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을래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지성 롤랑 바르트. 그가 <사랑의 단상>을 쓴 건 1977년이다. 감각적 사랑을 깎아내린 바르트는 의미로 가득한 사랑을 치켜세웠다. “그것(사랑)은 미묘하고도 은밀한 기호들의 천국이다. 감각의 축제가 아닌, 의미의 축제와도 같은 그 어떤 것.” 기호는 사랑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기호란 건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라디오 방송국 PD 은수(이영애)가 제안한 ‘라면 먹는 행위’는 비밀스러운 유혹을 뜻했다. ‘때’와 ‘곳’을 불문하고, 사랑은 늘 의미를 찾아가는 미로 찾기와 같은, 한바탕 축제였다.
<사랑의 단상>이 출간된 지 40년이 흘렀고, 이제 우리는 사랑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에 산다. 급기야 ‘사랑의 불가능성’을 철학으로 파헤친 ‘사랑의 철학서’들이 나란히 서점가의 매대에 꽂혀 눈길을 끈다.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과 M.C. 딜런의 <비욘드 로맨스>는 우리들의 ‘사랑의 미로’가 왜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밝힌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사랑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이 온다. 사랑은 기호로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사랑할 ‘타자’가 사라졌다
“최근 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책 <에로스의 종말> 첫 문장은 사랑이 위협받는 현재를 압축한다. ‘사랑의 불가능성’을 향한 저자 한병철의 논리는 이렇다. 사랑을 느끼려면 ‘나’ 이외의 ‘타자(他者)’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된다. 하지만 성과주의 탓에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가 아닌, 획일화된 ‘동일자’만 남았다. 또 자본주의로 인해 사랑은 성애(sexuality)로 변질됐다. 섹시함은 증식돼야 할 자본이며, 전시할 가치를 지닌 상품이다. 그러니 이제 사랑이 지탱할 자리가 없어졌다. 사랑은 단지 두 사람 간의 계약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의 실존을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인데, ‘타자’가 사라짐으로써 에로스는 멸종 위기다.
저자는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사랑이 사라진 시대의 한 형태로 제시한다. 그레이에게 사랑을 느낀 여주인공 아나스타샤와 달리, 그레이는 아나스타샤에게 평범한 연인관계가 아닌, 사도마조히즘의 성적인 관계만을 원한다. 그레이는 사랑의 대상(타자)으로 아나스타샤를 발견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고, 성적 행위만으로 쌍방관계를 유지하려 든다. 사랑이 성애로 뒤바뀐 대표적 사례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알렸다는 점은 ‘에로스의 종말’ 즉 ‘사랑의 불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다.
‘낭만적 사랑’은 거대한 함정
* 영화 <봄날의 간다>에서 은수의 정확한 대사는 대중이 기억하는 “라면 먹고 갈래요?”가 아니라 “라면 먹을래요?”다. 라면 두 봉지를 뜯던 은수가 “자고 갈래요?”를 상우에게 물으며 대중의 기억이 변용됐다.
책 <비욘드 로맨스>는 사랑이 불가능한 이유를 사회가 아닌 개인의 내면에서 발견한다. 낭만적 사랑(romance)은 인류가 흔히 사랑의 최고 경지로 여기는 매혹적 감정을 일컫는다.
단검으로 가슴을 찌르고 로미오를 뒤따라간 줄리엣, 로테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베르테르, 칠월 칠석 오작교 건널 날만을 꿈같이 기다리면서 1년간 밭을 가는 견우와 베를 짜는 직녀는 모두 자기 사랑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수호하는 낭만적 사랑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비욘드 로맨스>의 저자 딜런은 낭만적 사랑이야말로 극복해야만 하는 감정이라고 경고한다.
낭만적 사랑은 극히 순수한 정신적 결합을 추구하므로 상대방 육체, 즉 ‘살’을 부정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베르테르와 로테,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행복하게 오랫동안 살았어요”로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는 건 실재하는 상대의 육체가 낭만적 사랑의 감정에 가려져서다. 서로 사랑하는 상대방의 몸을 만진다는 건 곧 ‘타인을 만나는 행위’이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임에도 낭만적 사랑은 보편적 진리를 가로막는다. 낭만적 사랑의 대상은, 사랑 그 자체다. 낭만적 사랑은 타자와의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랑과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일 뿐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될 수 없는데도, 우리는 늘 낭만적 사랑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일 베를린예술대 한병철 교수의 <에로스의 종말>, 뉴욕주립빙햄톤대의 교수였던 고(故) M.C. 딜런의 30여 년 인기 강좌 내용을 한 권으로 엮어낸 <비욘드 로맨스>는 결국 ‘사랑의 불가능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사랑을 성공시키는 방법은 철학이라는 열쇠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지만, 사랑의 실패만큼은 철학이라는 도구로 풀어낸 흔적이 엿보인다. 결국 두 저자는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로, 사랑할 대상이 사라졌고(타자의 부재) 사랑하는 대상을 몰랐기 때문(타자에 대한 무지)이라고 최종 결론을 짓는다. ‘타자가 부재하는 시대’에 ‘타자에 대해서도 무지한 우리’는 그리하여 늘 사랑에 실패할 뿐. 사랑할 사람도 없는 마당에 어떻게 사랑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사랑이란 기호는 변질됐다. <봄날은 간다>의 사운드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는 오늘날 바뀌어버린 사랑의 의미를 두고 격분하고 개탄하고 절망한 듯한 중저음으로 은수가 아닌, 우리에게 이렇게 외쳐댈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글 김유태
-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문학담당기자
- 사진 제공 문학과 지성사, M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