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언제나 새로운 상상력으로
제3회 서울희곡상 수상자 김유경
제3회 서울희곡상 영예의 주인공이 밝혀졌다. ‘1인극인데 두 명이 나오는 이유에 대하여’를 쓴 김유경 작가다. 202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는 같은 해 <봄 작가, 겨울 무대>에서 낭독공연을 올린 뒤 2025년 뮤지컬 칸타타 형식의 <두 번째로 간 훈련소>의 극작과 가사를 맡은 그는, 수상 소식 이후 ‘드디어 연극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등단 후 집필을 왕성히 이어가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프로덕션 작업을 하며 정식 공연을 올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상작은 특히 메타 구조로 독자에게 아이로니컬한 흥미를 자극하는 희곡이다. 제목은 ‘1인극’을 지시하지만, 추후 공연으로 만들어져 실제 관객이 마주할 무대는 1인극이 아닐 것이다. 작가와 그가 만든 인물이 ‘나란히’ 등장해 치열한 대화를 펼쳐 나가는 희곡이기 때문이다. “메타극이 자칫 과장되거나 인위적으로 보일 위험을 경계”하기 위하여 메타극을 열심히 공부했다던 그는, 이 형식적 틀거지를 작가로서의 자아상을 과시하기 위한 기교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극 중의 작가와 자신(김유경)을 분리해 설명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로써 ‘극 중의 나’(작가 역)와 ‘극 중의 내가 만든 나’(인물 역) 사이의 대화에서 김유경(실제 작가)이라는 가장 실제적인 나를 찾아보라는 과대한 작가적 명령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수상 소식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12월 8일, 서울연극센터에서 김유경 작가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 작품에 관한 자세한 내용, 혹은 그가 쌓아온 극작의 시간을 그의 목소리로 들어보자.
피란델로에게 영향받았죠. 작가가 자기가 쓴 인물과 대화한다는 메타적 설정 자체가 이 희곡의 모티프였습니다. 실제로 완성하지 못한 희곡이 있는데, 제가 원고를 더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인물이 그 글 안에서 멈춰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인물의 고유한 리듬을 찾아야 글을 써나갈 수 있는데요. 인물이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작업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피란델로를 오마주한 것이지만, 극 중 인물의 발화나 결론 등을 다르게 펼쳐나갑니다.
이 극의 시공간적 배경은 2010~2015년 무렵 영국 런던인데요. 이곳의 격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당시 런던은 테이트 모던이 세계적 지배 구조를 만들고 갤러리 산업이 기하급수로 성장하며, 글로벌 스타가 되는 미술가들이 거론됩니다. 반면, 로열 코트 극장은 세계적인 극장이라 해도 스타 작가 몇 명만 왕좌를 차지하고, 신인 작가는 사실상 계단조차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가장 초라한 곳에 머물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당시 런던은 미술계뿐 아니라 공연·문학까지 여러 예술 실험과 자본이 집중된 곳이었고, 이 ‘예술 중심지’에서 극작가의 생태계는 어떠한 불균형 속에 놓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대비시키기에 좋은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특히 영국의 포스트드라마를 쓰고 실패한 작가입니다. 그가 처한 현실과 느끼는 바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포스트드라마 희곡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메타극은 자주 다뤄지는 설정이기 때문에 현대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사실상 누구나 자주 마주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처음부터 전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작품과 작가의 관계에 대해 이 희곡으로 답을 찾아가기보다는, 질문을 계속 해나가려 했습니다. 극 중에서 인물은 작가에게 ‘그 대사는 내 거야’, ‘그 감정은 내 거야’라고 선언해버리는데요. 둘의 대화가 곧 ‘작품이란 작가의 것인가, 인물의 것인가’ 하는 최근의 시의성 강한 질문 자체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희곡은 사실상 어느 실패한 작가의 무대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떻게 읽힐지는, 결국 무대에서 결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텍스트를 오래 사용해왔더라고요. 광고사에서 카피를 쓰는 일을 오래 했는데요. 소비자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목적인 글을 써온 것이죠. 또한 미술을 해오면서 창작의 궤를 오래 감각해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창작의 시간이 외롭게 느껴진다거나, 그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답답해하지 않는 편입니다. 