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일체!
세계 유일의 극장이 된 채석장
오페라가 열리는 장크트 마르가레텐 채석장의 전경 ⓒAndreas Tischler
한국과 유럽의 도시 풍경을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 중 하나는 ‘오래된 건물의 수’일 것이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바로크와 고전주의, 신고전주의까지 지역별로 서로 다른 시대와 풍경을 간직한 유럽의 도시들. 시간이 멈춘 듯 역사적 발자취가 곳곳에 스민 모습은 많은 여행객을 끌어당기는 요소이며,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가 성공한 배경이 됐다.
유럽은 어떻게 옛 건물을 이처럼 오래 보존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돌로 지었기 때문이다. 석조 건축은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소실의 위험이 적고, 나무보다 온습도의 영향도 덜 받는다. 나무로 지은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건물이 상당수 소실된 데 비해, 약 2천 년 전 지어진 로마 콜로세움을 비롯해 중세의 수많은 고딕 성당이 여전히 도시마다 위용을 자랑하는 것도 그 이유다.
유럽 사람들은 왜 돌로, 우리는 왜 나무로 건물을 지었을까. 유럽의 지반은 대개 무르고 쪼개기 용이한 석회암으로 이뤄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지반을 이루는 화강암은 강도가 높아 쪼개기가 어렵다. 많은 노동과 시간이 드는 화강암보다 지천에 자라는 나무로 집을 짓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나무 건물은 전쟁과 재해로 소실됐고, 그 자리에는 가장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시멘트 건물이 들어섰다. 근본적인 지질 차이가 유럽과 한국 도시의 풍경을 다르게 빚어낸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엇갈린 채석장의 운명
유럽에는 석조 건축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채석장이 곳곳에 존재해왔다. 고대부터 귀족의 사치품이나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등 여러 작품의 대리석을 조달한 이탈리아의 카라라Carrara 지역 채석장, 중세부터 산업 시대 프랑스 남부의 주요 건물에 사용된 프랑스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의 채석장, 벨기에의 도로포장 공급처이자 유럽 최대 규모인 케나스트 채석장Carrière de Quenast, 오스트리아 빈의 상징인 성 슈테판 성당을 비롯한 각종 건축에 돌을 댄 장크트 마르가레텐 채석장Steinbruch St. Margarethen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19세기 중반부터 철강 제조 기술이 발달하며 철강이 석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런던의 수정궁1851, 프랑스의 에펠탑1887 등 철강으로만 이루어진 건물들이 완공되며 새로운 건축 시대의 막이 올랐다. 경제성이 낮은 석조는 자연히 그 수요가 줄어들었고, 20세기 초중반 채석장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을 닫은 채석장은 황폐해졌고, 각 나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폐채석장은 20세기 후반 버려진 담배공장·성냥공장 등 여러 공장과 더불어 문화 재생 사업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러나 도시에 위치한 공장은 도서관이나 공연장 등 문화 시설로 쉽게 탈바꿈할 수 있는 데 반해, 채석장은 도시와 먼 관계로 독특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한 채석장은 채석 구덩이에 알프스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이며 색다른 다이빙 장소로 거듭났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 장크트 마르가레텐 채석장과 프랑스 레 보 드 프로방스 채석장의 변신은 어느 곳보다도 흥미롭다.
유럽에서 가장 큰 자연 속 공연장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동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장크트 마르가레텐 채석장은 여름마다 야외 오페라 축제인 ‘채석장 오페라Oper im Steinbruch’를 연다. 유럽에서 가장 큰 야외 공연장 중 하나인 이곳은 총 7천㎡의 면적을 자랑하며, 무대의 크기는 빈 슈타츠오퍼보다 7배 더 크다. 관객은 4,7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을 웃도는 객석 규모로, 다층이나 원형극장이 아닌 단일층 형태의 극장으로는 상당히 인상적인 수치다. 돌을 캐낸 뒤 움푹 팬 자리를 객석으로 활용하고, 깎은 돌벽 앞을 무대로 활용했다. 객석을 둘러싼 석회암 절벽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 채석장은 폐쇄된 후 1961년부터 마을 주민들이 5년마다 수난극passion(마을마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다룬 극을 올리는 전통. 독일어권에서 중요하게 전해지는 무형 문화유산이다)을 올리는 무대로 작은 역할을 해오다가, 1996년 소유자인 에스테르하지 재단Esterhazy Foundations에 의해 본격적인 오페라 축제 장소로 기획됐다. 여름밤 채석장 풍경이 주는 독특한 경험은 크게 히트했고, 매년 오페라 애호가들을 불러 모으는 장소가 됐다.
