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2024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 살펴보기
‘포용’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도시 정책 어젠다가 됐다. 세계은행·유엔해비타트·유로시티와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런던·뉴욕 등 글로벌 도시에 이르기까지 ‘포용도시’는 정책 목표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문화 정책
역시 사회적 포용을 중요하게 다뤄왔다. 사회적 배제가 경제적 소득의 문제만 아니라 다차원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 정책을 시행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서울문화재단은 격년으로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2024년 조사에는 ‘약자와 동행’을 목표로 추진하는 서울특별시의 포용도시 정책에 부합하는 조사 주제를 개발하고자 많은 고민과 토론을 거쳐
질문지를 만들었다. 포용도시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이슈로 구분해 주요 결과를 소개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기울기 기울이기》 전시 오프닝
만 50세 이상 참가자를 위한 서울시민예술학교 강북 봄 시즌 창작워크숍 <기억의 조각 모음>
➊ 장애인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배제 위험이 큰 집단이고, 문화생활에도 제약이 클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통계 자료가 제한된 상황에서, 2024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는
지체·시각·청각장애인에 대해 지역별 비례배분 표집으로 755명을 조사했다. 일부 장애 유형에 한정된 점은 한계지만, 장애인의 문화생활에 대해 대표성을 가지는 조사 결과를 산출한 점은 의의가 있다.
조사 결과, 장애인의 여가 활동에서 문화예술 관람이나 참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 내외로 매우 낮았다. 그 대신 동영상 콘텐츠 시청, 휴식, 종교 활동 등 수동적 활동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여가 활동’에서는 문화예술 관람이나 참여에 대한 희망 비율이 뚜렷하게 증가한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관람 희망 의향은 8.3%로 실제 관람 비율에 비해 약 7배 높다. 시각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 희망도 4%에
이른다. 욕구는 존재하되 기회가 없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문화예술 관람률을 보더라도 장애인은 미 관람 비율이 64.5%로 일반 시민(23.9%)보다 훨씬 높다. 반면, 월 1회 이상 관람 비율은 0.7%로 일반
시민(13.3%)보다 크게 낮다. 장르별 문화예술 관람 의향도는 50% 내외의 수준을 보여서 희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큰 상황임을 알 수 있다.
➋ 고령인구
사회적 배제가 작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으로는 개인 차원에서의 노화ageing와 사회적 차원에서의 고령화population ageing가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고령인구를 준고령자(50~54세), 고령자(55~64세), 전기노인(65~74세), 후기노인(75세 이상) 등 네 가지 세대로 나눠 문화생활의 참여 수준을 분석했다. 결과를 보면, 노화의 전 과정에 걸쳐 문화생활의 활동성이 줄어드는데, 특히 노인층에 접어들 때 급격하게 수준이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노화가 문화생활의 활동성을 저하시키는 반면, 고령인구 집단의 문화생활에 대한 인식이나 기대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나이 들수록 문화예술이 중요”, “문화예술교육 통한 노후 준비 중요”, “노후에 지속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한 동의 비율이 60%를 넘는다.
➌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근래 중요한 도시 문제로 대두됐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사회로부터 심리·실제적 배제를 의미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삼성서울병원이 개발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척도’를
이용해 고위험군을 파악했다. 결과는 시민의 약 40%가 외로움 고위험군으로, 10%가 사회적 고립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적지 않은 규모라는 점을 실증했다.
