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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허겸

시각예술/회화
b.1999
@gyeomheo4
2024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14기 입주작가

저는 평면 회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도시 원경을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요. 초등학교 시절 예술의전당 미술영재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았는데,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결과물을 전시하면서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화실 선생님의 권유로 첫 개인전을 열게 되었고, 지역에서 장애와 비장애 작가들이 함께하는 청년 예술가 모임에 참여하면서 단체전을 하거나 책을 출판하는 등 자연스럽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가서야 ‘예술’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제가 많고 크리틱도 많은 편이라 힘들었고 가끔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와 제 장애와 예술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학교에서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정을 표현한 작업을 많이 하면서 제 장애가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는 장애인으로서 저의 경험을 어떻게 사회적 의미와 연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또한 소수라는 점에서 ‘타자’인 제가 직접 ‘타자’의 이야기를 다룰 때 거리를 두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여전히 그런 점에서 헤매고 있지만 그런 고민으로 인해 제가 성장하고, 답을 찾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스스로 예술가로 여겨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 No.9(Before Sunset)>, 2024, 캔버스에 유채, 80.3×116.8cm

요즘은 도시 원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평소에 산책과 높은 데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도시 안과는 다르게 조화롭고 평화롭게 보이는 것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위안을 주는 느낌입니다. 또한 제가 의식하지 않고 바라보면 다양한 형태의 색과 면이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이루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나의 구조물로서 건물을 표현했는데, 건물을 블록처럼 쌓고 서로 이어 붙이듯이 붓으로 경계선을 다시 칠해 희미하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도시 연작은 기본적으로 형태에만 집중해 흐릿한 원경을 표현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장소나 날씨, 분위기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연작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서울 No.9(Before Sunset)>입니다. 해지기 직전 저녁 햇살을 받은 건물이 반사하는 다양한 색상을 표현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생각을 잊을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형태보다는 색에 더 집중해 그렸고, 그래서 다른 작품들보다 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춤추는 사람>, 2021, 캔버스에 아크릴, 72.7×60.6cm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들이 소재가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높은 데 올라가서 본 풍경을 보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나다니면서 마주하는 풍경 중에는 눈길을 끄는 것들도 있고, 일상적인 광경인데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낯선 사람들이 서로 몸을 대고 앉아 있는 지하철 안이라든지요. 그런 순간 그림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특별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제 작품 <춤추는 사람>도 실제로 보았던 일을 그린 작품입니다.

<서울 No.3(Fog)>, 2023, 캔버스에 아크릴, 33.4×24.2cm

올해 초에 모두예술극장에서 신기술기반 장애예술 창작실험실 <Future Wide Open> 쇼케이스를 봤는데, 흥미로웠습니다. 기술이 장애예술에 어떤 가능성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얼마나 확장 가능성이 있느냐를 떠나 기술 융합을 통해 새로운 작업이 탄생하는 과정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장애의 경우 기술을 사용하는 작업에서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발달장애 예술가의 경우에는 기술과 만나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어떻게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앞으로 계속 고민해볼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발달장애 예술가와의 협업 과정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당분간 도시를 계속 그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거리를 두고 도시의 원경을 그려왔지만, 앞으로는 도시 안에서 그 모습을 그려보려고 합니다. 기법이나 재료 면에서는 지금까지 그려온 도시의 원경과 비슷하게 진행하겠지만 도시 안에서 제가 느끼는, 그리고 어쩌면 다른 이들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이야기를 풍경을 통해 표현해보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고 표현하는 것이 저만의 것이 되지 않도록 그래서 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고민하며 작업하려고 합니다.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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