빈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채석장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진입로는 생각보다 더욱 근사했다. 베이지색을 띠는 석회암이 붉고 직선적인 진입로와 묘한 대비를 이뤘다. 2006년, 젊은 건축가 그룹 AWG가 이 진입로를 중심으로 리노베이션을 담당했다. 이전까지 관객은 주차장에서 객석까지 이르는 긴 동선을 기능적으로 걷기만 했다면, 리노베이션 후에는 암벽을 따라 다양한 각도를 바라보며 이동하도록 설계해 채석장이라는 장소의 경험을 첫인상부터 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 램프는 높은 주차장에서 2층의 오페라 라운지로, 1층의 식음료 판매 공간으로 이어진다.
2층의 오페라 라운지는 공연과 라운지 이용을 결합한 패키지 티켓을 구입한 관객이 입장할 수 있다. 6시부터 간단한 애피타이저와 음료가 제공되며, 공연 전까지 식사가 서빙된다. 메뉴는 <아이다>에서 영감을 받았다. 인터미션에는 다과가 제공되며 공연 후에도 30분간 바bar로 기능한다. 크림색 천막 아래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단지 공연만 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닌, 풍경과 미식, 공연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채석장 오페라 <아이다>(2024) ⓒWearegiving/Tommi Schmid
깎여 나간 절벽을 활용한 오페라 연출
채석장 오페라에서는 여름 동안 하나의 프로덕션을 선보인다. 올해는 베르디의 <아이다>가 7월 10일부터 8월 24일까지 오른다. 이집트가 배경인 <아이다>는 특히 채석장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연출가 타데우스 스트라스버거Thaddeus Strassberger는 채석장의 절벽 단차를 곳곳에 활용한 스펙터클한 연출을 선보였다.
“연출 콘셉트는 ‘물’과 ‘불’입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벽화에서 물과 불이라는 원소로 우리의 삶을 묘사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죠.” 페스티벌의 매니징 디렉터 카타리나 라이즈Katharina Reise가 설명했다. 절벽 앞에는 피라미드와 파라오 석관을 묘사한 거대한 벽체를 세우고, 왼편으로 14미터 높이의 오벨리스크와 분수, 바닥에는 물을 깔아 흐르는 나일강을 표현했다. 이 벽체에 설계된 계단으로 인물들이 오르내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이러한 벽체를 세운 데는 실용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벽 뒤에 스피커와 조명 등 기계 장치를 숨깁니다. 이곳에는 백스테이지나 천장이 없어 적재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카타리나가 덧붙였다. 벽체로 절벽과 무대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임시 백스테이지를 세웠고, 무대 양옆으로는 무대미술의 일부로써 문을 두어 인물이 등장하고 퇴장하는 동선을 만들었다. 문과 벽, 그리고 절벽 곳곳에서 검투사, 무용수, 곡예사, 이국적인 의상의 하인들, 심지어 불타는 코끼리까지 등장하고 사라진다.
이날 아모나스로 역을 맡은 바리톤 김강순은 “이곳은 무대가 아주 크기 때문에 일반 극장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 연기에 있어서도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극장에서와 같이 연기하면 멀리 있는 관객까지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동작을 과장되게 표현해야 한다”며, “음악적으로는 마이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부담이 덜한 편”이라고 무대의 독특함을 말했다. 오페라 공연은 보통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지만, 이곳은 무대와 공연장이 워낙 넓은 탓에 노래 전달이 어려워 마이크를 사용한다. 이어 “나라마다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이 있는데, 이곳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좋은 퀄리티를 가진 무대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제작진도 다들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분위기도 좋다”고 덧붙였다. 연출팀과 배우들은 한 달 반 전부터 근교의 아이젠슈타트에 머물며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번 프로덕션에는 김강순 외에도 람피스 역에 베이스 박종민이 참여해 인상적인 기량을 뽐냈다.