또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문화예술 활동과의 관계에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사회적 고립의 경우 문화생활 전반의 참여율이 낮아 문화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주며, 이들에게는 더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문화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외로움의 경우, 고위험군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 수준이 저위험군에 비해 오히려 더 높았다. 문화생활이 사회적 관계와 정서적 건강에 깊이 연관돼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문화가 정서적 연결성과 사회적 연대감을
회복하는 수단이 됨으로써 사회적 배제를 완화하거나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➍ 공간적 불균형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공간적 불균형은 사회적 포용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서울 전체를 9개 생활권역으로 구분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정도를 살펴봤다. 여기에서 알아보고자 한 것은 거주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비율이 권역별로 차이가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조사 결과를 요약해보면, 생활권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비율이 거주 권역별로 차이를 보였는데, 동남 1권이 51.5%로 가장 높았고 서남 3권이 28.3%로 가장 낮았다. 생활권에서 문화 활동을 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대체로 생활권 문화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권 문화생활 만족도가 높을수록 대체로 서울시 문화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즉, 시민이 서울의 문화 환경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는 거주지
부근의 문화생활 가능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생활권 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문화 기반의 확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서울이 진정한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간적 격차 해소가
가장 기본적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➎ 소득
2024년의 문화예술 활동 수준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보면 회복세가 뚜렷하다. 문화 관람 경험률이나 비용·횟수 등에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었다. 변화는 문화예술 관람 활동의 양상에서도 나타난다. 영화 관람에 비해 공연·전시 관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여기에는 OTT 이용 확대에 따른 영화 관람의 축소도 있지만, 공연·전시 관람 활동이 더 활발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영화 관람이 문화예술 관람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고, 여전히 영화 관람이 문화예술 관람 활동의 분야 중 비율이 가장 높다. 하지만 이제 영화에 편중된 문화생활의 다각화가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문화예술 관람 활동의 비용 상승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도 작용했지만, 자동화를 통한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이 인적 투입의 비중이 높아 이를 따라갈 수 없는 공연 같은 분야에서는 비용 질병cost disease을 초래한다는 고전적인 문화경제학 논의가 소환되고 있다. 이용 가격이 비교적 균일한 영화 관람에서, 비용 수준이 영화보다 높고 가격 차이도 큰 공연·전시 관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결국, 지금도 나타나는 소득 수준에 따른 문화예술 활동 참여의 차이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과제는
조사 결과를 보면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는 문화의 가능성도, 사회적 균열을 심화시키는 데 문화가 더 작용할 가능성도 보인다. 희망적인 점은 문화생활이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경우 실제
참여율은 낮지만 의향은 높아, 이들이 ‘참여 가능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잠재적 참여자이자 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고령인구 역시 나이가 들수록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높은 수준의 참여 의향을
보인다. 또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의 고위험군도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참여 의향(외로움 고위험군 60.1%, 사회적 고립 위험군 41.1%)이 높다.
포용도시를 위한 문화의 가능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교한 사업 설계에 바탕을 둔 투자가 필요하다. 세분된 집단별 특수성을 인식하고 전문가 집단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장애인의 경우 배리어프리
문화예술 시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크지만, 장애 유형에 따라 희망하는 개선 방향이 다르다. 또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의 고위험군 분석에서도 이들 집단이 문화예술 참여와 가지는 관계의 복합성에서 볼 때 단선적인
접근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정교한 사업 설계를 위해서는 정신의학·임상심리·지역복지 등 다른 영역의 전문가와의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고령화의 경우에도 고령층에 따른 문화예술 참여 동기의 차이를 고려한
프로그램 설계 필요성이 제기된다.
생활권에 따른 불균형에 대해서는 과연 어떠한 공급을 늘려야 할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하다. 큰 규모의 고급 문화시설을 공급해야 할지 아니면 민간이 주도하는 소형 갤러리·북카페 등 문화공간 공급을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한 수요 조사와 분석이 선행해야 한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용산의 모습.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 내 권역별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를 두어 시민이 일상에서 예술을 쉽고 친근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끝으로 소득 수준에 따른 차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야외 문화예술 관람 활동이나 관람료 할인 프로그램의 공급이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시장의 성장도 함께 고려하는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패스를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 관심 집단에 대한 정책적 수혜도 고려해 볼만하다. 일반 시민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 활동을 하면서도 소득이 미치는 영향은 일반 시민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공공 문화예술 기관에서 확산하고 있는 시즌제 도입을 확대함으로써 실제적인 부담 경감을 실현할 수도 있다. 포용도시와 문화예술시장의 성장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 개별 기관의 수준을 넘어선 시 차원에서 문화 관심 집단 등에게 보너스 마케팅·프리미엄 마케팅·피델리티 마케팅을 시험해보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글 서우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