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를 연주하는 필리그라티에 앙상블 리더 조원빈입니다. 소리와 움직임이 만나는 순간에 관심이 많고, 컨템퍼러리 음악 안에서 타악기가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여러 악기를 접하며 흥미를 키웠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의 권유로 윈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 처음 타악기를 만났고, 뜻밖의 기회로 독주 무대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혼자 나만의 소리로 공간을 채우던 그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아마 그때부터 연주자의 꿈을 품게 된 것 같습니다. 이후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계기로 음악에 깊이 발을 들였고, 대학에서는
타악기 연주자로서 방향을 구체화했습니다. 대부분 오케스트라 중심의 활동이 많은 환경 속에서, 저와 비슷한 고민과 관심사를 가진 동료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필리그라티에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예술가’라는 말은 여전히 제게는 꿈에 가까운 말입니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자각한다기보다는, 그 단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질문하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더 짙어진 건, 앙상블
연주를 시작하고 기획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단순히 연주를 잘 해내는 것을 넘어, 왜 연주하는지, 어떤 감각을 나누고 싶은지를 함께 고민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태도일지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에게 예술은 늘 ‘되기’보다는 ‘되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오는 8월 26일, 일신홀에서 필리그라티에 앙상블의 첫 연주 <Initium-Genre of Percussion>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번 무대는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의 음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타악기를 통해 밀접한 감정과 에너지를 전달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단순히 곡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주자 각자의 존재와 움직임이 하나의 서사처럼 이어지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존
케이지의 ‘Living Room Music’이 있습니다. 이 곡에서 작곡가는 전통적인 악기 대신 책·잡지와 같은 일상의 사물을 연주 도구로 사용하며, 음악이라는 개념을 소리뿐 아니라 공간·신체·감각의 차원으로
확장합니다. 저희는 이 작품을 통해 연주자의 움직임과 공간의 활용, 그리고 침묵의 여운까지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공연에서는 관객과 연주자 사이의 거리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명이나 오브제 같은 비악기적 요소를 공연의 일부로 끌어들이고 관객이 연주자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도록 구성해,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닌 ‘함께 반응하게 되는’ 경험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음악을 오감 중
하나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고 상황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살아 있는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연주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같이 연주하는 동료들에게서 자주 영감을 받습니다. 호흡이나 소리를 다루는 방식이 전부 다르기에 그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흐름이 생기고, 그걸 따라가다보면 생각하지 못한 좋은 방향으로 연주가 흘러가기도 합니다. 또
공간이나 조명, 무대에 놓인 사물 같은 것들도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것들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다양하게 영향을 줄 때가 많습니다.
최근 무용 공연을 보았습니다. 악기와는 전혀 다른 언어로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의도와 흐름을 스스로 해석해보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마치 시간과 리듬을 조형하는
행위처럼 느껴졌고, 공연을 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언어를 어떻게 타악기로 풀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필리그라티에를 컨템퍼러리한 감각의 타악기 앙상블로 확장시키고, 하나의 예술적 언어로 자리잡게 하고 싶습니다. 타악기는 그 자체로 시각적이고 신체적인 악기이기에, 음악을 넘어 무용·미술·공간·조명 등 다양한
예술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협업을 넘어서, 타악기를 중심으로 예술 간의 경계를 허무는 무대와 작업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