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천선란 쉬지 않고 내쳐 걸으며
소설가 천선란은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대만에서 독일·튀르키예·캐나다로 이어지는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며 보낸 2024년 상반기에 쉬지 않고 걸었고, 때로 달렸고, 새벽에는 글을 쓰는 루틴을 지켜나갔다. 하지만 “걸을 수 있는 만큼 어디든 가고 싶다”는 그의 말은 무엇보다, 그가 쓰는 소설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소설 『천 개의 파랑』의 뮤지컬을 보면서 초반에는 결말을 후회하고, 종래는 모든 문장의 이유를 깨달으며 울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소설이 만들어낸 세계의 창조자이면서 그 누구보다 충실한 독자였음을 알게 해준다. 쉬지 않고 소설을 발표해온 그는 근래 두 편의 에세이를 내놓았다. 팟캐스트 <일기떨기> 멤버인 윤혜은·윤소진과 공저한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2023를 지난 연말에 선보였고, 최근에는 첫 단독 에세이이자 그의 SF 입문작이라는 디지몬에 대한 책 『아무튼, 디지몬』2024을 발표했다. 이 두 권의 책에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어머니의 투병 생활과 그에 따른 위기 혹은 용기의 시간이 고스란히 실렸다. 천선란 소설 세계의 분기점이 될 것만 같은 이 에세이를 중심에 두고, 그가 소설과 함께한 반년간의 모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 신간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이 나왔습니다. 단독 저서인 에세이로는 이 책이 처음이고요. ‘아무튼’ 시리즈를 제안받았을 때 디지몬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아무튼’ 시리즈는 ‘덕심’으로 뭔가를 꾸준히 해온 사람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6개월 넘게 걷기부터 시작해 여러 테마를 두고 고민했어요. 도저히 정할 수가 없어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불현듯 제가 누군가한테 디지몬 이야기를 열성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어요.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막 울고 있더라고요. 너무 좋아, 얼마나 감동적인데… 그래서 이걸 써야겠다고 결정하게 됐어요. 제 SF 입문작이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도 했고요.
『아무튼, 디지몬』은 디지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작가님의 10대부터 20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더라고요. “이건 내가 디지몬과 영원히 이별하는 이야기다”라는 문장은 그렇게 ‘나를 키운 세계와 작별하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지 않나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 벅차서… 어떤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끝없이 이어지잖아요. 디지몬도 시리즈가 계속 나오긴 하지만 최근 나왔던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2021도 그렇고, 디지몬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만큼은 명확하거든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영원한 이별을 말해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그게 제 유년기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싶어요. 저는 디지몬을 보면서 디지털 세계로 가는 꿈을 꾸기도 했어요. 하지만 20대가 되고 엄마를 돌보게 되면서 더 이상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됐죠. 디지털 세계로 간다는 기대가 사라지면 살기가 지루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제가 그런 즐거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창작을 하며 살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때 실감해요. 나도 하나의 세계와 영원히 이별한 거구나, 하고.
성장한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 시간을 통과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디지몬이 필요했던 시간, 또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라는 상징성을 통해서 차분하게 써낸 글이더라고요. 디지털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작가님께 발현된 방식이 소설을 쓰며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내가 만든 세계로 내가 들어가는 경험이었구나 싶었고요.
맞아요. 사람들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방법을 말할 때 구조를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그걸 잘 못해요. 그 대신, 마치 3D 안경을 쓴 것처럼 제가 만들어낸 세계로 완전히 들어가는 상상을 하거든요. 제가 풀숲을 헤치면서 걸어가면 앞에 뭐가 나타날지 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글을 써나가요. 그러다보니 인물들을 사랑하게 되죠. 그렇게 소설을, 특히 장편 소설을 완결지을 때마다 디지몬과 이별하는 마음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나, 이 인물을 다시 못 만나겠구나’ 하면서 소설을 계속 써나가요. 그래서 독자분들이 캐릭터를 사랑해주실 때 더 좋고요.
저는 작가님이 치트키에 가까울 정도로 잘 쓰는 감정이 슬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님의 인물들이 가진 어두운 일면이야말로 독자들이 이입하면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라고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을 날아가듯이 포착하기와 착 가라앉는 감정을 파고들면서 쓰기는 다를 수밖에 없을 듯한데요.
저는 슬픔의 감정을 파고들 때 신나요. 슬픔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잖아요. 슬픔 중에는 고독이나 우울,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감정도 있고요. 뭉뚱그려진 슬픔의 정서를 제 나름의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할 때, 세상을 해석하는 느낌이 들어요. 적확한 표현으로 그 마음이 전달되면 작가로서 기쁨을 느끼죠. 슬픔, 고독, 외로움에 관해 쓸 때 더 집중해서 정교하게 쓸 수 있어요. 풀숲을 헤매는 느낌으로 묘사해나가다가 제가 상상한 감정의 형태와 문장이 딱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이 있어요.
