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서사가 더는 독특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
공연계, 아니 문화계 전반에서 ‘여성 중심 서사’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여성을 주연으로 하는 작품은 물론 여성만 등장하는 작품도 넘쳐난다. 지난 1월 ‘2024 한국뮤지컬 산업 리뷰’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여성 서사 뮤지컬의 열풍에 주목하며 올해도 이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리고 이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대학로에서는 은근한 동성애 코드를 노린 ‘여여’ 뮤지컬 <하트셉수트>(3월 11일부터 6월 8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까지 대성공했으니 말이다. 연극 역시 마찬가지다. 뒷틈backlash을 겪으며 미투 운동의 여파가 조금은 사그라졌다고 생각한 찰나. 성폭력 피해를 다룬 여성 1인극 <프리마 파시>(8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러한 여성 서사가 등장하게 된 동기는 거창하지 않다. 공연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해야 하고, 소비자의 선호를 제대로 파악해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극장을 채우는 관객의 절대다수는 여성이다. 지난해 국내 공연 관람객의 약 75퍼센트는 여성이 차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30 여성이다. 이런 현상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중소 극장에서 더욱 심하다. 일주일에 평균 두세 편을 관람하기 위해 대학로를 찾는 기자가 찾은 극장에는 여성 관객 비율이 80퍼센트였다. 남성 관객이 단 한 명도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2030 여성들이 공연을 비롯한 출판·전시 등 영역에서 문화계 큰손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동시에 이들은 정치·사회 이슈에 민감하다. 정치적 관심이 곧 젠더 감수성으로 이어지라는 법은 없지만, 이들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관심은 곧 젠더 문제로 확장된다. 이들은 여성 서사가 주류 담론이 되기를 바랐고, 이러한 작품이 하나둘 성공하자 제작사들이 관객의 취향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연계는 남성 배우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영화·드라마 업계에서는 남성 배우들이 여성보다 천문학적으로 높은 출연료를 받는데, 공연계도 다르지 않다. 티켓 파워를 가진 남성 배우에게 더 많은 돈을 지급하는 건 수익을 내야 하는 제작사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이는 모순되게도 관객층이 주로 여성이기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 주연 작품보다도 더 많은 게 남성 주연, 나아가 ‘남남 페어’의 케미스트리를 노골적으로든 은근하게든 내세운 작품이다. 대학로에서는 <쓰릴 미> 이후로 남남 2인극이 대표적인 성공 문법으로 자리잡았다. 올해도 비슷한 부류의 작품들이 쏟아졌다.
여기에 더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소 극장과 달리 대중의 입맛을 따르는 대극장은 주로 검증된 대작을 들여온다. 이미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많은 경우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은 스테디셀러 뮤지컬 속 여성들은 ‘성녀’와 ‘악녀’의 구도라는 오래된 캐릭터의 전형을 따르기도 한다. 이들은 대체로 수십 년 동안 국내외에서 공연된 작품으로, 주변부에 머무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훨씬 전에 탄생했다. 남녀 간의 로맨스는 빠지지 않는 소재이며, 멋진 남자 주인공은 필수다.
다만 대극장에서도 고무적인 움직임이 보인다. 시대의 금기를 깬 여성 작가 안나의 이야기를 다룬 <레드북>은 20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에 선정된 이래 올해까지도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여성 과학자의 생애를 다룬 <마리 퀴리>와 같은 작품은 영국 웨스트엔드 장기 공연에도 성공했다. 스테디셀러 작품에서도 소극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여성 서사 속 주인공들은 직업도, 성격도, 서로의 관계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는 여성 서사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 서사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과 이미 성공한 여성 주연 작품이 여럿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다. <프리마 파시>는 여성 1인극이라는 흔치 않은 작품임에도 김신록을 비롯한 차지연·이자람까지 대중적으로 알려진 여성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며 성폭력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성공을 이뤄냈다.
여성 서사가 더 이상 독특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때 공연계는 더욱 적극적으로 새로운 소수자성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드래그퀸의 이야기를 담은 <킹키부츠>는 서구 사회에 비해 성소수자에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 많은 악조건을 딛고 성공했다. 대다수의 관객이 좋아할 만한 신나는 넘버와 성소수자 문화에 비교적 우호적인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흥행이 전 관객층으로 퍼진 덕분이다. 이 작품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없애진 못하지만, 적어도 업계에서 소수자성을 주제로 한 작품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이는 한국 관객의 수준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여성 서사 열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앞으로 공연계가 어떠한 서사에 주목할지 귀추가 궁금해지는 시기다.
글 김유진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 일러스트 slowrecip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