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전 세계 박물관 보안에 경종을 울리다
10월 19일 일어난 파리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절도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일요일 오전, 현장직 노동자로 위장한 이들이 단 7분 만에 유리창을 뚫고 프랑스 왕실 보석을 훔쳐 달아났다. 경보는 늦게 울렸고, 보안요원은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예술의 나라’라 자청하던 프랑스의 문화유산 보안 체계가 뿌리째 흔들린 순간이었다. 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용의자는 여럿 체포됐지만 보석의 행방은 묘연하다.
루브르 절도 사건의 키는 ‘늦게 울린 경보’(물리적 허점)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보안요원’(인적 허점)이다. 로랑스 데 카르Laurence des Cars 관장은 10월 22일 열린 청문회에서 “해당 구역엔 카메라 한 대뿐이었고, 침입 지점은 촬영되지 않았다”며, “이는 오랜 기간 인프라 투자 부족의 결과”라 시인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마지막 대규모 개보수는 198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시절 이뤄졌다. 이런 느리고도 드문 개보수는 프랑스의 옛 건물을 지금까지 당시 모습으로 유지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보안 면에서는 굉장히 취약하다. 루브르의 보안 시스템은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시스템 호환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상태가 이어졌다. 과거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루브르는 2010년대 후반까지도 윈도우 2000나 XP 운영체제인 컴퓨터를 일부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루브르에는 465개 전시실이 있지만 CCTV는 432대에 불과한 데다, 보석이 있던 드농관Salon Denon의 35퍼센트는 사각지대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보안 시스템의 비밀번호가 ‘Louvre’, 보안 위탁업체 탈레스의 비밀번호가 ‘Thales’였다는 점이다. 초기에 설정한 비밀번호를 그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인은 무언가를 한번 설정하면 아주 오랫동안 쓰는 편인데, 특히 그것이 공유되는 존재인 경우 누구도 먼저 나서서 바꾸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필자가 사는 건물 입구 비밀번호도 45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이번 절도의 경우도 이 느슨한 관성을 잘 아는 내부자가 정보를 흘리며 가능했다.
루브르 박물관 전경 ⓒFlorent Michel/Musee du Louvre
재정과 인력 부족이 부른 무력감
인적 자원의 부실함도 지적됐다. 늦게 도착한 보안요원과 소극적으로 대응한 루브르 직원들의 태도다. 이들은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라고 말한다. 현재 프랑스의 공공기관은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해 공공기관의 예산을 줄여왔고, 올해는 문화부 예산만 1억 5천만 유로(한화 약 2,500억 원)가 삭감됐다. 데 카르 관장은 이미 건물 노후로 누수가 일어나고, 실내 온도 조절 장비가 부실해 작품 보존이 위협받고 있으며, 기술 장비의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지원을 호소한 바 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보안 시스템 개선의 경우 2019년 연구 용역까지 마쳤으나 예산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다. 루브르의 재정 문제는 예산 삭감으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도 있지만 지난 5년간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과 올해 시작된 퐁피두센터 개보수에 재정이 집중된 탓도 있다.
올해 초 마크롱 대통령은 ‘루브르 누벨 르네상스Louvre Nouvelle Renaissance’ 계획을 발표했다. <모나리자>를 위한 전용 전시실과 새 입구 조성 등 관람객 분산을 중심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다. 비용은 최대 8억 유로(한화 약 1조 3천억 원). 그러나 루브르의 매표원, 안내원, 보안 인력 등은 관광객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장기적인 현대화보다 예술 작품을 관리하고 지키는 기본 환경을 신속하게 개선하는 것이 현재 더욱 중요하다고 반발했다. 직원들이 지난 6월 16일 갑작스럽게 파업한 이유도 “우리의 사명인 유산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결정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박물관 내부의 잇따른 무력감은 누군가에게 ‘한탕’의 동기를 부여했다. 그러니, 언젠가 터질 일이 지금 터졌을 뿐이다.
인터폴에 공개된 루브르 박물관 아폴론 갤러리 도난품
세계 주요 미술관의 대처
이번 사건은 전 세계 미술관에도 경종을 울렸다. 영국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러시아 에르미타시 박물관State Hermitage Museum 등은 외곽 보안 체계를 전면 점검하고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고가 유물 보호 구역을 재배치하고 외부 감시팀을 투입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AI 감시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AI 기반으로 영상 분석, 이상 움직임 감지, 자동 추적이 가능하다. 에르미타시 박물관은 창문 센서와 유리 진동 감지 시스템을, 바티칸의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은 방문자 로그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은 보석류와 회화품 전시실을 분리하고, 야간 보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심층 방어’ 방식 역시 고려되고 있다. 심층 방어는 외부-출입구-전시장-전시 케이스 순으로 관람객이 전시물까지 가는 동선 중간중간에 여러 물리·심리적 방어벽을 거치는 방식이다. 관람객 동선을 일방통행으로 조성하는 방식도 한 가지 옵션이다.
이번에 사라진 보석들은 국가 소장품으로, 민간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보석을 되찾지 못한다면 추정 가치 약 8,800만 유로(한화 약 1,500억 원)이 손실 처리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운영 재정마저 부족한 마당에 앞으로 개선해야 할 보안 시스템 및 인프라 구축에 발생할 추가 비용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프랑스에 살다보면 길에 채는 것이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가득하다. 선조의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큰 행운으로 지금껏 그 복을 누리며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제 국가 재정이 흔들리는 이때, 그 복은 제대로 잘 보존할 때야 복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글 전윤혜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