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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뮤지컬 <맘마미아!> 무대 위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여성 캐릭터의 힘
예스24가 2015년 1월부터 11월까지 티켓 구매 고객을 조사한 결과, 뮤지컬 관객의 81.9%, 연극 관객의 71.0%가 여성이었다. 나머지 남성 관객 중 여자친구나 아내 손에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공연장을 찾은 남성은 훨씬 적을 것이다. 공연 관람 계획을 주도적으로 세우는 사람들은 여성이라는 얘기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자기주도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공연 역시 부쩍 늘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2 2014년 초연 이후 매년 매진을 기록해 화제를 낳은 국립창극단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내는 우리 서방 찾아올라요”
<변강쇠 점 찍고 옹녀>, 5. 4~22,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의 여신이여’ 멜로디가 난데없이 가야금으로 연주되자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극장의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자기들이 잘 아는 음악이 색다른 음색으로 나와서 그랬을 것이다. 지난 4월 14일 국립창극단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고선웅 작·연출, 한승석 작창)의 프랑스 공연 첫날, 이 대목에서 여주인공 옹녀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내는 우리 서방 찾아올라요” “다 싸질러 불믄 무슨 수가 나겄제!”라며 일갈한다.
문제적 연출가 고선웅의 손에서 철저히 해체되고 재구성된이 창극은 2014년 국내 초연돼 창극 역사상 초유의 26일 장기공연을 이어가며 화제를 낳았던 작품이다. 1980년대 엄종선 감독의 영화 <변강쇠>와 고우영 만화 <가루지기>로 잘 알려졌으며 외설적인 내용으로 유명한 <변강쇠전>을 과연 어떻게 다시 무대에 올릴 것인가? 열쇠는 ‘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교체하기’에 있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데, 변강쇠는 이제 ‘점을 찍어 잊어버리고’ 옹녀가 새로운 주인공이 됐다는 뜻이다.
새로운 작품의 주인공이 된 옹녀는 단순히 음탕한 색녀(色女)가 아니라, 건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변신했다. 도입부에서부터 끝 모를 상부(喪夫)의 팔자에 좌절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냐 옹녀, 오냐 옹녀…. 내 기필코 인생 역전하여 보란 듯이 살리라!”고 울부짖더니 보따리 싸들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그것은 가혹한 환경을 딛고 가정을 이뤄 생명을 잉태하고자 하는 투지다. 성적(性的)인 요소조차 옹녀에게선 삶의 밑천으로 승화된 것이다.
후반부에서 장승들의 동티에 의해 남편 변강쇠가 횡사한 뒤로 그녀는 대단히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고선웅은 “이미 너무나 많은 사내의 초상을 치른 옹녀가 장승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는 것으로 그렸다”고 했다. 삶을 긍정하고 후손을 낳아 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다름 아닌 성(性)이라는 것을 말하는 이 작품에서, 뮤지컬과는 달리 한국어 가사가 잘 들리는 창(唱)은 대체 불가능한 요소가 된다. 공연을 본 프랑스 관객들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섹슈얼리티와 유머가 섞여 나오는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유머는 해학이고, 해학은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연결되는 셈이다.

“어려운 일 닥쳐와도 이겨낼 꿈이 있어”
<맘마미아!>, 2. 20~6. 4, 샤롯데씨어터

어쩌면 뮤지컬 <맘마미아!>는 아바의 명곡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에 대한 세 시간짜리 주석(註釋)일지도 모른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어려운 일 닥쳐와도 난 이겨낼 꿈이 있어/ 꼭 해야 할 일이 만약 있다면 실패한다 해도 해보는 거야”라고 노래 부르는 등장인물은 모녀 주인공 중 딸인 소피다. 그리스의 한 섬에 살고 있는 그녀는 엄마 도나의 일기장을 훔쳐본 뒤 자기가 태어났을 시기에 엄마가 사귀었던 남자 세 명을 찾아낸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으로 초청장을 써서 그들을 모두 자기 결혼식에 초대한다(세 사람의 주소를 과연 어떻게 찾아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극 전체가 이 ‘아빠 찾기’의 노력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다.
소피는 그 이유를 털어놓는다. “난 완벽한 결혼식을 바라지. 그리고 난 우리 아빠가 날 데리고 입장해주길 원해.” 극이 진행되면서 그것은 단지 예식 자체의 완결성을 위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풀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소피는 결혼식이 시작되려는 시점까지 빌, 샘, 해리 중 누가 자기 진짜 아빠인지 알 수 없다. 이 장면에서 소피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상관없어요. 전 제 자신에 대해서 뭔가를 알게 됐으니까요.” ‘아빠 찾기’가 ‘정체성 찾기’로 진화한 결과 지금 당장은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다. 소피는 신랑 스카이에게 말한다. “막 시작된 인생이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어. 우리 이 섬을 떠나서 더 큰 세상을 만나보자.”
소피와 스카이가 섬을 떠나면서 뮤지컬은 막을 내리는데, 이번 공연에서 소피 역을 맡은 소녀시대 멤버 서현은 필자와 인터뷰에서 “자유분방하고 고집이 세며 모험심이 강한 성격이라 저하고 꼭 맞는다”고 했다. 1970년대 노래(물론 이것은 세월이 흘러도 빛바랠 리 없는 고전이지만)를 부르면서도, 21세기 젊은 여성 대부분이 공감할 성격의 소유자가 <맘마미아!>의 소피인 것이다.
그렇다면 섬에 남아 졸지에 옛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엄마 도나는 수동적인 여성인가? 여자 혼자 애 낳고 20년 동안 기르면서, 게으른 그리스 남자들을 부려가며 호텔을 운영한다는데서 그녀의 진면목이 나온다. 모두가 도나처럼만 했더라면 그리스발(發) 경제 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문화+서울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3, 4 아바(ABBA)의 명곡이 귀를 즐겁게 하는 뮤지컬 <맘마미아!>. 주인공 소피와 엄마 도나는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다.

글 유석재
2003년부터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주로 학술과 출판을 담당했다. 2000년대 중반에 AV칼럼니스트로 암약했고, 1991년부터 초야의 공연 마니아로 있다가 2014년 1월부터 조선일보 공연 담당 기자로 활동 중이다.
사진 제공 국립극장, (주)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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