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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박정은

음악/현대음악
b.1986
youtube.com/@jungeunPark0816
2024 유망예술지원 선정

저는 화려하고 강렬한 표면의 음향과 깊고 어스름한 내면의 소리, 동시대 음악을 쓰는 현대음악 작곡가 박정은입니다. 주로 동서양의 어쿠스틱 악기로 작곡을 하고 전자음악과의 결합, 다른 예술 분야와의 협업도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에서 작곡 공부를 마치고 약 8년 전 귀국해 현재 음악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개인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유학 시절 유럽의 다양한 현대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여러 앙상블,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크고작은 무대에서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았습니다. 또한 귀국 후에도 국내외에서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창작하고 있으며,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며 작곡가로서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릴 적 교회에서 음악이 재밌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찬송가를 변형하고, 뒤집어 연주하고, 편곡하고, 즉흥으로 연주하고 신나게 놀며 음악을 접했습니다. 피아노·기타·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전공까지 연결됐고, 서양음악의 역사와 음악의 형식, 화성학, 대위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됐습니다. 그렇게 작곡을 진지하게 시작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오르간 솔로 작품 ‘필연Pil-Yeon2015, 앙상블 작품 ‘소란So-ran2017, 오케스트라 작품 ‘Re-MU 다시, 날다’2021 등이 있습니다. 한때 ‘음향(소리)’보다는 ‘구조’에 천착하던 때가 있었고, 여러 가지 규칙을 조합하며 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마치 건축가처럼 말이죠. 심지어는 하나의 음악을 만들기에 앞서 규칙을 설계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가장 길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사전 작업으로 음향의 얼개를 촘촘하게 엮어나갈 때도, 결국 이 모든 과정은 귀에 들리는 ‘음향 덩어리’를 구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많은 규칙으로 조합된 소리는 결과적으로는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소리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리 그 자체와 마주하는 훈련을 하게 됐습니다. 하나의 악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내보고, 악기를 바꾸거나 변형하기도 하며, 기존에 본 적 없는 앙상블을 만들면서 내가 원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섬세하게 작동하는 소리의 감식안을 발달시키게 되었으며, 악기의 음향에서부터 악기에서 기대한 적 없던 음향, 악기가 아닌 것의 음향 전부를 음악의 범주 안에서 사고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만든 곡이 제 대표작 중 하나인 ‘필연’, ‘얼룩진 잔향들’2019 등입니다. 귀국 후 저는 여전히 소리를 고민하되, 소리 안으로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세상과 이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란’에 등장하는 뜻 모를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 ‘정치적인 탄압’으로 해석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곡은 직접적인 정치 메시지를 담은 ‘소란’에서부터, 공동체라는 개념을 고민한 ‘타자의 소리’2020까지 다양합니다. 귀국 직후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한 전체적인 키워드는 동시대 속의 ‘타자’와 ‘관계성’입니다.

2024 유망예술페스타 중간공유회

오는 10월 18일, 2024 유망예술페스타에서 실험무용음악극 <질곡: 차꼬와 수갑>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다른 예술과의 협업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설치 작품을 제작하고 배우와 함께 브리지를 만들고, 무용수와 함께 안무를 이야기합니다. 학제·장르 간 경계가 없는, 동시대에 부합하는 다원예술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도 있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일단 해 보는 중입니다. 시대와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를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다양한 관계성에서 나오는 생각, 문제점, 본질, 감정 등을 함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것의 ‘인간적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좋은 작업을 하는 동료나 다른 분야의 예술가에게서 영감을 받습니다. 책이나 뉴스, 평범한 일상에서도 종종 좋은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생생하게 삶을 경험하고 몸을 움직이며 세상에 내 몸을 던지듯 열정적으로 진실되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건강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소 정신 건강과 몸 건강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최근 김정 연출의 연극 <연안지대>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대사가 아름다웠습니다. 문학의 아름다움이 주는 마음의 울림과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는 죽음에 대한 통찰을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를 통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극 중 사베 역할을 맡았던 공지수 배우와 10월에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10월 실험무용음악극에 이어 12월 19일 개인 작품 발표회 <Signal>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올 한 해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 작업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본질적으로 예술의 정의와 역할에 질문을 던지고, 예술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를 되짚는 작업을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나는 왜 음악을 쓰는가, 어떤 음악을 쓸 것인가, 그 음악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들이 당장 내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등을 고민하며 저만의 새로운 소리, 구조, 악기, 기술적 결합 등을 탐구함으로써 독창적인 언어를 꾸준히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비정형적이고 이질적인 구조를 가져 청취 경험의 확장, 예술 감각의 확장을 통해 ‘예술적 자유’와 ‘해방’을 획득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인간 경험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해나가고 싶습니다.

8월 아트스페이스 서촌에서 열린 <탈출> 중 작곡 퍼포먼스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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