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상황’을 마주한 당신의 ‘이야기’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장애예술 기획전
유난히 더웠던 7월, 여름의 시작과 함께 전시 《상황과 이야기》가 개막했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서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장애예술 기획전으로, 7월 3일부터 20일까지 노들섬 노들갤러리 2관에서 열려 시민과 만났다. 전시가 막을 내린 지금,다시금 그 이야기를 꺼내본다.
#1 전시 《상황과 이야기》는 미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Vivian Gornick의 에세이 『상황과 이야기』2023
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자전적인 글쓰기에서 좋은 글쓰기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좋은 예술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전시가 시작됐다.
전시에 참여한 10명 작가는 각자의 삶에서 마주한 ‘상황’에서 겪은 사실들, 감정·생각·태도를 그림이라는 ‘이야기’로 건넸다. 전시실을 채우는 작품에는 작가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과 태도가 담겼다. 4개의
소주제와 작가별 작품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작가들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담아내는 자신을 소개하거나, 현실과 상상 그 어딘가를 끊임없이 그리는 본인을 소개했다.
➊ 나와 함께 한
강원진 작가는 일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림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문양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친 풍경 속에 있던 반복된 패턴이다. 평소에 인식하기 어려운 대상을 끄집어내 공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유효석 작가는 다양한 동물의 모습을 그림에 담는다. 원색적인 색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그는 동물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투영하여 자유롭게 표현한다. 매번 새로운 형태와 표현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창작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➋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김동호 작가는 자신의 관찰과 기억에서 그림의 소재를 끄집어낸다. 평범하고 사소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담아낸 그림을 통해 우리 모두 각자에게 소중한 기억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조태성 작가는 자연 속 동물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관람객에게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각각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 맥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나는 신화적 이야기가 조태성 작가의 작업 속에 스며들어 있다. 김승현 작가는 유년기 가족과 함께 방문한 수족관에서 시작해 다채로운 바다 생물의 세계를 현실과 상상을 섞어 환상적 세계로 구현한다. 흰동가리·블루탱·해마와 같은 바다 생물이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서 불쑥 등장한다. 전치된 풍경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➌ 아주 멋진 곳
이은수 작가의 무지개는 아름다움과 평안함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작가에게 무지갯빛은 안정과 평안의 상징이다. 일상에서부터 환상에 이르기까지 무지개색으로 채워진 그림 속 공간은 관람객에게 공유하고 싶은 작가의 세계다. 박기현 작가가 제안하는 아주 멋진 곳은 가상의 장소가 아닌 현실 세계에 있다. 여행을 주제로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간 여행에서의 추억을 불러오기도 하고, 미디어에 보이는 이국의 풍경을 담기도 한다. 그에게 그림은 추억을 담은 곳이면서, 가고 싶은 희망의 장소다.
➍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심규철 작가는 현실과 게임, 애니메이션 속 세상을 종횡무진 누비며 자신의 세계관 속에 모두가 어울리며 살아가는 또 다른 가상의 세계를 그림을 통해 전시실로 불러들인다. 실재하는 세계처럼 크고 작은 사건과 캐릭터가
만나는 지점은 마치 우리의 현실 세계를 투영하는 거울처럼 보인다. 민소윤 작가는 엉뚱한 상상을 즐기고 언어유희를 그림의 소재로 사용한다. 그림과 글은 상호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작가에게 숨겨진 재기 발랄함을 증폭하는
도구가 된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안부를 전하고 존재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김선태 작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주목한다. 역사 속 인물을 그리는 것을
즐기는데, 그중에서도 독립 유공자의 얼굴은 그가 천착하는 주제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전달된 작가 10명의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됐다. 하나의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관람객, 공간 전체를 눈과 카메라에 담는 관람객, 작품에 대한 말을 건네는 관람객 등 ‘7월, 여름, 노들섬,
한강, 전시’라는 상황은 관람객 각자의 이야기와 겹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냈다.
#2 예술의 영역에서 ‘좋은 예술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면, 사업 기획의 영역에서는 ‘좋은 장애예술 전시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장애예술을 전시라는 매개로 전달하는 과정, 접근성 요소 등 전시실을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스스럼없는 환경을 전달하고자 했다. 작품에 이끌려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공간 디자인과 작품의 배치를 고민했고, 누구의 시선에서도 온전히 작품을 담을 수 있도록 작품의 위치를 선정했다. 전시에 대한 수어와
음성 안내, 자막까지 조금이라도 전시를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주어진 상황에서 여러 경우의 수를 세워나갔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겠지만, 더 나은 다음을 상상하면서, 전시가 막을 내렸다. 3개월의 준비 기간과 2주의 전시 기간. 그사이 마주한 모든 상황이 매일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쌓였다. 한 편의
전시로 모든 태도와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는 건 쉽지 않지만, 전시실에 발 디딘 모두에게 어떤 형태로든 전달됐기를 바란다. 그렇게 한여름의 전시 《상황과 이야기》가 누군가의 기억 속 이야기로 오래도록 남기를.
글 김현진 서울문화재단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 사진 김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