다. 지난해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마린보이의 ‘나홀로 서커스’(사진1)다. 공연이 무르익자 더 많은 이들이 공터로 모여든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신명 나는 음악 소리가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모양이다. 시종일관 무뚝뚝한 표정이던 채소 가게 주인도 어느새 가판대 너머로 고개를 쭈욱 빼고 서커스 구경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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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뜻밖의 행복을 일구다

긴장과 재미를 오가던 마린보이의 순서가 끝나자 팀 퍼니스트의 ‘퍼니스트 코메디 서커스 쇼’(사진3)가 이어진다. 서커스 예술가들이 항상 완벽하고 기묘한 곡예를 펼치는 건 아니다. 일부러 실수하고 넘어지고 공을 놓치며 관객들의 열띤 호응과 참여를 유도한다. 그들이 놓친 공은 고사리손을 가진 아이들이 주워주고, 열띤 공연에 흘러내린 구슬땀은 아이보다 즐거워하는 아빠가 닦아준다.
현란한 솜씨로 저글링을 선보이는 팀 퍼니스트의 공연에 백발이 하얗게 센 할머니는 “멋져~ 멋져부러~”라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마임 단막극을 볼 때는 “아이고~ 허무해부렀어!” “지금 비가 와서 옷 말리는 모양이여~”라며 할아버지들의 구수한 해설이 고명을 얹는다. 이렇듯 보통은 관람 예절을 어겼다고 비난받을 행동이 시장에서는 넉넉히 용인된다. 아니 오히려 공연에 감칠맛을 더한다. 바삭한 통닭 한 마리에 6000원, 푸짐한 손칼국수 한 그릇이 3000원인 시장 인심을 똑 닮았다. 팀 퍼니스트의 공연은 이튿날 은평대림시장에서도 이어졌다. 장소와 관객이 바뀌자 어제와 꼭 같은 공연인데도 또 다른 웃음이 피어났다. 그렇게 예술가와 구경꾼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서커스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서커스를 진행한 공터 옆에서 멸치 장사를 하는 채수원 씨는 “좁은 공터에서 공연을 진행하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즐거움이 더 크다. 공연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로 모이니까 홍보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전통시장에서 이렇게 다 같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다.”라며 이번 행사의 취지에 동감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2 지난 5월 15일 은평대림시장 <시장에 간 서커스> 에서는 일본 아티스트 다이스케의 ‘스트리트 서커스’가 진행돼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온도

다행히 대형 마트가 시장에 배어든 삶의 향기마저 대체하진 못한 모양이다. 오랜만에 발걸음한 시장에는 대낮부터 깍두기 안주에 막걸리 잔을 부딪치는 아저씨들의 불그스레한 얼굴이, 떡볶이 매대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들의 군침 넘기는 소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홀로 서커스’로 배꼽 잡는 웃음을 선물한 마린보이의 이성형 씨는 “이렇게 일상에서 갑작스레 만난 공연이 ‘시장에 가니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더라!’ 하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시장에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보니 배우의 세세한 표정과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어느 순간 내가 객석을 침범하기도 하고 관객이 무대로 들어오기도 하는 즉흥성이 시장 공연의 매력이다.”라고 말하며, ‘문화가 있는 시장’ ‘예술이 있는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시장에 간 서커스>는 6월 5일까지 매주 주말에 열린다. 5팀의 서커스 예술가가 은평대림시장, 금천시흥현대시장, 중곡제일시장, 강북수유재래시장에서 총 32회의 공연을 펼칠 예정이니, 부대끼는 삶이 가물가물하다면 장 볼 거리가 많지 않더라도 시장으로 향해보자. 삶의 체취가 짙게 밴 서울의 재래시장, 그곳에는 가장 뜨거운 삶이 있다. 물론, 딱 1℃만큼 후끈한 열기를 더하는 서커스 공연은 시장 인심이다.문화+서울

글 방원경
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
사진 제공 방원경,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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