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예술을 조금 더 가까이
2025 서울생활예술페스티벌
10월 11일 토요일, 추석 연휴의 끝자락. 흐린 하늘 아래 노들섬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생활예술’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은퇴 이후의 여가나 취미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올해 4회째를 맞이하는 서울생활예술페스티벌은 예술이 누군가의 여가가 아닌,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대와 장애, 개인적 관심사를 넘어 ‘동행’의 의미를 실천하는 축제로 기획했다.
‘예술로 물들이는 가을, 생활로 스며드는 예술’을 주제로 한 이번 축제는 누구나 예술가가 돼 자기 감각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자리다. 단순히 관람하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이 직접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고,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일상에서 사람을 이어주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올해 축제는 처음으로 봄·가을 두 차례 야외에서 열렸다. 생활예술을 일상 가까이로 끌어오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공연 부분은 실내로 옮겨 진행됐지만, 공간이 달라진 만큼 시민예술가들의 집중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현장은 더욱 따뜻해졌다
시민이 예술가가 되어 만드는 무대의 힘
올해 축제에는 35개 동호회, 500여 명의 시민예술가가 참여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20팀이 음악·무용·전통·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이며 하루 종일 무대를 채웠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진심이 전해지는 무대, 서툴지만 설렘이 살아 있는 목소리와 연주, 몸짓이 노들섬을 물들였다. 경연 무대에는 12팀이 참여해, 전문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거쳐 5개 부문 수상자가 선정됐다. 올해는 예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생활예술의 가치와 시민 화합의 의미를 확대하기 위해 ‘예술동행상’(서울시장상)과 ‘세대동행상’(서울시의회의장상)을 신설했다. 예술동행상은 청년의 삶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무대에 담은 청년 댄스팀 ‘연숨’, 세대동행상은 삼대가 함께 무대에 올라 가족의 유대를 보여준 밴드 ‘상상초월’이 받았다. 이어 노을빛 무대상에는 청년 댄스팀 연숨, 피어나는 예술상은 가야금 동호회 ‘가야랑이랑’, 가을바람 선율상은 초·중·고생 댄스팀 ‘엑스펄트’가 선정됐다.
특별공연으로 서울시 건강총괄관이자 20년 동안 호른을 연주해온 정희원,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로 이어졌다. ‘저속 노화’를 주제로, 호른과 색소폰의 선율이 어우러지며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잔잔히 전해졌다. 정희원은 20년간 호른을 연주하며 느낀 예술을 통해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이야기했다. 나이를 먹는 건 늙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는 과정임을 연주와 대화를 통해 전달했다. 예술이 단지 표현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행위임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노들스퀘어 입구에서는 정은혜 작가의 《그림으로 자라는 마음, 함께 그려가는 삶》 특별전시가 시민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리버마켓의 작은 부스에서 시작해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온 작가의 여정을 노들섬으로 옮겨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 작업과 시민의 참여로 완성됐다. 시민은 단순 관람객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을 완성하는 공동 창작자로 함께한 것.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얼굴이 더해지는 전시는 서로 다른 얼굴이지만 모두가 ‘함께 웃는 사람들’로 연결된다.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
노들섬 곳곳에서는 시민예술가들이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휠체어 이용자와 시민이 함께 제작하는 친환경 휠체어 가드 체험 ‘씨오씨랩’, 발달장애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완성하는 드로잉 체험 ‘레아트’, 문호리 리버마켓이 참여한 작가농부마켓까지 생활예술의 가치가 체험과 마켓으로 확장됐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손으로 직접 만든 사람들’이 주인공인 작가주의 마켓이다. 생산자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물건을 통해 소비자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 생활예술의 정신이 시장의 형태로 진화한 모습이다.
여기에 이어 노들갤러리 2관에서 진행된 생활예술편집숍 ONEW는 ‘축제 드로잉’, ‘러닝 에세이’, ‘오디오북 낭독’ 등 예술을 체험이 아닌 생활 방식으로 제안했다. 중장년·시니어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 역시 예술을 여가가 아닌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행위’로 제시하며 예술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기록하고, 걷고 뛰며 스스로의 속도를 찾는 시민의 모습이 이어진다. 예술이 일상의 일부로 스며든 순간, 이번 축제가 추구한 ‘생활로 스며드는 예술’의 의미가 완성된다.
해가 저물 무렵, 다시 빗방울이 굵어졌다. 공연장을 지킨 시민과 무대를 마친 시민예술가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노들스퀘어에서도 하나둘 자리를 정비한다. 노들섬을 빠져나가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여운이 남아 있다.
올해 축제는 맑은 날씨 속 진행된 행사는 아니었지만, 그 가운데 이어진 공연과 전시, 그리고 체험의 순간들은 ‘동행’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 누구나 예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번 축제가 각자의 일상에 예술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놓는 작은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
글 장연정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