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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배인숙

음악/사운드·설치
b.1975
@bae.insook
2024 서울시민예술학교 여름 시즌 ‘어디서 무슨 소리’

<비트스텝>, 2021

평소에는 전업 작가로 작업하며 지내지만, 가끔 예술교육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8월에는 서울시민예술학교 양천에서 어린이와 가족 대상으로 소리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2013년부터 공간을 돌아다니며 ‘하울링 라이브’(facebook.com/howlinglive)라는 이름으로 실험 연주회를 운영하고 있어요. 하울링 라이브는 공연장이 아닌 작은 장소를 찾아다니고 신청을 통해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어느덧 33회를 앞두고 있네요.

20대 후반, 음악에 열광해 홍대 앞에서 밴드 활동을 몇 년 하기도 했지만, 흐지부지 끝났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불안감이 점점 증폭됐던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은 나이에 창작 활동을 시작해 이미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무언가 돼야 한다는 현실적인 목표보다는 계속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렸고, 그 후로 이런저런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술가다’ 하는 느낌이 든 적은 없습니다. 단지 어떤 작은 생각, 그 생각이 멋있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구상하고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재미있어 한다는 점, 게다가 누가 제 작품을 기다리지도 않고 큰 반응도 없는데 계속하는 것을 볼 때 ‘이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정도 생각합니다.

저는 기존의 사물, 기계, 시스템, 현상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새로운 장치나 일상의 물건에 기능을 추가하는 작업 방식을 사용합니다. 또한 과거 혹은 최신 기술을 되도록 단순화시켜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사운드 오브 시티>, 2023

<line to line>, 2024

가장 최근 작업인 <line to line>은 전자악기인 모듈러 신시사이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모듈러 신시사이저는 소리의 구성 요소를 케이블에 연결해 소리로 듣게 하는 방식의 전자악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전시실의 관람객은 30여 개의 케이블을 악보 역할을 하는 그림과 똑같이 연결해 음악을 듣게 됩니다. <사운드 오브 시티>는 2023년 세화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에 출품한 작품인데요. 광화문으로 전시 미팅을 가면서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미술관은 영화관과 식당, 카페가 있는 빌딩에 있었고, 주변에는 박물관이 있는 도시다운 도시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루 동안 돌아다니면서 녹음한 소리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작품이고, 탁구공은 음표라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원래는 악보와 같은 검은색 탁구공을 계획했지만, 센서가 인식하지 못해서 흰색으로 바꿨어요. 작품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기술적 문제 때문에 잦은 수정을 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상황이던 2021년은 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걸음의 빠르기가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고 <비트스텝>이라는 작품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관객이 작품 위 흰 선을 밟고 걸어가면 음악적 빠르기인 BPM으로 계산해 유사한 BPM 수치의 댄스 음악을 들려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얼마 후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고 정부에서 헬스장, 에어로빅 등 실내운동 장소에서의 빠른 음악을 제한해서 그런지 이 작업이 더욱 기억나네요.

특별한 영감이 있지는 않지만 창작 활동을 하는데 ‘좋은 기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영감일 수도 있겠네요. 마음이 우울하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저는 작은 에너지라도 있어야 작업이 시작되더라고요. 가능하면 우울하더라도 너무 극단으로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우울한 마음은 서서히 잦아들었어요.

2024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벌써 올해의 영화로 정해버린 <이니셰린의 밴시>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매우 단순합니다. 집도 가깝고 단골 술집도 같아서 매일 만나는 파우릭과 콜름이 등장합니다. 영원히 함께 잘 지낼 것 같았던 콜름이 갑자기 절교를 선언하게 되면서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인생을 바라보는 형식의 다름이 절교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씁쓸했습니다. 그저 스타일일 수도 있는데… 콜름도 이해되고 파우릭도 이해됩니다. ‘나는 과연 어떤 쪽의 사람일까’ 하면서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어요.

작년 6월 어느 날 새벽, 제주 편백숲에서 굉장히 미묘한 새소리를 들었어요. 올해도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8월 말까지 공사라고 하네요. 물론 가을에 가도 되겠지만 왠지 그 시기에는 그 새가 없을 것 같아요. 내년 6월 그 새소리를 다시 듣게 되면, 그 소리만으로 작품을 만들 계획이 있습니다. 작품의 이름까지 정했습니다. <네음새를 찾아서>라고요.

정리 [문화+서울] 편집위원 전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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