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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이주원

전통/탈춤
b.1980
@greatest_masque
2024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강북 개관 페스티벌
2022 쿼드 개관 페스티벌

2023 서울거리예술축제 폐막작으로 선보인 천하제일탈공작소 <니나내나 니나노>

천하제일탈공작소에서 현재 탈춤의 모습을 고민하는 이주원입니다. 최근 <탈 너머의 천탈>에서 탈춤꾼을 소개한 글이 저를 잘 담아낸 것 같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목적 없는 수동적인 삶을 지향하지만, 번번이 꽂히는 일들이 있어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뜻대로 살지 못할 거 눈앞의 일이나 잘 처리하자는 마음으로, ‘빅 피처’를 그리지 않고 닥치는 일만 처리하고 지내는 중입니다. 탈춤으로 공연계에 발을 들였으나, 닥치는 대로 살다 보니 이것저것 별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주원, 주얼리, 이매, MC이노마야, 이작가야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많은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에서 연희극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함께 학교에 다니던 탈춤꾼 3명이 모여 천하제일탈공작소를 만들었어요. 탈춤과 졸업 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었거든요. 과거의 탈춤은 시대에 따라 이야기도 변화했는데, 어느새 탈춤이 변하지 않게 되면서 대중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에 대한 자각, 탈춤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탈춤을 만들자’라는 합의가 생기면서 천하제일탈공작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전통 탈춤 공연과 창작 공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제가 예술가라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활동증명을 신청·갱신할 때, 예술인 산재보험료가 통장에서 인출되고, 예술인패스로 티켓 할인을 받을 때예요. 전통 탈춤의 전승자로 시작해 학교를 졸업하고, 예술가라고 자각하기 전에 공연자로 직업 전선에 먼저 뛰어든 느낌이 있어요.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창작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죠. 예술인이기보다 직업인이라 스스로 생각했어요. 2022년 <풍편에 넌즞 들은 아가멤논> 각색을 맡았을 때 ‘(내가) 이제 창작자인가’ 하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의 창작은 몸에 익숙한 전통의 것을 풀어내는 과정이었는데, 작가로서의 각색 작업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리스신화와 탈춤의 비슷한 부분을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작품 크레딧에 ‘각색’으로 이름이 오르는 건 처음이기도 했고 글을 쓰는 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창작이었죠. ‘그간 나름 잔뼈가 굵었구나’ 하며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해낼 때 창작자임을 자각하곤 합니다.

천하제일탈공작소에서 진행한 모든 작품이 제 대표작입니다. 어느 하나 애착이 가지 않는 작품이 없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호불호가 강한 작품도 있고, 관객의 호응에 놀라기도 하고, 하던 거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애정이 가지 않는 작품이 없어요.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돈만 많으면 천하제일탈공작소 축제를 벌이고 싶을 만큼 저에게는 모두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꼽자면 전통 레퍼토리 중에는 <가장무도>가 전체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던 탈춤 속 개인의 춤과 재담의 기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창작 중에서는 <오셀로와 이아고>가 우리 단체의 두각을 드러낸 작품이라 의미가 있습니다. <풍편에 넌즞 들은 아가멤논>은 전통 탈춤이라는 그릇에 그리스신화를 담아낸, ‘뚝배기에 담긴 그릭요거트’ 같은 작품으로, 그리스 고대 원형극장에서 꼭 공연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최근작으로 <추는 사람>이 있는데, 과거의 탈춤이 시대의 거대한 부조리를 드러낸다면 이 작품에서는 탈춤꾼 개개인이 느끼는 사회에 대해 자신의 말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본 사람 중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작품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올해 천하제일탈공작소는 다 같이 프랑스 알레스Ales에서 열린 거리예술축제에 갔어요. 여러 공연을 보면서 많이 보고 배웠는데 그중에서 비 플랫Be Flat의 <Follow me>라는 공연이 인상적이었어요, 출연자의 기술도 만점이었고, 관객을 대하는 태도(선을 확실히 그어주고, 풀어주고, 놓아주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모든 면에서 탁월한 공연이었어요. 중간중간 아슬아슬한 애크러배틱과 파쿠르에 연주까지 곁들여가며, 시선을 놓치지 않고 관객을 리드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막연히 천하제일탈공작소에서 만들고 싶던 거리공연의 모습을, 그들이 애크러배틱과 파쿠르로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은 기예는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으로 관객을 이끌고 참여시키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탈춤을 즐기면서 탈과 춤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강강술래도 하고, 닭싸움도 하고, 같이 노래하고, 함께 걷고 뛰고, 마지막에 신나서 저절로 춤이 춰지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홀려서 따라오는 공연이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3명으로 시작해 현재 8명이 창작자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탈 너머의 천탈>이라는 공연을 통해 탈춤꾼 각자가 작품을 구성해 발표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가로, 연출로, 배우로, 춤꾼으로 거듭나며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과정에서 저도 반짝였고요. 얼마 전까지 우리의 목표는 탈춤꾼이 전통예술인에서 창작자로 거듭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의 목표를 성취해 이제는 또 다른 목표를 그릴 때입니다. 아마 창작자가 된 탈춤꾼이 그리는 탈춤이지 않을까요? 무엇이든,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반짝일 계획입니다.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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