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협력
신당 프로젝트 전시
2023년 열린 《The intersection A∩B》 전경
“협력하고 싶습니다!”
서울중앙시장 지하에 위치한 공예 창작공간인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하는 작가들의 지원 동기와 포부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협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35명이라는 적지 않은 예술인이 입주한 시장 지하상가의 환경은 굉장히 밀착돼 있고 질서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 불편함은 서로의 교류를 촉진하고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창작의 영감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작업을 기대하는 예술인의 열망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고 조심스레 이 미스터리한 레지던시의 문을 두드리게 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2024년 첫 전시 《소망을 위한 움직임》
작가 워크숍 현장
‘신당 프로젝트 전시Sindang Project Exhibition, SPE’는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하기만 하면 대단한 컬래버레이션이 이루어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SPE는 현직 입주작가 2인 이상이 협력해 하나의 전시를 개최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데,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형태가 아니라 주제에 관한 공동 작품의 창작과 공간 기획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같은 입주작가라 해도 각자의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탐색을 통해 팀을 구성하고, 만나서 기획안을 작성하고, 그것을 실제로 공간에 구현하는 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크고 작은 충돌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두 작가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친 이후,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작은 전시실을 채운 협력의 결과물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참신하고 숨 막히게 아름답다.
6월 30일까지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열린 두 번째 신당 프로젝트 전시 《주름이 바란 당신》 전경
6월 30일까지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열린 두 번째 신당 프로젝트 전시 《주름이 바란 당신》 전경
작가의, 작가에 의한, 작가를 위한
올해 신당 프로젝트 전시는 특히 작가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했다. 외부에 의한 심의와 자문 과정을 없애고 행정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작가들에게 선정의 주도권을 부여한 것이다.
총 13개 팀이 지원했고, 전시 기획안 발표 워크숍을 진행한 이후 상호 평가에 의해 8개 팀을 선정했다. 선정된 작가들은 ‘공예의 움직임’을 주제로, 예술과 예술인을 움직이게 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지난 두 달간 두 팀이 차례로 전시를 마쳤고, 이달 세 번째 전시가 진행된다. 첫 번째 전시인 김수진·문채민 작가의 《소망을 위한 움직임》에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공예를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해 전통적인 공예가 가진 기원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두 번째 전시인 촉각예술팀 촉(이혜린·최세윤)과 이시원 작가의 《주름이 바란 당신》에서는 옷을 입은 신체가 움직일 때 주름이 생긴다는 지점에 주목해 주름을 통한 인간의 욕망과 관계, 그리고 일상의 단상을 표현했다.
이달 5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는 세 번째 전시 황은담·정다솜 작가의 《Dive in Innocence》는 작가들이 어릴 적 종이 위에 마음껏 상상과 꿈을 펼치던 순수한 모습을 달라진 현재 모습에 투영한다. 성장하면서 마주하는 현실,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일상이 된 모습을 유쾌하게 비틀면서 예술가의 ‘나를 찾는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한다.
신당 프로젝트 전시는 작가의 기존 작업과 전시 작업을 함께 비교하면서 본다면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보통 어떤 작가가 신작을 선보일 때 기존 작업의 느낌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타 작가와의 공동 창작이 필요한 이 전시에서만큼은 기존 작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업이 나타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주제에 대해 프로젝트팀만 바뀌며 릴레이로 진행되는 전시 특성상, 다른 팀이 이 주제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핀다면 더욱 흥미롭다. 모든 전시를 관람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유튜브 등을 통해 리뷰를 찾아보고 감상한다면 더욱 풍부한 감상이 가능하다.
전통시장에서도 또 한 층 내려와야 하는 지하상가에 위치한 탓에, 필연적으로 대중에게 노출이 적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신당 입주예술인들은 이곳에서 전시를 열고 싶다고 말한다. 작은 공간을 온전히 자신의 작업으로 채우는 경험은 더 큰 도약을 위한 탄탄한 기반이 되고, 다른 작가와의 협력은 본인이 설정한 경계를 뛰어넘어보는 새로운 시도가 되고,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는 동료로부터의 응원은 마음속 두고두고 꺼내볼 힘이 된다. 올해 지원 규모가 축소됐음에도 여전히 많은 작가가 신당 프로젝트 전시 기획안을 제출한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이곳에 자리잡은 이유와도 같을 것이다.
때로는 물밑에서 일어나는 작가들의 실험적 움직임이 외부 갤러리나 기업의 러브콜 등 더 큰 무대로의 진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까지 별마당도서관을 비롯해 호텔, 공공 청사 등 외부 공간에서 추가로 전시를 선보였고, 중구청으로부터 3회의 추가 지원을 받기도 했다. 과거의 성과에 힘입어 올해는 서울공예박물관과 협업해 더 많은 시민에게 신당의 작업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9월부터 12월까지 총 세 편의 SPE 전시가 《공예의 움직임@쇼윈도》라는 제목으로 서울공예박물관 쇼윈도 갤러리에서 한 번 더 전시된다. 치밀한 검증과 수집의 공간인 박물관에서, 가장 동시대적이고 실험적인 신당 프로젝트 전시를 선보이는 광경이 과연 어떠할지, 오가는 시민과 국내외 관광객들의 시선은 어떻게 다를지 벌써 기대를 모은다.
➊ 김수진·문채민 《소망을 위한 움직임》 5월 17일부터 6월 2일까지
➋ 이혜린·이시원·최세윤 《주름이 바란 당신》 6월 14일부터 30일까지
➌ 황은담·정다솜 《Dive in Innocence》 7월 5일부터 21일까지
➍ 윤경현·조예린 《LIVILD》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➎ 김연진·쿠니 《OOPArts in Alice》 8월 23일부터 9월 8일까지
➏ 소혜정·정선경 《별의 수집》 9월 13일부터 29일까지
➐ 임우택·안은선 《Ineffieient body》 10월 4일부터 20일까지
➑ 이시평·강인규 《통과의례》 11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9월 13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 쇼윈도 갤러리
*10월 14일부터 17일, 11월 11일부터 16일까지 설치로 인해 휴실
글 서울문화재단 신당창작아케이드 이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