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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3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김승일

b.1987
문학/시
completecollection.org
2026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

저는 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알게 된 것을 공유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시를 새롭게 정의하려고 합니다. 최근엔 말하기 방식을 만드는 일, 그리하여 인류가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시를 정의해보았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2026년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습니다.

시는 초등학생 시절 일기에 쓸 내용이 없을 때 일기 대신 끄적이면서 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고요. 시인으로 불리게 된 건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당선된 다음부터입니다. 어릴 때부터 욕심이 적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시인이라는 직업이 욕심과 가장 먼 직업처럼 보였습니다. 너무 멋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직업처럼 여겨졌어요. 물론 본격적으로 창작을 하게 되면서는 더 멋진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휩싸이곤 했죠. 인정 욕구가 없는 사람이 존재할까 싶기도 하고요. 문학에도 파괴적인 힘이 있어서, 자칫하다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시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유해하면서도 무해한,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듯싶습니다.

제가 예술가라는 느낌은 유년 시절에 숙제로 독후감을 쓸 때부터 존재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로 자각하고 있었어요. 그게 무슨 글이든 글만 쓰면 기분이 이상했거든요. 잡생각이 사라지고, 답답하지 않고 자유로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소개하면서도 부끄럽지 않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죠. 아마 두 번째 시집 『여기까지 인용하세요』(문학과지성사, 2019)를 집필하는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 시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어요. 두 번째 시집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비정해지곤 했습니다. 무엇이든 말할 수 있어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어느 것도 말할 수 없어서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그 기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예술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때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제 대표작은 항상 갱신됩니다. 지금 막 쓴 시가 지금까지 쓴 시 중에 가장 마음에 들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you can never go home again’이라는 시를 쓴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주 말했기 때문에…… 아마 그 시를 뽑을 것 같습니다. 수녀이면서 스님인 사람이 꿈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꿈에서 깨어 꿈속에서 있던 일을 요약해 기록하고, 눈을 감았을 때의 생각을 말하고, 눈을 떴을 때의 생각을 말하는 시입니다. 이 시는 이런 식으로 다양한 순간들, 매체들, 장소들, 대비되는 순간들 속에서 특정한 상황을 다양한 각도로 기록합니다. 직접 읽어보시면 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시의 내용이나 주제를 파악하려고 독서하기보단, 시에 몸을 맡기고 그냥 따라오시면 다양한 시점을 넘나들며 이상한 체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독보적인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의 날씨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오늘의 날씨 때문에 기분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기억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말도, 말하는 방식도 달라지죠. 날씨가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기서는 어떤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최근 인상 깊게 본 예술 작품은 유리관 작가의 『사명을 찾아서』(베드베드북스, 2025)라는 책입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출판사 이름을 지어내고 그 출판사가 어떤 출판사인지 설명하는 책인데요. 어떻게 살면 되는지 말하는 책은 많지만, 어떻게 살면 안 되는지 말하는 책은 희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바보 같은 농담 같습니다. ‘이렇게’란 뭘까요? 출판사를 차리는 일 아닐까요?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제가 차린 출판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현대시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이미 제 시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무료 강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요. 제 시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다른 시인의 시도 설명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재밌고 쉽게 접근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를 설명하는 일의 좋은 점은, 설명하고 설명해도 절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들이 몸소 체험할 수 있다는 데 있거든요. 물론 시 쓰는 일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시도 많이 쓰고 싶습니다. 몸이 하나만 있어도 아쉬워요. 이 아쉬움이 시를 쓰는 원동력이겠죠.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더 알뜰하게 시간 써보겠습니다.

작가의 출판사 베드베드북스에서 출간한 『사명을 찾아서』와 일정 기간 쓴 모든 글을 책으로 모은 ‘N월의 책 프로젝트’ 『6월의 책: 훈련소의 김승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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