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쪽, 서울의 맨 앞에 서서
김영호 강동문화재단 대표이사
강동구는 서울의 맨 동쪽에 있다. 한강을 제일 먼저 맞으며 동쪽으로부터 서울을 이끈다. 서울의 변두리가 아니라 맨 앞에서 서울을 이끄는 자치구 강동. 특히 강동구는 아트센터로 잘 알려져 있다. 개관한 지 15년 된 아트센터는 깊고 넓은 무대와 편리한 시설로 웬만한 공연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이 공연장을 중심으로 강동의 문화를 이끌고 있는 김영호 대표이사를 만났다.
김영호 대표는 서울문화재단에서 21년을 지냈다. 그는 한국민속촌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며 전통적인 행사를 재현했고, 남이섬 나미나라공화국에 공채 1기로 입사해 현대적인 행사를 개최했다. 그리고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축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정을 담당했다. 전형적인 문화행정가 출신이자 현재는 대표로서 삶을 살고 있는 김영호 대표, 그는 강동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올해 1월 취임해 정신없이 보내고 있을 한 해의 생활에 관해 물어봤다.
2025년 1월 1일 대표로 취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정신없이 지낸 것 같습니다. 2024년 12월 31일까지 서울문화재단에 출근했고요. 이듬해 1월 2일부터 출근했으니, 하루도 못 쉬고 계속 일하고 있는 것 같네요. 행사가 거의 주말이다보니, 책임자로서 얼굴을 보이는 것이 도리이기도 하고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니까요.
서울문화재단 직원으로 있을 때와 강동문화재단의 대표로 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저는 이곳에 여행 왔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지를 다니다보면 잠자리는 별로인데, 음식이 맛있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잠자리 불편한 것 정도는 참게 되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광역문화재단과 다릅니다.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재밌습니다. 반대로 예산에 대한 압박 같은 것도 있죠. 그래서 저는 강동문화재단에 여행 온 마음으로 좋은 것은 취하려 하고, 부족한 것은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불편함이라 생각하려 합니다.
그래도 강동구에는 강동아트센터가 있잖습니까? 재단 대표로서 강동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해 주력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강동문화재단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강동아트센터입니다. 재단 전체 운영의 5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50퍼센트는 8개의 도서관입니다. 강일·둔촌·성내·암사·천호·해공도서관이 있지요. 여기에 덧붙여 올해 강동숲속도서관과 강동중앙도서관이 문을 열었는데, 이게 규모가 꽤 큽니다. 이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할지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책 읽는 공간에서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다양한 공연이나 예술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최근 미국에서 커뮤니티 도서관으로 가장 유명한 미시간주 앤 아버 도서관Ann Arbor District Library과 MOU를 맺었습니다. 이곳 도서관장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우리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겁니다. 아예 7~9월을 ‘서머 게임’으로 지정하고 도서관을 지역사회에 개방합니다. 이 기간엔 도서관에서 여러 공연이 펼쳐지고, 아주 소란스럽다고 합니다. 강동에서도 그렇게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을 열었고, 전시도 했습니다. ‘피아노 서울’처럼 피아노도 놓아 누구나 신청하면 연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열람실을 없앴고, 북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책을 찾아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책 중심에서 지역과 함께하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은데, 이에 호응해주신 덕분인지 개관 첫날 1만 명이 찾아올 정도로 가능성을 봤습니다.
도서관을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보고 계시는군요.
저는 도서관이 지역의 커뮤니티와 지식 생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작가나 지역 서점, 지역 출판사들이 도서관을 바탕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요. 지역 작가들이 도서관에 상주단체처럼 입주합니다. 작품 활동도 하고, 지역 사람들과 만나 대화도 합니다. 지역 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서점 운영이 잘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책을 우리가 가져와 팔아주고 또 사줍니다. 출판사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들려 합니다.
강동아트센터의 운영 전략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십니까.
지난 15년간 이곳을 거쳐간 대표님들이 강동아트센터를 잘 만들어주셨습니다. 변두리 극장으로 입지가 취약했지만, 이창기 대표님이 무용 극장을 중심으로 내세워 최고의 극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어려운 무용이 가능한 극장이라고 알린 것이지요. 그리고 심우섭 대표님은 매우 수준 높은 공연을 유치해 극장의 명성을 높였습니다. 사실 850석 규모의 극장으로는 뮤지컬 공연을 유치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보여준 덕분에 지금은 여러 제작사에서 먼저 찾아올 정도로, 강동아트센터가 가진 매력적인 무대와 시스템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는 앞서간 두 분이 매우 성공적으로 극장을 운영했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의 브랜드를 세웠고, 극장의 질을 높였으니까요. 저는 이 기반 위에 누구나 다양하고 수준높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극장으로 만들어놓고 싶습니다. 올해는 그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시·청각 장애인을 비롯해 모두가 함께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접근성 높은 연극 <해리엇>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수어 통역과 자막, 음성 해설을 더해 저마다의 감각과 특성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단순히 장애인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모두의 극장’을 지향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주민이 자부심을 느낄 수준 높은 공연도 하고, 강동예술페스티벌처럼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무대로 만들 예정입니다. 최고의 극장을 지향하되, 지역 예술인이 소외되지 않게 하는 게 제 운영 철학입니다.
