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아카이브
김은한
연극
@mammothmermaid
웹진 연극in 희곡운영단(2020~2021년)
서울연극센터 공간개방축제 <연극-하기와 보기>(2023~2024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서울프린지페스티벌·우주동물
저는 1인 극장 ‘매머드머메이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신작을 무대에 올립니다. 연말연시에는 ‘주주총회’라는 이름으로 팬을 위한 특별한 공연을 하고요. 최근에는 관객의 집에서 공연하는 일이 늘었어요. 코미디나 공포 연극을 주로 만들고 있습니다만, 좀 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는 연극을 추구합니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꾸준하게 했어요. 홍대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자유 참가 축제인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를 좋아했는데, 동아리에서는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죠. 그래서 ‘죽음을 연습하는 마음’을 표방하며 2015년 축제에서 이오네스코의 <왕은 죽어가다>를 1인 형태로 바꿔 올렸습니다. 차츰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생겨서 조금 더 연극을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조금 더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어요.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만들었는데 관객도 좋아해줄 때, 무척 신나요. ‘이런 게 예술의 효능일까?’ 생각하게 되고요. 낯선 재미를 발견하고 그걸 다듬어갈 때 깊이 집중하게 되는데요. 그런 순간도 짜릿합니다.
극단 ‘지금아카이브’와 4년간 함께한 <코미디 캠프> 시리즈를 대표 작품으로 꼽을 것 같아요. 최근 극장이나 길에서 알아봐주시는 관객 대부분이 <코미디 캠프>를 봤다고 하거든요. 김진아 연출이 ‘저 사람들의 코미디가 보고 싶다’며 저와 안담·배선희·신강수 배우를 불러주셨어요.
각자가 매년 주제에 맞춰 실험적인 코미디를 만드는 기획입니다. 저는 4년간 카프카의 단편이나 보르헤스, 일본의 전통 코미디 라쿠고落語, 짧은 형식의 시 하이쿠, 블랙 메탈을 소재로 25분 분량의 콩트를 만들었어요. 조만간 지난 공연 영상이 공개된다고 하니까 살펴주세요. 더불어 1인극으로 제목이 시가 되고 연극이 주석이 되는 공연도 만들고 있습니다. <멀리서 응원하고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 <침묵하는 것만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게 분하다>라는 작품이에요. 이때부터는 음악가의 ‘세트리스트’ 혹은 ‘모듈’ 형태를 의식하면서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공연 테마에 맞춰 여러 가지 짧은 연극을 만들고 그걸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요즘은 짜릿하게 바쁜 시기인데요. 프리랜서에게 일이 몰리는 건 왕왕 있는 일이잖아요. 저는 제작이 빠른 편이고 몸도 하나기 때문에, 일정이 완전히 겹치지 않으면 가능한 한 들어온 일은 다 받으려고 해요. 그래서 7월 말부터 8월 한 달 동안 여덟 작품 정도 시연하게 됐어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국립극단원>이라는 SF 신작 연극을 선보이는데요. 혼자 연극하는 이상한 사람의 감각을 관객에게 더욱 전하기 위해 궁리하고 있어요. 다른 낭독 공연도 준비하고 있는데, 극작가분들의 신작 희곡을 공연하는 거라 두렵고 설레는 맘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대본으로 공연하는 건 5년 만이에요.
생활 전반과 취미에서 영감을 받아요. 요즘 극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강은 알아야 하니까 연극도 연간 80~100편 정도는 보려고 하고요. 일본의 공연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온라인 상영 같은 행사를 꼼꼼히 찾아봅니다. 또 미스터리 소설도 좋아해요. 독자를 놀라게 하는 방식, 결말에 다가갈수록 흥미로워지는 구성에서 배울 점이 많아요. 음악 공연장에서 춤을 출 때도 좋은 생각이 정말 많이 나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노는 일정은 취소하지 않으려고 해요. 식은땀을 흘리긴 하지만요.
한국에서 발간되지는 않았지만, 마야 유타카麻耶雄嵩의 『여름과 겨울의 소나타』는 미스터리 소설에 큐비즘이라는 미술 사조가 접목돼 아름답게 작동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를 하지만 애매하게 알려주는 태도도 언젠가 제 연극에 반영하고 싶어요. 『던전밥』, 『삼체』도 올해의 인상적인 독서예요. 가야 할 곳을 향해 처절하게 최선을 다하는 인물에게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신념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가혹하게 흐르지만,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서 있는 힘껏 해나가야 한다고 느꼈어요.
블랙게이즈Blackgaze(블랙 메탈과 슈게이즈Shoegaze가 결합된 장르) 밴드 아스노조케이明日の叙景, 데프헤븐Deafheaven의 내한 공연도 좋았습니다. 난폭과 서정을 조화롭게 연극에 녹여내는 게 제 꿈인데요. 이미 환상적으로 멋지게 해나가고 있는 창작자를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최근 인상 깊은 연극은 엔티 라이브NT Live <플리백Fleabag>이었어요. 1인 창작자다 보니 1인극을 자주 찾아보는데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더라고요. 좋은 걸 보면 잠시 주눅이 들어 있다가, 그래도 내 나름 해 봐야지 마음먹게 됩니다.
미니멀리즘 롤플레잉 게임에 관심이 있어요. A4 용지, 엽서나 명함, 심지어는 한 문장이나 한 단어로 즐길 수 있는 놀이에요. 관객의 머릿속에 극장을 세우는 게 제 일이죠. 이런 수법도 연극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찾아보고 있어요. 또 ‘신케이카사네가후치真景累ヶ淵’라는 긴 일본 괴담이 있는데,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이 가능할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정리 [문화+서울] 편집위원 전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