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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김채원

문학/소설
b.1992
@chwnetc
연희문학창작촌 2024년 입주작가

소설을 쓰는 김채원입니다. 대학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 소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요소의 개입 없이 오직 활자로만 이루어져 한계가 발생하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현재 종묘원, 나무, 열린 방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는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창작을 시작한 계기와 순간이 언제였는지 그 시기를 가늠해 볼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시작점을 알 수는 없다는 점이 도리어 흥미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창작을 이어나갈 수 있기도 합니다. 시작도 끝도 분명하지 않은 창작 활동이라면 ‘그냥’이라는 부사를 붙여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럼 이것을 그냥 계속해서 할 수 있겠다는 싱거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싱겁고 헐거운 마음이 때로는 그 어떤 확고한 마음보다 힘이 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소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을 때 스스로 저를 작가로 여겼습니다. 이때 책임감은 윤리, 도덕과 같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의 긍정적인 방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방향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책임감이란, 소설에는 꼭 필요한 표현이지만 그 소설을 쓴 작가에게는 비판이 돌아올 수 있는 표현이 있다면 비판과 비난을 받아들일 결심을 하고 기어코 그 표현을 사용한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책임감이 저에게 가치가 있고 중요합니다.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문학은 작품이 발표되는 일과 작품에 관한 외부 반응이 나타나는 일 사이에 시간차가 있는 편인데, 그 시간차를 경험할 때 문학의 고유한 속성인 ‘지연’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속성이 저와 잘 맞는다고 종종 생각합니다.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3년 차이기 때문에 사실 대표작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커다란 무게를 부여할 만한 작품은 없습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저에게는 제가 쓴 저의 소설이 있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모양을 지켜보는 일이 자유롭고 좋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의지로 제 소설들을 따라 읽고 나서 ‘나는 이게 제일 좋았어’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우연히 제 대표작이 되었다가 그가 잊어버리는 순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저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알 수 없는 일이어도 가만 상상해보고 있자니 일단은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웹진 [비유] 64호에 실린 소설 ‘럭키 클로버’

평범한 상태일 때는 당시에 읽고 있는 책이나 읽었던 책, 또는 영화나 회화 작품에서 자극을 받습니다. 드문 경우지만 10부작 정도의 드라마를 연달아 보기도 합니다. 평범하지 못한 상태일 때는 다른 방법이 필요한데, 아직은 유효한 방법이 있습니다. 보통 때라면 갈 일이 없는 장소에 가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생경한 장소 한복판에 저를 놓아두고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면서 그 장소의 일부가 돼 오가는 대화와 소음과 정적을 듣습니다. 그러다 보면 다시금 평범한 상태가 되고, 책을 읽거나 다른 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하고 있던 작업을 이어서 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에 김광균 시인의 첫 시집인 『와사등』과 마리아 투마르킨Maria Tumarkin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와사등』은 아무 정보 없이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시집입니다. 시의 화자가 자연을 지켜보고 언어로 헤집는 모습과 “옛 기억이 하얀 상복을 하고 달밤에 돈대를 걸어 내린다”와 같은 표현이 맞물리며 느껴지는 독특한 정서가 있었고, 그 정서가 몹시 현대적이어서 1930년대에 출간된 시집을 새로이 감각하게 됐습니다.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은 평소에 신뢰하던 출판사의 책이라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는데 그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과 알고 있지 않은 여러 사람을 번갈아 보았고,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상황을 타인이 이해해보려고 시도할 때 느끼는 반감과 일정 부분 자신 또한 그 상황에서 타인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는 무력감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모호하고 비껴가듯이 감상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에서 저에게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반복해서 읽었던 부분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어맨더는 이제는 알겠다고 말한다. 난 그걸 극복했어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고, 그냥 그렇다는 걸 알겠다고.”

단편 소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그동안 소설을 써오면서 저는 제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궁금해했고 알고자 했습니다.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시기에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앞으로도 조금씩 변화하며 계속될 것이고, 이제는 이것들과 더불어 제가 무엇까지 쓰게 될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활자로 목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지만 이미 세워둔 계획이 있다면, 올해 하반기에 첫 소설집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총 8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일은 처음이어서 이것이 과연 어떤 물성을 갖게 될지, 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상상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고 싶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써둔 소설을 다시 들추어 읽고, 고치고, 동시에 새로운 소설을 쓰는 일이 저의 일이라는 사실이 매번 어렵고도 기쁩니다. 제 삶에 일어나는 여러 변수에 지지 않고 이 ‘쓰기’를 지켜내고 싶습니다.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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