사람을 탐색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질문하고 싶어 하는지 계속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이 작업이 저는 즐겁습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고故 강태기 배우의 <에쿠우스>를 봤어요. 고등학생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극이기도 하고,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때 느낀 낯섦이 오래 지속됐어요. 특히 무대는 제게 ‘현재형의 텍스트’로 느껴집니다. 한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지지만, 그 속에서 빛나는 어떤 시간이 존재해요. 희곡은 그 시간을 향해, 무대를 향해 건네는 하나의 문장을 찾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계속 배우는 중입니다.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 달에 다섯 편 정도를 보는데요. 극작이나 문예 창작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본이 필요했습니다. 단순한 설명이지만, 공연이란 작가가 1년 동안 텍스트를 쓰고, 제작자는 6개월 넘게 연구하고, 배우는 2개월 넘게 연습하며 만들어지는 것이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사람의 고민과 질문의 레이어가 쌓여 관객이 의지할 수 있는 감정과 감각을 전달해주는데, 이렇게 여러 사람의 연구와 노력, 즉 굉장한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공연을 보고나면 장면을 쪼개서 노트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대가 공부가 되고 수업이 됐습니다. 잘 몰랐던 장면도 써놓고, 잘 몰랐던 대사는 외워버립니다. 그러고나면 나중에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한 과정이 모두 수업이 됐습니다.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있어 현재도 이와 관련한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동뿐 아니라, 사실상 비워진 공간과 정적에 크게 흔들립니다. 누군가 살았던 자리, 시간이 스쳐간 공간을 보면 그 안에 아직 불려 나오지 않은 인물이 있을 것만 같아요.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그런 ‘자리가 남긴 감정’이 저를 가장 강하게 움직인 순간이었어요. 어느 공간에 쌓인 시간,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존재를 기억하는 걸 좋아합니다.
‘채식상어’의 경우 자연사박물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최상류층이 파티를 연다는 설정 자체가 실은 기막힌 일인데요.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더욱이 우리나라에 초대받지 못한 난민 소녀가 등장하죠. ‘하울링’은 오래된 폐아파트에서 나가지 않고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이고요. 할머니가 어떻게 그 아파트 지하실에서 버려진 개들과 살게 됐는지 아무도 할머니의 과거를 궁금해하거나 묻지 않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싶었어요. 서울의 아파트 역사가 50년이 넘었는데요. 그와 관련한 서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작했습니다.
어느 장소의 공공성에 대해서 자주 생각합니다. 폐아파트는 비워진 공간인데 이전엔 누군가의 소유지였고, 누군가가 시대를 걸쳐 삶을 누적해온 자리이고요. 그러나 현재는 그곳 지하실에 있는 할머니를 끌어내려는 힘이 개발 정책 등에 의해 작용하고 있어요. ‘채식상어’의 박물관이나 ‘1인극인데 두 명이 나오는 이유에 대하여’의 극장도 공공의 장소이죠. 특히 극장은 저와 같은 작가들이 이렇게 혜택받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극장의 공공성, 그리고 이와 관련한 갈망과 사랑이 복잡하게 뒤얽혀있는 작가를 그려나갑니다. 패배했지만 여전히 갈망하는 작가네요.
존재에 관한 질문을 늘 중심에 가지고 있는데요. 비워진 공간에 있던 시간과 존재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지금도 계속 질문을 하며 희곡을 쓰고 있습니다.
‘1인극인데 두 명이 나오는 이유에 대하여’ 또한 존재와 정체성에 관해 작가와 인물 간 대화를 통해 질문하는 희곡이고요. 메타극 형식을 차용한 것도 ‘인물이 자기 존재를 질문하는 순간’을 그리기 위함이었고요.
희곡이 여전히 어려워요. 특히 이 작품을 쓰면서 메타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부할 게 많다고 느낍니다. 움직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배우의 움직임뿐 아니라 퍼포머의 동작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희곡에 포함된 지문으로는 아닐 것 같아요. 대사로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피나 바우슈로 인해 퍼포먼스에 관심이 커졌어요. 관객에게 주인공 중심 서사를 보여주며 따라와달라고 부탁하거나 그러한 말을 건네는 것도 좋은 희곡이지만, 최근에는 현대 언어로 공간과 대사, 움직임 사이의 교차점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공부해가고 있습니다. 희곡을 쓰며 매번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게 됩니다. 또한 알게 된 것들을 제 상상과 함께 펼쳐나가기에는 희곡이라는 텍스트가 가장 적절한 장르라고 생각하고요.
글 장기영 공연예술평론가 | 사진 강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