팟캐스트 <일기떨기> 멤버들과 함께 쓴 에세이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와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이 작가님의 20대와 30대를 가르는 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음에 출간될 소설이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두 에세이에서 작가님의 20대 중반까지의 삶, 작가로 데뷔하기 이전의 삶에 대해서 털어놓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10월에 문학동네에서 소설집이 나와요. 기존 발표작들과 미공개 작품 하나를 모아서 내는 책이고요. 또 끝나지 않는 시나리오 작업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제일 쓰고 싶은 건 장편 소설이 맞아요. 확실히 『아무튼, 디지몬』을 쓰면서 흩뿌려놓은 제 이야기를 싹 모으는 느낌이 났거든요. 이 작업이 제게 왜 필요했냐면… 제가 맨날 끓이는 김치찌개를 반복해 끓이는 느낌을 받은 거예요. 한번 크게 고아서 끓인 다음, 그 핵심만 추려서 완전히 다른 국을 만드는 기분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창작하는 인물이나 세계가 작다고 생각하곤 하거든요. 세계는 크지만 정작 이야기의 사이즈는 특정 인물에 집중돼 있다고요. 이걸 확장하고 싶은 거예요. 슬픔의 정서도 개인보다 인류 역사에 가까운 얘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작가님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세계와 거대한 슬픔이라니, 신나는데요. 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나요.
노력 중 하나가 제게는 여행이고요. 어느 도시에 가든 꼭 그 나라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과 유적지에 가요. 행사를 위해 낯선 도시에 방문할 때는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고요. SF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독일에 갔을 때는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가 나치 수용소에서 부모님을 잃고 훗날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우리가 가진 이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적어졌다는 이야기를요. 이런 이야기를 독일인 스태프에게서 들으면서 언어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인간은 언어를 도구 삼아 차별하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렇다면 궁극적 순간에는 언어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깨보는 연습을 하고, 소설로 발전시켜보기도 하고요.
독일에서의 활동을 잠시 언급해주셨습니다만, 작가님의 상반기 일정을 보면 ‘천선란 월드와이드’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활동의 폭이 넓더라고요. 한국 SF 문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요.
2월에는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 갔어요. 도서전에서 『천 개의 파랑』 연계 행사를 했고요, 『어떤 물질의 사랑』2020에 있는 동성애 부분에 대한 질문을 많이 주시더라고요. 대만은 동성혼이 법제화됐잖아요. 왜 한국은 아직도 동성혼 법제화가 되지 않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대만에서는 한국 SF 소설에 페미니즘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많이 보였습니다. 그와 달리 독일에서는 SF를 기피한다는 인상이 컸어요. 독일에서 『천 개의 파랑』 낭독회를 하고 질문을 받으면, 인공지능이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이 꼭 나왔어요. 제가 그때 뭐라고 답했냐면… “한국은 이미 당신들이 무서워하는 디스토피아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뮌헨과 베를린을 방문했죠.
맞아요. 대만을 다녀와서 말레이시아에 가 원고 작업을 했고요. 그다음에 독일로 넘어갔어요. 올해에는 저와 서수진 작가님이 뮌헨 레지던시 프로그램AIR-M Villa Waldberta에 선발됐어요. 원래는 3개월 프로그램인데, 저는 일정 때문에 한 달밖에 있을 수 없었지만요. 때마침 『천 개의 파랑』 독일어판이 출간돼 베를린 문학의 집Literaturhaus Berlin에서 낭독회를 하고 질문을 받은 거죠. 그 뒤 뮌헨 레지던시에 머물다가 행사를 한 번 했어요. 20명 정도 오던 행사라는데, 이번 행사에는 80명 정도가 몰린 거예요.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서 <천 개의 파랑> 뮤지컬을 보고 튀르키예로 가서 에르지예스 대학에서 한국문학번역원과 연계한 행사를 했어요.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어떤 물질의 사랑』을 번역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거든요. 종강 직전에 작가를 직접 초청해서 발표하는 자리에 제가 가게 된 거죠.
튀르키예의 독자들은 『어떤 물질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궁금해하던가요?
『어떤 물질의 사랑』이 퀴어적인 부분도 있다고 얘기하는데, 교수님이 ‘퀴어’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시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다보니 학생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봤을지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대부분 여학생이었어요. 꿈이 많고, 진취적이고, 차별이나 억압이 없는 시대에 대한 꿈이 있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튀르키예에서 캐나다로 가서, 제가 참여한 다큐멘터리 <지구 위 블랙박스>2023를 가지고 밴프 월드 미디어 페스티벌Banff World Media Festival에 참여했고요.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날 때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인가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얻는 에너지와 혼자 있으면서 얻는 에너지를 어떻게 조율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혼자가 좋은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누구를 만나든 호기심이 크거든요.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동기가 제 원동력인 것 같아요. 그런 힘을 잘 모아놨다가 소설을 쓸 때 꺼내 쓰는 듯해요. 연료처럼.
