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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정헌

음악/클래식 음악
b.1982
@hun.chung.conductor
2020년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2024년 서울생활예술페스티벌 개막 공연 지휘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오래된 것,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가치 있게 생각하며 고전을 동경하는 음악가입니다. 서양음악의 전통과 문화를 경험하고 배우고자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고, 10년간 체류한 세월과 경험이 저의 음악적인 바탕과 자양분이 됐습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Kunstuniversitat Graz 오케스트라 지휘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201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 공모에 참여했습니다. 최종심까지 올랐고 그때의 좋은 성적으로 다섯 번 객원 지휘를 맡으며 한국에 데뷔했습니다.

유럽에서 지휘를 공부하며 과연 내가 지휘자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독일 콘스탄츠 남서독일필하모닉Sudwestdeutsche Philharmonie Konstanz과의 공연이 있었는데, 리허설 중간에 많은 연주자들이 제 음악과 지휘를 좋아해주며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렇게 유럽 한가운데서 그들의 전통인 클래식 음악을 지휘하며 교감하고 인정받으며 나의 예술, 즉 지휘는 함께하는 즐거움이라고 자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공연은 상임지휘자로 재직한 목포시립교향악단의 2022년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공연입니다. 지방 시립교향악단의 현실적인 한계가 물론 존재했지만, 열정적으로 음악계와 목포시에 호소해 10년 만의 교향악축제 초청을 성사했습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예술·기술적으로 고난도의 작품을 선택해 성공적으로 공연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3년간 목포시향에 재직하며 부산·대구 등에서 공연했고, 지방 시향 최초로 ARKO한국창작음악제를 개최해 음악계에 주목을 받게 됩니다. 목포시향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에선 말러 교향곡 5번을 성공적으로 연주해 ‘한국의 관현악에서 벌어진 비상한 현상’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서두에도 소개했듯이 고전을 동경하며 빛바랜, 오래된 것을 소중하게 바라보며 영감을 받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유학 시기에 고음악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의 리허설을 참관하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과 그 열정에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최근에 영화 두 편을 감명 깊게 봤습니다. 첫 번째는 1964년 프랑스 영화 <쉘부르의 우산>으로,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감각적인 연출과 색감이 쏟아지듯 일렁이는 감정선을 표현해갑니다. 결국 아련하고 뜨거운 감정으로 전체를 마무리하며 마치 한 호흡 안에 클라이맥스를 가두듯 끝나버립니다. 독특하게도 모든 대사가 노래로 된 ‘오페라 영화’ 장르로, 귀하디귀한 작품입니다. 두 번째는 1984년 이란 영화 <달리는 아이들>로,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중에 제작된 영화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상황을 전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단지 아이들의 척박한 삶 자체를 조명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과 현실을 긍정하며 꿈을 포기하지 않는 보배로운 마음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전쟁 중에 처한 각자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 작품이네요. 현재 우리의 삶은 그때보다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 궁핍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간과 시간에 예술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9월 28일 서울생활예술페스티벌 개막 공연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동행오케스트라’의 이름으로 시민 연주자를 모집했고,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인천시립교향악단·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각 악단의 악장과 수석 선생님들이 하나가 돼 무대를 만듭니다. 모두가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생활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생활이 되는 행복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공연과 작품이 저, 그리고 함께하는 예술가와 감상자에게 감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3년 군포시민합창단 송년음악회에서 리허설하는 모습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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