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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3월호

관객이 공연의 일부가 된다면?

감상을 넘어선 공연 경험의 확장

좀처럼 공연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한 귀퉁이 작은 건물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개인 짐을 맡기고 호텔의 바bar로 꾸며진 공간에서 잠시 대기한 뒤 곧 각자의 동선대로 배우들을 쫓아 서사를 쌓아간다. 이것이 공연일까? 명확하게 전달되는 대사는 없지만, 공간 그 자체가 서사가 돼 잠시 다른 세상에 떨어져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관객마다 보는 장면이 상이하고 시점도, 해석도 다르다. 집단 관람이기보다는 개별적인 체험에 가깝지만, 그 어느 공연보다 긴밀한 인터랙션이 경험의 밀도를 더한다. 필자가 오래전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를 처음 접한 느낌이다.

집단 관람에서 개별 체험으로,
확장되는 공연 경험

2000년대 대표적인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re <슬립 노 모어>가 2025년 드디어 한국에 입성한다. 프로시니엄 무대와 달리 객석을 구분하지 않고 매키트릭 호텔의 방으로 설계된 공간 전체가 무대이자 객석이 되고, 각자의 동선대로 옮겨 다니는 관객의 참여가 곧 공연의 일부가 되는 독특한 공연이다. <슬립 노 모어>는 2003년 영국에서 초연한 뒤 뉴욕과 상하이 등에서 공연되며 이미 국내 관객에게도 많이 알려진 이머시브 시어터, 즉 몰입형 연극이다. 한국에서는 2024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 중구의 대한극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막할 예정으로 벌써 시어터고어Theatregoer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퍼지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에 소개되는 이머시브 작품도 한층 다양해졌다. 1920년대 개츠비 맨션으로 관객을 초대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22년 LG 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개관작으로 선보인 영국 단체 다크필드DARKFIELD의 3부작 공연 <고스트쉽>, <플라이트>, <코마>, 이머시브 다이닝 형식으로 공연된 <그랜드 엑스페디션The Grand Expedition> 등에 이어 지난해에는 미국 출신 배우이자 연출가인 제프 소벨Geoff Sobelle의 이머시브 공연 <푸드Food>가 국내 관객을 찾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소벨이 직접 제공하는 음식을 나누며 함께 소통하는 독특한 형식의 이 작품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서 관객이 함께 완성하는 퍼포먼스의 의미와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머시브 형식을 적극 차용한 창작극도 부쩍 늘었다. 2023년 초연한 뮤지컬 <룰렛>은 관객의 배팅과 선택에 따라 공연의 결말이 달라지는 작품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고, 지난해 선보인 뮤지컬 <흔해빠진 일>은 회전 좌석에 앉은 관객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는 개방형 무대를 360도로 즐길 수 있도록 연출해 경험을 확장했다. 이머시브 공연의 범주는 넓고 층위도 다양하다. 단순히 이머시브 요소를 장치적으로 일부 결합한 공연이 있는가 하면 공간 구성부터 작품의 구조 자체를 본격적인 이머시브 시어터로 구축해 몰입을 극대화한 작품도 있다. 다양한 공연의 느슨한 공통점은 완벽하게 짜인 각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위한 여백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작품에 따라 관객의 참여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구분된 객석처럼 수동적 관객으로만 머물게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머시브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완전하지 않은,
여백을 채워나가는 즐거움

영화나 OTT 등 넘쳐나는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에 비해 공연은 상대적으로 관객에게 불친절하다. 티켓 가격도 만만치 않은 데다 예매나 관람의 과정이 그리 수월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라이브 공연의 특성상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도 늘 내재해 있다. 그런데도 완벽하게 준비된 공연이 아닌, 내용이나 퀄리티가 동일하게 보장되지 않는 이머시브 공연이 관객을 이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지만 바로 그 가변성과 이를 채우는 관객의 역할이 오히려 몰입과 상호작용을 배가한다. 근사하게 차려져 서빙되는 테이블이 아닌, 완벽한 맛은 아닐지언정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나누는 과정 자체가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되는 셈이다. 관객의 참여는 다른 관객에게 공연의 일부가 되고, 개인의 체험에 따라 작품의 해석 또한 다층적으로 열려 있다. 이머시브 공연의 매력은 바로 완전하지 않음, 관객이 채워나가는 여백에 있다.

일상 속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문턱이 점차 낮아지는, 디지털 관여도가 높은 젊은 층에게 능동적인 관객으로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한층 가속화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공연 산업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라이브’로 완성되기에 가능한, 함께 채워나가는 열린 과정이야말로 적극적 참여를 원하는 관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공연만의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눈과 귀로 전달되는 수동적 관람이 아닌 오감으로 부딪히고 직접 완성하는 개별적 체험에 가치를 두는 이머시브 공연의 트렌드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 지혜원 공연평론가 | 일러스트 slow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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