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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박수예

b. 2000
음악/클래식 음악
@park_sueye
2025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특화프로그램 ‘The Opus 2025’

15년째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입니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에서 공부했고, 유럽을 중심으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했고, 2018년과 2021년에 이어 음반을 냈습니다. 올해 초 장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악기 연주는 네 살 때부터 시작했고,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가족과 식사하러 레스토랑을 갔는데, 그때 현악 4중주 연주를 들은 기억이 나요. 아무것도 모르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달려가서 악기를 연주하는 척하며 바이올린을 보여 달라고 조른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부모님께 바이올린을 사달라며 하루 종일 붙어 있었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스스로를 ‘진정한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과연 올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묵묵히 제 길을 찾아가려 합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물론 너무나 기뻤지만, 제게는 결승에 진출한 순간이 훨씬 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18명 가운데 6명만 올라가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제 이름이 가장 마지막에 불렸는데, 첫 번째 이름이 호명될 때부터 머릿속이 하얘져서 숫자를 제대로 세지도 못했죠. 다섯 번째 이름이 불렸을 때는 이미 호명이 끝났다고 생각해, 1초 남짓한 순간 아쉬움과 홀가분함, 슬픔,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이제 집에 갈 준비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제 이름이 불렸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아마 그 순간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습니다.

12월 11일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열리는 <The Grand Duo>에서 연주할 작품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와 비에니아프스키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환상곡’입니다. 두 작품은 오랜 시간 저와 함께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베토벤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 과정에서 느낀 깊이와 변화를 반영해 조금 더 성숙하고 정확한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유성호 피아니스트와는 처음 호흡을 맞추는데, 함께할 때 어떤 음악이 나올지 저도 기대가 큽니다. 더불어 다가오는 2월에는 노르웨이에서 베르겐 필하모닉,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와 함께 폴란드 작곡가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두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할 예정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쓰인 작품으로, 시마노프스키가 환상적이고 인상주의적인 색채를 탐구하던 시기의 작품인 만큼 아주 화려하고 매우 아름다운 곡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이기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꼭 연주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영감은 아주 다양한 곳에서 얻습니다. 여러 공연장에서 직접 음악 또는 기술에 관한 영감을 받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도, 또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결국 제가 하는 음악은 제가 살아가는 인생의 일부이니까요. 연습하다가 막힌 부분이 갑자기 시간이 지나 풀리는 경우도 있답니다. 또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특히 제가 현재 연주하는 작품을 쓴 작곡가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의 생가를 찾기도 하고, 작곡가가 여생을 보낸 곳, 중요한 작품을 작곡한 곳 등을 인상 깊게 살피며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최근 들어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다시 보게 됐어요. 색감과 디자인, 인물 구도가 모두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전쟁과 상실, 아픈 기억에 대해 아주 섬세한 슬픔이 흐릅니다. 이 복잡한 감정과 한없이 깊은 슬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하는 방식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또 좋아하는 예술가는 워낙 많고 가끔 바뀌기도 하지만,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음반은 1993년에 녹음된 과르네리 콰르텟과 버나드 그린하우스Guarneri Quartet&Bernard Greenhouse의 슈베르트 현악5중주 C장조입니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생을 마감하기 두 달 전에 작곡한 곡으로, 그의 짧은 삶을 온전히 담아낸 듯한 음악인데요. 특히 마음이 좋지 않거나 불평이 많아지는 날에 이 음악을 들으면, 거짓말처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저는 언제나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단순히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삶 가운데 위로와 영감을 줄 수 있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늘 제 꿈입니다.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음악의 의미를 더 넓혀가고 싶습니다.

[문화+서울] 독자들께 ‘unendlichkeit’라는 독일어 단어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무한함’과 ‘영원함’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보다 음악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합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연주가 궁금하다면
‘The Opus 2025’ 기획공연 앙상블 시리즈 <The Grand Duo>
12월 11일 오후 7시 30분 |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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