사실 그 균형감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역의 예술가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 지역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십니까?
강동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습니다. 서울시 자치구 중 14곳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지부가 있고, 그중 비교적 빠르게 만들어진 게 강동구입니다. 회원만 2천 명 규모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분들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숨어 있는 예술가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청년 예술가를 대상으로 공모 사업도 했고, ‘예술인 문전성시’와 같이 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사실 예술가들이 거주지에서만 활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로도 가고, 또 신촌·홍대도 갑니다. 전 강동에 사는, 넓게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강동에서 어떻게 머무르고 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아트센터나 도서관을 중심으로 삼아 이들의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그러려면 강동의 예술가에 대해 많이 아셔야겠네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우선은 기초 데이터를 형성하고 싶습니다. 장르·인프라별로 실제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원하는 게 무엇이고, 어떤 것을 같이 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예술가들 역시 강동아트센터를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공간이 있고, 공연할 수 있고,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줘 접근할 수 있는 형태를 찾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생태학 관점에서도 볼 수 있겠지요. A라는 강동 지역 예술가의 하루 생활 반경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연극인이면 어떤 네트워크로 이뤄지는지, 음악인이면 또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 지도를 그리고 싶습니다. 일종의 예술인 그림지도랄까요? 프로그램은 그다음입니다. 데이터가 형성되면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그것에 맞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그림이 될 것 같네요. 저도 연구원에서 그런 문화 지도를 그리고 싶었는데요. 축제 기획자로서 대표님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강동구에 가장 큰 축제는 강동선사문화축제입니다. 그래서 전 그 대척점에 있는 축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선사문화축제는 큰 축제고, 가을에 이뤄지는, 지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축제라면, 그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을이 아니라면 봄이 좋겠고,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면 좋겠고, 아이템은 역사가 아닌 예술이면 좋겠지요. 그렇게 대척점에서 축제를 또 하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년에 생각하는 것은 고덕빌리지에 입주한 기업과 일대일로 매칭해 기업과 예술이 결합하고, 기업에서 절반, 우리 재단에서 절반 부담해 예술가와 기업이 함께하는 축제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더불어 강동아트센터 갤러리를 미술관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전시실 시설은 좋은데, 지금은 미술관이 아닙니다. 미술관이 되면 질 높은 브랜드 전시를 유치할 수 있고, 국공립 미술관의 작품을 대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작가들에게 새로운 동기가 됩니다. 지역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것과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게 다르니까요. 그래서 조만간 미술관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강동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좀 더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아 기대되고요.
그렇습니다. 강동은 서울에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교통도 편하고, 전통적인 것과 미래 지향적인 것이 함께 역동성을 이루고 있지요. 전통시장이 있는가 하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고, 하루가 다르게 스카이 뷰가 바뀝니다. 저는 이곳 강동구가 문화의 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강도 가장 처음 만나고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구인 만큼, 앞서서 서울을 이끄는 그런 지역이 됐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동의 문화 발전을 위해 서울시나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궁극적으로 이 질문은 자치구 문화재단에 대한 존재감 같은 것들이 전제돼야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자치구는 자치구만의 세계, 자기 색깔이 있습니다. 슬리퍼 신고 자신을 삶의 즐길 수 있는 도시가 이상적인 도시라면, 자치구가 가진 문화는 그 베이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5개 자치구 나름의 생동감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 얘기를 하다보니 결국 말할 수밖에 없는 게 ‘N개의 서울’ 같습니다. 처음에는 ‘예술마을 만들기’로 시작했지만, 차츰 담당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지역에 맞는 특화된,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엮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까? 모양과 색깔이 다른 작은 서울이 모여 다채로운 큰 서울을 볼 수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서울의 다양성이라는 것들이 존중받는 대표적인 사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한 덩어리로 자치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을 살려주는 그런 사업이 지속됐으면 합니다.
문화재단과 문화공간을 거친 전문 기획자답게 그는 체계적으로 강동의 문화 발전에 접근하고 있었다. 지역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생태를 찾아 어울리는 프로그램과 사업을 펼치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안정적으로 발전한 강동아트센터, 새롭게 문을 연 도서관을 비롯해 강동문화재단이 풀어가야 할 일은 많다. 그러나 그가 운영해온 수많은 문화 사업이 있기에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새로운 재단과 도서관 운영 모델을 찾아낼 것으로 본다.
글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