제가 아는 작가님은 원고 일정을 최우선에 두고도 바쁜 일정을 잘 소화하는 분이거든요. 원고를 미루지 않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꼭 듣고 싶었습니다.
글을 시작하면 뭘 하든 원고가 제 안에 머물러 있어요. 계속 생각해요. 그래서 틈만 나면 써요. 걸어서 이동하다가도 다음 장면이 생각나면 잠시 멈춰서 써놔요. 단어만 적어두더라도 써놓는 식이죠. 그렇게 모아둔 조각들을 오전 중에 몰아서 쭉 이어 붙이듯이 써요.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하루 종일 작업하는 느낌이죠. 독일에 있는 동안은 매일 공원을 걸었는데요. 공원을 다 걸으면 2시간이 걸려요. 이번에는 걷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음악도 안 듣고 새 소리 들으면서 그냥 걸었어요. 상반기 동안 제가 너무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너 이러다가는 글에 질릴 수도 있어’라는 위압감을 받았어요. 그래서 독일에서는 아침에 일을 바짝 하고 저녁에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를 연습했어요.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의 작업 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단편은 소재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요. 이걸로 써야겠다고 소재가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에 가거나 여행지에서 받는 충격으로 글을 쓸 때도 많고요. 그래서 소재가 정해지면 3~4일 안에는 캐릭터와 플롯을 완성해요. 그걸 계속 굴리죠. 첫 문장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런 작업을 지속해요. 장편 소설은 반대로 인물이 어떤 소리를 처음 내는지 기다려요. 『나인』을 쓰던 때는, 식물과 관련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나인이라는 캐릭터가 식물과 관계되는 어떤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힘으로 이야기를 쭉 구성해나갔어요. 장편은 초고까지 3개월 안에 끝내려고 노력하고요. 그 이상 시간을 끌면 제가 힘을 잃더라고요. 최대한 빠르게 초고를 끝내고 그다음 천천히 수정해요.
지난 5월 『천 개의 파랑』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요. 세 번 봤거든요. 처음 봤을 때는 내가 왜 마지막 결말을 저렇게 썼지, 하고 후회가 드는 거예요. 오래전에 쓴 소설이라 제게서 멀어졌는데 콜리의 마지막을 두 눈으로 보니까 콜리를 살릴걸, 싶어지는 거예요. 두 번째 볼 때는 그 장면에서 관객의 얼굴을 봤어요. 그 순간 관객의 얼굴이 제 소설을 읽던 독자의 얼굴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북토크는 많이 할 수 있지만 소설을 읽는 순간의 독자들 얼굴은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뮤지컬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소설을 읽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열하는 관객분들이 많았죠. 3회차 관람 때는 어땠나요?
그때는 아빠랑 언니가 왔어요. 아빠의 인생 첫 뮤지컬이었대요. 아빠랑 언니가 1층에 앉고, 저는 2층에 앉았어요. 근데 두 사람이 오니까 제가 썼던 모든 글을 왜 썼는지가 다 기억나는 거예요. 저 장면에 저 문장을 왜 썼는지가 선명히 떠오르면서… 공연 내내 울었어요. 울면서, 잘했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천 개의 파랑』은 연극과 뮤지컬로도 만들어지고, 해외판도 여럿 나오고, 정말 먼 곳까지 갔네요.
독자님들이 자기의 사연을 덧붙이고 덧붙이면서 제가 썼던 소설보다 훨씬 커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저와 상관없이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고요. 그래서, 저도 이제 『천 개의 파랑』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온전한 내 작품이 아니고, 이 작품은 저보다 더 커졌다고요. 많은 사람들 입에서 이야기되면서 가끔은 왜곡되고 변질도 되겠지만 이미 저를 떠난 작품이 됐어요.
SF를 주로 썼지만, 언젠가 써보고 싶은 다른 장르가 있다면요?
판타지를 쓰고 싶어요. 특히 판타지 웹소설이요. 영화로는, 호러를 써보고 싶어요. 슬프면서 무서운 호러를요.
이제 30대가 됐고, 20대의 가장 치열한 시기를 에세이로 정리하셨는데요. 어머니의 간병에 많은 시간을 쓰던 20대 중반의 천선란 작가님을 판타지적인 방식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요?
아무 얘기도 안 해주고 싶을 듯해요. 왜냐하면 ‘너 나중에 소설가 돼’라는 말도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괜찮아져’라는 말도 소용없을 것 같거든요.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미래의 내가 나에게 온다고 해도 아무 말도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게 제일 큰 위로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 연희동에 불시착한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에는 예술영화관 라이카시네마(지하 1층~지상 1층), 카페 모그(2층), 스페이스독 스튜디오(3~4층)가 자리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공간과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창작이 흐르는 복합 문화 공간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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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씨네21 기자 이다혜
사진 Studio Ke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