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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3월호

예술가의 진심 지춘성,
날개를 달 수 있는 곳은 오직 무대뿐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은
지독한 연습에서 나오죠.”

배우 지춘성은 탈진할 때까지 런(전막 연습)을 연달아 두 번 돌고, 녹초가 된 채 집으로 걸어가던 날들을 떠올렸다. 매일 죽도록 연습하고, 고칠 부분을 짚고, 다시 디렉션(연출 수정 지시)이 바뀌는 과정을 반복했다. 어느새 대본에는 형형색색의 밑줄과 메모가 빼곡히 들어찼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알록달록한 대본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미치도록 파고들지 않으면 닿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으로 완성한 <삼매경>은 평단의 찬사 속에 2025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이름을 올렸다. 지독한 몰입 끝에 그는 38년 연기 인생에 또 한 번의 정점을 찍었다.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7월 초연 이후 7개월 만에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됐다.

최근 만난 지춘성은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 솔직하게 내 모습을 드러내는 스타일”이라며 “배우 개인의 일대기로만 보지 않고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준 점이 작품이 사랑받은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34년 돌아 다시 만난 ‘도념’

인생은 짧아. 연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그저 한여름 청청함을 과시하다 기약 없이 지고 말지. (이하 연극 <삼매경> 중)

연극 <삼매경>은 한국 근대 희곡을 대표하는 작가 함세덕이 쓴 ‘동승’을 이철희 연출이 재창작한 작품이다. 1939년 유치진 연출로 초연한 <동승>은 같은 해 제2회 연극대회 극연좌상(현 동아연극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한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했다. 원작 ‘동승’은 깊은 산속에서 지내며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자승 도념의 이야기를 다룬다. <삼매경>은 여기에 배우 지춘성의 시간과 기억을 덧입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또 다른 도념의 이야기를 펼친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34년이라니 세월이 유수 같아.
유수 같은 세월이라는 말이 자네가 사는 세계 속에도 있나? 자네는 여전히 열네 살인데.

자신의 역할을 실패로 여긴 채 연극의 시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도념은 결국 저승길에 오른다. 삼도천(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뛰어든 그는 과거와 현재, 연극과 현실이 뒤엉킨 기묘한 ‘삼매경’을 경험한다.

특히 예순의 ‘도념’이 삶을 들려주듯 무대를 채우는 모습이 인상 깊은 작품이다. 거침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공연마다 목이 쉬어버린 지춘성의 연기에 객석도 숨을 죽였던 이유다. 도념이 저승길에서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보고 싶었어요, 엄마”라는 도념의 말에 어머니는 “엄마는 늘 네 곁에 있었어. 네가 매일 머물던 그 겨울 숲의 딱새 소리는 엄마가 널 부르는 소리였단다”라며 아들을 위로한다.

지춘성은 “<동승> 속 도념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절함을 드러내는 인물이었다면, <삼매경>을 준비하면서는 캐릭터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끼며 공연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연극과 배우의 삶을 다루지만, 방황과 좌절을 지나 한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힘이다.

이까짓 것? 너희들은 이까짓 것에 단 한 번이라도 뜨거워져 본 적 있어? (…) 난 연극에 중독됐어. 이게 그토록 내가 날 괴롭히는 이유야.

미완의 연기를 끝내 완성하지 못한 도념은 다시 고개를 떨군 채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완성”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우리는 모두 완성되지 못한 존재지만, 그 미완성의 아름다움 속에 삶의 진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삼매경>이 지난해 개막 전부터 주목받은 데는 1991년 연극 <동승>(연출 박원근)에서 동자승을 연기한 지춘성이 34년 만에 ‘도념’으로 다시 무대에 선 점이 크게 작용했다. <동승>으로 그는 제15회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과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인기상을 받으며 연극계 스타로 떠올랐고, ‘영원한 동승’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의 인생에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를 선사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제 배우 인생을 만들어준 작품이 바로 <동승>이에요. 이른 나이에 딱 맞는 역할을 만났고, 좋은 성과를 얻으면서 연기를 이어갈 수 있었죠. 다만 20대에 받은 화려한 조명과 상은 때로 족쇄가 되기도 했어요. 30여 년이 지나 <삼매경>으로 도념을 다시 만났을 때는 오히려 무덤덤했어요.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도 줄어드니 도념을 만나는 일이 편안하게 느껴졌죠.”

몇 해 전 이철희 연출이 “<동승>을 다시 한다면 하시겠어요?”라고 제안했을 때 그는 “‘내가 동승을? 이제는 주지 스님 역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결국 무대를 선택했고, 관객과 다시 마주했다. 지춘성은 “초연 무대가 끝난 뒤 주변에서 ‘공연이 너무 좋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 무척 기분이 좋았다”며 “후배들이 영양제까지 챙겨줄 만큼 <삼매경> 덕에 호사를 누렸다”고 돌아봤다.

