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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한국 베세토 페스티벌 위원장 양정웅 존재하는 것들,
그사이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여행자
벤자민 버튼의 시간만 거꾸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1994년에 창설되어 현재 성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베세토 페스티벌’이 다시 젊어진다. ‘연극’에만 국한하지 않고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로 폭을 넓혔고,
홍콩 작품을 초청하면서 국가의 경계도 허물었다. 젊은 ‘베세토 페스티벌’을 이끄는
양정웅 연출가를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났다.

한국 베세토 페스티벌 위원장 양정웅

가장 전통적인 젊은 연출가 양정웅

분홍색 셔츠와 밀짚모자를 쓰고 나타난 양정웅 연출가는 언뜻 보기에도 매우 세련되고 젊은 감각이 돋보였다. 극단 ‘여행자’ 대표이자, 한국 베세토 페스티벌 위원장인 그는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다. 한 20년 동안 ‘젊은 연출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는 양정웅 연출가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한국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국내외에서 연속 성공시키며 ‘전통을 잘 이해하는 연출가’라는 평도 받고 있다.
‘전통’과 ‘젊음’은 언뜻 양립하기 힘든 수식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정웅 연출가는 다르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와 전통연희를 접목한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또 다른 대표작 <십이야>도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바탕을 두고, 꼭두 이미지의 배우, 마당놀이, 그리고 해금·가야금·타악으로 연주되는 국악이 한데 어우러지게 연출했다. 2009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 <햄릿>은 기존 텍스트에 진오귀굿, 수망굿, 산진오귀굿을 입혀 복수와 음모로 가득한 인물들과 한(恨)을 굿으로 풀어냈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는 균형적인 접점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는 데 있다. 예를 들자면 롯데리아의 김치버거(김치와 햄버거의 조합) 같은 것 말이다. 햄버거를 먹으려고 매장에 들어온 사람들의 취향과 요구를 적절히 파악하지 못하고, ‘김치’라는 원재료의 정체성을 너무 전면에 내세우는 바람에 결국 메뉴판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전통을 현대화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 역시 다르지않다.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찾아내는 작업에서 주목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양정웅 연출가는 “정체성과 독창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답했다. 존재하는 것들, 익숙한 것들, 이어져 내려온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 새로운 것들, 만나지 않은 것, 나만의 독창성에 대한 고민이 합쳐져서 이 접점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양정웅 연출가의 이 고민은 올해 22회를 맞이하는 ‘베세토 페스티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대 초반에 ‘베세토 연극제’에서 스즈키 다다시의 <리어왕>을 보고 느낀 감명이 잊히질 않아요. 당시는 한중일 교류가 많지 않을 때여서 ‘베세토 연극제’가 아시아 문화교류의 유일한 창구였죠. 이제는 아시아의 문화적 네트워크를 동아시아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로 확장하고 각 나라의 공연예술이 더욱 활발하게 교류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가깝지만 먼, 비슷하지만 굉장히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적 교류가 21세기 ‘베세토 페스티벌’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베세토 페스티벌 위원장 양정웅양정웅 연출은 올해 베세토 페스티벌의 특징에 대해 무엇보다도 ‘젊어지고, 넓어졌다’는 점을 꼽는다. 2012년 양정웅, 김재엽 등 젊은 연출가들로 한국위원회가 재구성된 후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페스티벌이다.