눈을 사로잡는 번쩍번쩍한 의상은 주세페 팔렐라Giuseppe Palella가 디자인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국립오페라단과 비발디 작품에서 화려한 의상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디자이너다. 이날 의상은 조금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했지만, 여름밤의 큰 야외무대에 서니 멀리까지 눈에 띄며 빛을 발했다. 오토 드리스콜Otto Driscoll의 조명 디자인은 분수와 맞물려 물의 불꽃놀이를 방불케 했다. 분수 외에도 무용수와 스턴트맨의 기예, 벽체의 이집트 상형문자 등 프로젝션 매핑, 심지어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함께 죽기로 결정하는 마지막 장면에 나타난 절벽의 줄타기 곡예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볼거리로 가득했다. 깜깜한 밤 곡예사가 절벽 한쪽에서 반대편까지 불타는 장대를 들고 건너가는 시퀀스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무대는 이 모든 감각적 경험을 만끽하는 즐거운 엔터테인먼트 쇼에 가까웠다. 이런 여름밤의 경험이라면 두고두고 기억될 만하다.
눈에 띈 것은 접근성이 좋지 않은 이곳을 매년 관객이 꾸준히 찾는 장소로 유지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다. 빈에서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이곳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넓은 부지를 활용해 교통 접근성을 높였다. 충분한 버스 전용 주차장, 주변 캠핑장과의 연계, 또 빈과 아이젠슈타트를 왕복하는 자체 셔틀도 마련돼 있다. 이 일대는 채석장 외에도 초원과 와이너리, 노이지들Neusiedl 호수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채석장 오페라는 단체 관광의 일부가 되게끔 계획하기도 한다. 20명 이상 단체를 데려오면 가이드에게 무료 티켓 1장이 주어지고, 관계자는 동반 1인까지 20% 할인이 가능하다. 버스 운전 기사에게도 음료 쿠폰이 지급된다.
레 보 드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 전경 ⓒCulturespaces
미디어 파사드의 원조 ‘빛의 채석장’
프랑스 남부 레 보 드 프로방스 지역의 돌은 결이 곱고 백색도가 높아 주변 성과 마을을 비롯한 많은 건축의 재료가 돼왔다. 1800년에 개장한 그랑 퐁 채석장Carrière des Grands Fonds도 철강의 존재를 이기지 못하고 1935년 문을 닫았다. 구불구불한 산길 도로 옆에 방치된 폐채석장은 한 예술가로부터 지금의 명성이 시작됐다. 캄캄한 동굴, 복도, 거대한 기둥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는 자신의 영화 <오르페의 유언Le Testament d’Orphee>1960에 채석장의 환상적인 모습을 담아냈다.
2012년 문화공간 관리 운영 기업인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가 채석장 운영을 위탁받은 뒤, 10만㎡에 이르는 내부의 하얀 암벽을 배경으로 프로젝션 매핑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아비뇽 교황청·오랑주 로마 원형극장 등 역사적 장소를 운영 관리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다. 내벽 전반, 그리고 기둥과 바닥에 투사되는 클림트·피카소·반 고흐의 작품이 움직이며 상상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eres’이다. 컬처스페이스는 ‘빛의 채석장’을 구현하고자 몰입형 미술·음악 경험을 위한 기술을 개발했다. 고화질로 디지털화한 수천 장의 작품을 거대한 벽에 투사하면 그림은 시나리오에 따라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100여 대의 프로젝터와 멀티 투사 소프트웨어를 통해 높이 16미터, 면적 7천㎡에 이르는 채석장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신한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채택한 ‘빛의 채석장’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수출까지 이뤘다. 제주도에 있는 ‘빛의 벙커’가 그중 하나다. 2012년 ‘빛의 채석장’이 문을 열었을 때 레 보 드 프로방스의 연간 방문객은 23만 9천 명이었다. 현재는 연간 방문객이 77만 명에 이른다. 작은 마을이던 레 보 드 프로방스는 이 채석장으로 말미암아 인기 관광지 반열에 올랐다.
글 음악평론가 전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