같은 작품으로 또 한 번 무대에 서게 된 그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한다고 했다. 그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존재라는 감정이 작품에 배어 있다”며 “마음을 다잡고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관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열한 공백기 지나 다시 무대로

그의 무대 인생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었다. 중학생 시절 영어촌극대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연기상을 받으며 재능을 드러낸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1988년 현대극단 ‘레미제라블’에서 거리의 소년 가브로슈 역으로 무대에 섰다. 이후 <피리 부는 사나이>와 <해피프린스> 등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김아라 연출이 이끄는 극단 ‘무천’의 창단 단원으로 합류했다. 당시 배우 신구·정동환·윤소정 등이 함께하던 시기였다. 지춘성은 “어린 역할을 많이 맡아 아역 배우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상업 연극은 성인이 된 이후에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995년 김아라 연출이 극단 무천 활동을 정리하면서 지춘성은 대학로 연극 무대를 잠시 떠나게 된다. 2002년 복귀작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다>의 월명스님 역으로 돌아오기까지 7년의 공백 기간은 그에게 길고도 어두운 터널이었다. 대학로를 걷다 자신에게 연극 전단을 건네는 아르바이트생을 마주할 때면 무대에서 멀어진 현실을 실감하곤 했다. 그 시기 그는 결혼 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MBC <뽀뽀뽀>에 콩트 배우로 고정 출연했고, 다른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는 동물 캐릭터 탈을 쓰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지춘성은 “젊은 시절에는 어린 역할도 맡을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설 자리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며 “대학로에서 불러주는 곳이 없어 일이 끊겼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후배들에게 직접 식사를 대접하며 출연할 작품이 없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인기 있는 상업 연극이 아니어도 실험극이든 무용극이든 불러주기만 한다면 무대에 서고 싶은 갈증이 컸다. 그는 “출연료를 받지 않아도 되니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며 “어떻게든 다시 연기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된 작품은 2010년 아비뇽을 뜨겁게 달군 한불 합작 연극 <코뿔소>였다. 프랑스 부조리극의 거장 외젠 이오네스코의 원작을 각색해 배경을 현대 사무실로 옮긴 작품이다. 평화로운 마을에 코뿔소 한 마리가 등장한 뒤 사람들이 차츰 코뿔소로 변해가는 가운데, 소시민 베랑제만이 이를 거부하며 인간성을 지키려 저항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국내 여러 기관과 프랑스 아비뇽 할레 극장Theatre des Halles이 협력해 제작한 국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서바이벌 오디션’이 흔한 포맷이지만, 당시에는 낯선 방식이었다. 그는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작품에 합류했다.

“첫 오디션에서는 김훈의 ‘칼의 노래’ 한 페이지를 주며 몸을 써서 표현해보라고 했어요. 이순신 장군 이야기라 봉을 활용해 창의력과 순발력, 기술을 보여주려고 한 달을 준비해 선보였죠. 한국 심사 위원 오디션을 통과하니 이번에는 프랑스 연출가가 워크숍을 진행하며 15분 동안 할 수 있는 걸 모두 보여달라고 했어요. 그걸 또 통과하니 다음 날에는 희극과 비극·무언극을 준비해 오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단계를 거쳐 결국 아비뇽에 가게 됐습니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여한 연극 <코뿔소>는 ‘르 몽드’ 지와 BBC를 비롯한 유럽 주요 매체의 호평을 받았다. 지춘성은 “마흔다섯의 나이에 그토록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해 페스티벌 무대에 서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작은 체구와 앳된 얼굴은 그에게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체격 조건 탓에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되면서 아동극 무대에 서는 일이 잦았고, 같은 이미지로 굳어질까 걱정돼 출연을 거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피했던 아동 역할은 역설적으로 그의 연기 인생을 관통하는 변곡점이 됐다. 그는 되려 그 역할을 지춘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배역으로 탈바꿈했다.

그 면모가 또렷하게 드러난 무대가 2013년 김재엽 연출의 <알리바이 연대기>였다. 전쟁과 폭력의 기억 속에서 인간의 책임과 죄의식을 되묻는 작품이다. 지춘성은 1인 다역을 맡아 40대 나이에 일곱 살가량의 소년을 연기하며 작품의 비극성과 메시지를 선명하게 부각했다. 이 연기로 그는 제35회 서울연극제 연기상과 2014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을 받았다.

그는 “사실 계속 피해 다닌 게 ‘아동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만났을 땐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졌다”며 “그런 배역을 많이 맡다보니 당시 내 별명이 ‘졸귀’(‘매우 귀엽다’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이기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이 작품으로 ‘지춘성 살아 있네’라는 걸 보여주며 상도 받았으니, 내 인생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지춘성은 <동승>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생각은 자유>, <씨름>,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철로>, <후회하는 자들> 등 8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또 2019년부터 4년간 서울연극협회 제6대 회장을 맡아 연극계 활동과 문화 행정을 병행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에서 연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기반이자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었다. 연기를 향한 갈증은 그를 다시 관객 앞에 세웠다. 지춘성은 “내가 날개를 달 수 있는 곳은 오직 무대뿐”이라며 “작품마다 온 힘을 다해 임해왔고, 그 열정과 애정이 결국 <삼매경>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정 이데일리 기자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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