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사회대와 인문사범대 정원 감축을 추진한 성신여대에서는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학 구조조정의 부당함을 알렸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봄빛이 완연함을 느낀다. 3월 초 개강한 대학가에도 따스한 봄빛은 어김없이 찾아든다. 이런 봄빛 속에서도 대학 구성원인 학생과 대학 사이엔 찬바람이 쌩쌩 분다. 주요대학에서 학생과 대학 간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대학은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고 학생은 대학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일까.
무엇을 위한 대학 구조조정인가
원인은 바로 ‘프라임(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이다. 교육부는 대규모 정원 조정을 하는 대학을 뽑아 올해부터 3년간 매년 2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려면 대학은 전체 입학 정원의 5~10%를 조정해야 한다. 산업 수요와 대학 정원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2024년까지 공학?의학 분야는 21만 9000명이 부족하고, 인문?사회 분야는 31만 8000명의 초과 공급이 예상된다는 한국고용정보원의 전망이 주요 근거다. 선정된 대학은 한 해 300억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대학가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대학 지원사업’으로 불린다. 교육부는 3월 말까지 대학으로부터 사업계획서를 받아 4월 말까지 19개 대학을 선정할 계획이다.
무려 100여 개 대학이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앞다퉈 정원 조정에 나서고 있다. 재정이 부족한 대학으로서는 어떻게든 정부의 지원금을 타내려 필사적이다. 지난해 사립대학교는 운영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3분의 2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모든 초점은 공대 정원을 늘리고 인문?사회 분야를 줄이는 데 맞춰져 있다. 공대가 없던 여대는 공대 신설을 추진하기도 한다.
대학가는 벌집 쑤신 듯 뒤숭숭하다. 예체능과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의 무덤이 되고 있어서다. 중앙대는 이공계를 늘리고 인문?예술계를 대폭 줄이려다가 반발에 부닥쳐 총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신라대는 공대를 늘리기 위해 무용과 폐지를 추진했다가 지역 예술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무용?음악 부문을 통폐합하고 교육?디자인 부문 정원을 대폭 줄이려 하고 있다.
학생의 반발에도 대학이 구조조정을 강행하려 하자 학교와 학생 간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올 초 서울대?고려대 등 수도권 지역 9개 대학 총학생회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등은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라임 사업 등이 대학의 기초학문 정원을 줄이게 하고 대학을 ‘취업 몰입식’ 기관으로 만드는 정책”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이 사업은 정부 주장처럼 사회 변화에 맞춰 대학 체질을 개선하는 사업이 아니라 재정 지원을 미끼로 대학에 정부가 원하는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단국대 총학생회는 최근 전체 학생총회를 열고 대학 측에 ‘프라임 사업 불참’을 요구하기로 했다. 취업 전망을 토대로 한 구조조정이 예술과 순수 학문을 고사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성신여대는 사회대와 인문사범대 정원 감축을 추진하다가 학생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학생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학교 측의 정원 조정 방안이 일방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3, 4, 5, 6 부산 신라대와 경성대는 교육부 프라임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무용학과 폐과를 결정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결정을 보류했다. 학생들은 거리로 나서 학교 측 결정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사진은 신라대 무용학과(사진3, 5)와 경성대 무용학과 (사진4, 6)의 학생들.
취업이라는 미끼, 사회의 ‘획일화’로 이어질 위험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래트 레이스(rat race, 쥐 경주)’가 떠올랐다. 하나의 미로가 있다. 미로가 시작하는 곳(입구)에는 수많은 굶주린 쥐가 몰려 있다. 미로가 끝나는 곳(출구)에 치즈 한 조각을 놓는다. 입구를 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쥐떼는 치즈를 먼저 차지하려고 미친 듯이 미로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이 와중에 서로 밟고 부딪히며 다치는 일이 속출한다. 결국 동작 빠른 한 마리가 치즈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쥐는 굶주림과 상처로 지쳐 쓰러진다. 이는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도시인의 고단한 삶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 ‘래트 레이스’는 성공을 위해 과도하게 벌이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대학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학생 수가 줄고 있고 산업구조도 바뀌고 있어서다. 요즘 학생 사이에선 ‘인구론(인문계 대학생의 90%는 논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가 효율과 속도를 강조하다 보면 래트 레이스를 조장할 유혹에 빠지기 쉽다. 래트 레이스의 치명적인 독은 획일화다. 취업이란 하나의 잣대로 모든 대학을 줄 세우다 보면 ‘공대가 강한 대학’ ‘법대가 강한 대학’ ‘사범대가 강한 대학’ ‘예술대가 강한 대학’ 등 대학 나름의 특성은 사라지고 만다. 미래 인력 수급을 예측해서 인위적으로 인문?예술 부문을 줄이고 공대를 늘렸다가 예측 자체가 틀렸을 땐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투자회사(IB) 골드먼삭스는 신입 직원을 뽑을 때 경영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역사?문학?수학?공학 전공자까지 뽑는다. 최고의 인재라 해도 비슷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 모인 조직엔 사고의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혁신과 창의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한국 교육은 다양성을 꽃피울 준비가 돼 있는가. 선택은 정부보다 시장(학생의 수요)이 더 잘한다.
- 글 김창규
-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 사진 출처 성신여대 과통폐합 반대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savesswu) ‘경성대 무용학과 존속을 위한 기원제’ 영상(youtu.be/zQnyXOa-pts), ‘1일 부산 신라대학교 무용과 ‘눈물의 춤판’ 기원제 퍼포먼스’ 영상(www.youtube.com/watch?v=vtP-4Aqfs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