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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전에 없던 새로운 연작 판소리
쿼드초이스 - 입과손스튜디오

‘한국판 레 미제라블’ 판소리 <구구선 사람들>

처지가 안되고 애처롭다. ‘불쌍하다’의 사전적 의미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1862년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발표했다. 19세기 프랑스의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작품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온 ‘처지가 안되고 애처로운’ 사람들을 비롯해 전 세계인의 공감과 사랑을 받으며 영원한 고전이 됐다. 시공간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연극·뮤지컬 등으로도 꾸준히 제작돼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오기도 했다.

9월과 10월, 대학로극장 쿼드의 관객들은 불멸의 고전 『레 미제라블』을 판소리로 만날 수 있다. 판소리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국내외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입과손스튜디오가 소설 『레 미제라블』을 바탕으로 재창작한 완창 판소리 <구구선 사람들>과 토막소리 <오류의 방>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대학로극장 쿼드는 극장이 주목하는 예술가와 작품을 ‘쿼드초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이며 호평을 받아왔다. 특히 올해 ‘쿼드초이스’는 전환의 시대에 발맞춰 전통·무용·연극 장르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데, 이 일환으로 입과손스튜디오를 초청해 한국판 레 미제라블의 완창 판소리-토막소리 연작 상연을 기획했다. 본 공연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연작 판소리를 관람할 기회이자, 2024년 한층 더 새로워진 한국판 레 미제라블을 변화무쌍한 블랙박스 극장에서 처음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24 쿼드초이스’에서 선보이는 이번 연작 판소리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완창 판소리는 긴 세월 동안 서로 다른 소리꾼이 부른 토막소리를 모아 만들어진 것이라는 판소리 창작 과정의 가설에서 출발한다. 입과손스튜디오는 색다른 판소리 창작 과정 개발 프로젝트의 원전으로 소설 『레 미제라블』을 선택했다. 이들은 순서대로 토막소리 <팡틴>, <마리우스>, <가브로슈>를 창작했고, 이 토막소리들을 가지고 완창 판소리 형태의 <구구선 사람들>을 선보인 후 네 번째 토막소리이자 자베르가 주인공인 <오류의 방>을 추가로 창작했다.

입과손스튜디오의 이러한 시도 덕분에 우리는 서양 고전을 원전으로 삼아 동시대의 관점으로 창작된 판소리를 전통적인 판소리 창작 과정에 맞춰 즐길 수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차근차근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쿼드초이스’를 통해 연이어 두 작품이 쿼드 무대에 오르는 덕분에, <구구선 사람들>에서 들은 대목을 <오류의 방>에서도 찾아내거나 두 작품 속 연결된 등장인물을 유추하는 등 연작 감상의 재미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자베르를 주인공으로 창작한 토막소리 <오류의 방>

보증된 레퍼토리, 쿼드에서 재탄생
입과손스튜디오는 소리꾼의 ‘입’과 고수의 ‘손’을 뜻하는 이름으로, 전통과 창작을 오가며 다양한 작업을 해온 소리꾼과 고수가 함께하는 판소리 공동창작그룹이다. 전통예술의 동시대성 확보와 판소리 창작 과정 개발을 목표로, 판소리가 하나의 장르이자 고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힘써왔다. <구구선 사람들>(9월 24일부터 29일까지)은 원작 소설의 서사를 ‘세상은 한 척의 배’라는 설정 아래 판소리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른바 판소리로 재탄생한 한국판 레 미제라블이다. 작품의 배경은 온 세상의 축소판인 커다란 배 ‘구구선99船’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불쌍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언제나 100에 가닿지 못하고 99에 그치고 마는 모자란 세상에 빗댄 판소리 속 세계다. 구구선의 엔진실에서 노역 중인 빵 도둑 ‘장씨’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판소리에는 방미영(팡틴)·가열찬(가브로슈) 등 구구선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민중의 아픔을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전해온 판소리의 매력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다. 원작의 방대한 등장인물 규모를 표현하기 위해 입과손스튜디오의 소리꾼 이승희·김소진과 고수 김홍식·이향하에 더해 배우 백종승, 기타리스트 김홍갑, 드러머 이유준이 출연한다.

올해 ‘쿼드초이스’로 선보이는 <구구선 사람들>은 신작이라 소개해도 무방할 만큼 기존 작품에 견주어볼 때 큰 변화가 있다. 주요 등장인물이 새롭게 추가되고 인물들의 전사前事가 확장됐으며, 현대무용 안무가 밝넝쿨이 출연진의 움직임 지도를 위해 프로덕션에 합류했다. 또한 가수 이랑의 음악 ‘늑대가 나타났다’를 삽입해 작품의 메시지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한다. 2022년 초연 이후 3년 차를 맞이하며 그간 더욱 어지럽게 변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질문을 담았다. 우리가 탄 ‘세상’은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묻게 되는 작품이다.

<오류의 방>(10월 3일부터 6일까지)은 <구구선 사람들>에서 단면적으로 그려진 인물 ‘자베르’의 생애를 집중 조명한다. 『레 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 많은 작품에서 자베르는 광적인 집착으로 장 발장을 집요하게 쫓는 악인으로 묘사돼왔지만, 자베르 또한 부조리한 사회가 만든 불쌍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오류의 방>은 오류투성이인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안과 강박 때문에 세상의 모든 오류를 용납하지 못하게 된 수사관 자베르가 사는 방을 의미한다. ‘오류의 방’에 함께 들어선 관객들은 이 혼란한 세상에서 절대적 선과 악의 구분이 가능한지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소리꾼 박상훈이 10월 5일,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박상훈은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10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고 MBC 드라마 <연인>의 삽입곡 ‘만주 자장가’를 불러 주목받고 있는 소리꾼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극장 무대에 데뷔한다. 이승희·김소진, 이승희·박상훈 페어의 서로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선택해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선보이는 <오류의 방>만의 백미. 또 다른 특징은 특별한 무대 구조다. 돌출형 무대 덕분에 관객은 인물의 어두운 내면과 그 변화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을 떠난 후에도 머리에서 맴돌 전자음악과 판소리의 조합 또한 기대해도 좋다. <오류의 방>은 대학로극장 쿼드와 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협력작으로, 전 회차 영문 자막이 제공된다.

“불어라 불어라 어기여차 불어라. 불불불 불면은 새 세상이 온단다!” <구구선 사람들>이 노래하는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이 여전히 필요한 요즘이다. 기술이 인류를 압도하는 시대에도 ‘불쌍한’ 사람들은 왜 사라지지 않는지, 사회는 왜 계속 ‘불쌍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지,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온갖 질문이 머릿속을 떠다닌다면 올가을 <구구선 사람들>과 <오류의 방> 관람을 추천한다. 저마다 희미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4 쿼드초이스 - 입과손스튜디오

<구구선 사람들>
9월 24일부터 29일까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3·7시, 일 오후 3시
<오류의 방>
10월 3일부터 6일까지
목?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3·7시, 일 오후 3시

글 최영한 서울문화재단 공연기획팀

사진 제공 입과손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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