젊음과 다양성의 축제, 베세토 페스티벌

베세토 페스티벌은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베이징, 서울, 도쿄를 중심으로 각국의 작품을 소개하며 교류를 이어온 의미 있는 페스티벌이다. 지난 20여 년간 동북아 공연예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베세토 페스티벌은 올해 ‘동시대 아시아를 담은 주제’ ‘젊은 아티스트 소개’ ‘다방면의 아티스트 교류와 네트워크 형성’을 새로운 키워드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동시대 창작 연극의 메카, 남산예술센터와의 협력을 통해 한·중·일 동시대 연극과 관객이 한결 가깝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산예술센터는 연극계의 큰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공연장이죠. 서울문화재단에서 남산예술센터를 운영하면서 창작 중심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공연예술계의 미래를 함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체성을 가지고 동시대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창작극을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으로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베세토 페스티벌은 특히 2012년 양정웅, 김재엽등 젊은 연출가들로 한국위원회가 재구성된 후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것이다. 이전과 바뀐 점이 있냐는 질문에 양정웅 연출가는 “베세토가 젊어지고, 넓어졌다”라고 답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의 위원회 구성원들도 젊은 예술가들로 바뀌면서 페스티벌 분위기가 젊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국제위원에 안무가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무용 장르가 추가됐고, 그러면서 명칭도 ‘베세토 연극제’에서 ‘베세토 페스티벌’로 바뀌었다.
양손 프로젝트(한국)의 <한중일 단편선-한 개의 사람>(9월 4~5일, 남산예술센터), 무브먼트 당당(한국)의 <불행>(9월 10~11일, 남산예술센터), 노이즘(일본)의 <상자속의 여인>(9월 14~15일, 남산예술센터), 항주 월극원(중국)의 <바다에서 온 여인>(9월 18~1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홍콩 화극단(홍콩)의 (9월 18~19일, 남산예술센터), 황잉 스튜디오(중국)의 <황량일몽>(9월 23~24일, 남산예술센터)이 무대에 오른다.
한국 참가작은 모두 초연 신작이며, 일본·중국 작품 역시 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연출한 창작극이다. 각국의 개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페스티벌 공동 목표인 동시대, 창작, 젊은 예술가에 중점을 둔 작품들이 선정됐다. 특히 양손 프로젝트의 <한중일 단편선-한 개의 사람>은 김동인작 <감자>, 위화 작 <황혼 속의 남자아이>, 다자이 오사무작 <직소>를 재료로 삼아 만든 창작극으로, 티켓 오픈 즉시 매진될 정도로 큰 관심을 얻고 있다.
페스티벌 마지막 날에는 각국 젊은 연출가인 이경성(한국), 자오 추안(중국), 노리유키 기구치(일본)가 공동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창작 작품에 대한 발표 워크숍을 갖는다. 사전에 스카이프 미팅을 통해 자신의 연극적 방식을 제안하고, 연극적으로 만나는 지점을 탐색하고 실험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보는 프로젝트다. 각국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공동 창작극을 만들어내며 조금 더 긴밀하게 교류하기 위한 시도다.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홍콩 작품도 선보인다. 베세토 페스티벌이 아시아 전체로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홍콩 화극단과 미팅을 하게 됐다는 양정웅 연출은 이번에 ‘City of Asia’라는 섹션을 새롭게 만들어서 홍콩 작품을 초청한다.
“‘City of Asia’는 국가의 개념을 없애고 아시아의 각 도시 간 공연예술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20세기 국가 개념을 넘어서자는 거죠. 베세토 페스티벌은 국내에서 3년에 한 번 개최되지만 ‘City of Asia’는 독립된 페스티벌로 만들어서 남산예술센터와 함께 매년 개최하면서 아시아 전체의 공연예술을 소개하는 창구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영국에는 로열 코트 시어터라고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작가를 초청해서 창작 작가를 발굴하는 극장이 있어요. 남산예술센터도 앞으로 다양한 국제교류 사업을 많이 진행해서 한국의 로열 코트 시어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양정웅 연출은 아시아가 넓어지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모든 작품이 기대됩니다. 20세기가 하나의 ‘최고’를 뽑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다양성을 보는 시대입니다. 익숙한 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자세도 필요하고, 낯선 것을 보려는 자세도 필요하죠. 이번 베세토 페스티벌은 짧은 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볼거리가 진행되는 다른 페스티벌과 다르게, 원한다면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니 다양하게 즐기기를 바랍니다.”
현재 베세토 페스티벌은 소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www.tumblebug.com)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목표 금액은 1000만 원. 후원금은 축제 기금 마련 외에도 아시아 각국의 문화예술 교류와 젊은 아티스트들의 왕성한 교류와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기금 마련에 사용될 예정이다.

양정웅 연출가와 베세토 페스티벌의 ‘2막 2장’

한국, 중국, 일본은 역사가 다르고 국민의 기질 또한 달라 표현 방식이 매우 다르다. 전통예술을 보면 일본의 정제된 미, 중국의 대륙적인 스케일, 한국의 에너지와 자유분방한 감정 표현이 큰 차이다. 현대 공연예술을 보면 일본은 심미적이고 문학적이며 디테일한 표현이 세련되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국은 전통과 현대를 자유분방하게 넘나드는 다양성, 중국은 전통을 잘 소화하고 아직도 그것을 잘 계승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양정웅 연출은 아시아 현대 공연예술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연구해나가는 것이 베세토 페스티벌의 과제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바뀌는 것은 현대 공연예술뿐만이 아니다. 그 중심에서 공연예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양정웅 연출은 자신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많이 겪었어요. 중년을 지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많이 놓게 되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어요. 역사, 종교를 대하는 태도도 작품을 계속 하면서 달라졌고요. 얼마 전 <페르귄트>라는 작품을 하면서는 철학도 많이 바뀌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2막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1막은 마흔으로 끝나고, 2막으로 넘어간 지 8년 정도 된 거죠. 아직도 바뀌고 있고요.마지막이 아니라 2막의 2장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젊음은 변화한다. 변화를 멈추고 현 상태에 안주하는 순간 젊음은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하는 베세토 페스티벌과 양정웅 연출가에게 ‘젊음’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유다. 70이 돼도 ‘젊은 연출가’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양정웅 연출가와 그가 이끄는 ‘젊은 베세토 페스티벌’을 응원한다.문화+서울

글 이현지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대리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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