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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 아이들은 학교보다 놀이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놀이터를 만드는 일은 대개 조경전문가 혹은 건축가의 몫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놀고 관계를 경험할 아이들의 입장은 정작 빠져 있기 일쑤다. ‘놀이터 디자이너’는 아이들에게서 놀이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놀이터의 주인인 ‘아이’와 이를 만드는 ‘어른’의 간극을 좁히는 게 놀이터 디자이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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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커다란 모순에서 시작한다. 아이는 놀이터를 가장 꾸준히 쓸 주인이지만 놀이터를 만들 때는 정작 아무 힘이 없다. 그렇다면 놀이터를 만들 때 가장 힘이 센 주체는 누구일까? 놀이터가 만들어지면 한 번이나 올까 말까 하는 어른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놀이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칫 시혜나 보여주기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틈을 좁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놀이터 디자이너’다. 놀이터 논의가 시작될 때,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만들어진 놀이터가 결과적으로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삶의 국면을 경험하는 곳

놀이터를 만드는 전문가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놀이터에서 놀 아이와 부모 또는 주민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놀이터는 만들 때도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놀이터의 최종 마무리 또한 아이들이 할 것이다. 놀이터가 아이들이 변화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놀이터는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놀이터는 아이들이 마침내 완성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놀이터 디자이너는 이 길을 함께 걷는 안내자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하는 정확한 일은 ‘어린이 욕구에 적합한 놀이터 조성 중재자’다. 놀이터 설계나 시공, 놀이기구 제작사 쪽에는 아이의 놀이 욕구에 대해 이해시키고, 사는 곳 가까이 지어질 놀이터에 관한 공부가 처음인 부모와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놀이터 디자이너는 이 둘을 이어주고 나름의 비전을 제시한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보다 놀이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믿는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자신을 돌보고 함께 노는 상대방을 돌보는 내적인 힘을 기르기도 한다. 다툼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다. 그 해결은 온전히 아이들 몫이다. 회복 가능한 부상에 대해서는 허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겐 다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놀다가 다치는 것은 교육의 분명한 한 과정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놀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는 것이다. 놀이터까지 따라와 간섭과 제지와 금지를 일삼는 어른을 맞닥뜨릴 때 그들의 불안과 걱정과 그늘을 본다. 그렇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다. 불안하므로 아이들 노는 것조차 허용하지 못하고 자신 또한 일하는 삶에 비끄러맨다. 나는 놀이터에서 판타지보다 실제 삶의 다양한 국면을 아이들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놀이터를 주문한 집단이나 놀이터에 아이들과 함께 올 어른의 시각에 맞추려는 것에 극렬히 저항해야 한다. 이것이 ‘놀이터 디자이너’의 첫 번째 덕목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일까’ 고민해야

올해 4월 말에 문을 여는 첫 번째 ‘기적의 놀이터’ 조감도(순천시 연향동 호반 3공원, 순천시 제공).올해 4월 말에 문을 여는 첫 번째 ‘기적의 놀이터’ 조감도(순천시 연향동 호반 3공원, 순천시 제공).

놀이터는 조경가와 건축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놀이터를 바꾸는 일은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 흔히 놀이터를 건축가, 조경가, 디자이너, 놀이기구 회사, 관련 공무원이 모이면 뚝딱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랬다. 앞서 만든 놀이터가 그랬고 그 결과는 지루한 놀이터의 난립이다.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어쨌든 현재의 놀이터가 이렇게 된 일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놀이터는 놀이터가 들어설 인근에 사는 어린이 그리고 그들의 부모, 교육운동가, 놀이터 활동가, 예술가, 시민단체, 지자체, 정치가, 기업이 수평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 놀이터가 어떠해야 할지 상상할 수 있다.
놀이터를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아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한테 놀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다음 순서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아이들이 놀 수 없는지 직시하는 것이다. 놀이터가 없어서가 아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갈 수가 없다. 우리는 아이들 일을 하는 사람이다. 놀이터가 만만해보이고 ‘아이들한테 이런 거 만들어줬어’ 하며 자기만족으로 삼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삶의 여건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냉혹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만약 아이들이 놀이터에 갈 수 있다면 그 놀이터가 비록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그곳을 놀이의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시간, 공간, 친구가 있으면 놀이에 관한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내가 문학에서 시작해 놀이운동가를 지나 현재 놀이터 디자이너에 이른 여정도 이와 같다. 아이에서 놀이를 지나 놀이터에 이르기를 바란다. 놀이터에 바로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아이들은 어떤 놀이터를 좋아할까’가 아니라 ‘아이들한테 놀이란 무엇일까’로 나아가야 하고 마침내 ‘아이들은 누구일까’를 성찰해야 한다. ‘놀이 불가능’ 현실에서 ‘놀이 가능’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 ‘놀이터 디자이너’다. 올 4월 30일, 놀이터가 들어설 곳 가까이 사는 아이들과 주민 그리고 공원녹지과, 시민단체와 2년의 논의 과정을 통해 완성한 첫 번째 ‘기적의 놀이터’가 순천에 문을 연다. 조합놀이기구 없는 놀이터다. 오며 가며 들러주시기 바란다.문화+서울

글 편해문
안동에 귀촌한 지 13년이 되었고 동네 아이들과 ‘적정놀이터’를 만들어 논다. 어린이 욕구에 적합한 놀이터 만들기 중재자, 놀이터 디자이너, 놀이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조성 총괄 MP와 서울시 창의 어린이 놀이터 디자인 및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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